오늘 인터넷 신문은 서울에서 치러진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 집회에 관한 기사들로 도배가 되다시피했다. 주최측 추산 100만명 이상, 경찰측 추산 26만명 정도라는데 경찰측의 인원 추산은 믿을만한 게 못되는 데다가 대체로 규모가 커질수록 실제 값과의 오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것을 고려하자면 광화문 근처 전 공간이 촛불로 가득 들어찬 이번에는 정말 100만명 가까이 운집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역사적인 장소에 함께 하지 못해서 굉장히 유감이다.


가족과 함께 광장에 나간 사람들이 그저 부럽다.


나는 남들처럼 SNS를 통해 박근혜 관련 포스팅이나 촛불 집회 관련된 내용을 업로드하거나 공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낸 날 여기에도 썼듯이, 이 모든 혼란을 낳은 1차적인 원인 제공이 바로 그녀에게 표를 던진 나라는 일종의 죄책감 때문이다. 분란을 낳은 사람이 분란의 해결을 위해 아우성치는 것만큼 우스운 꼴이 없지 않은가.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자리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친일파가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와 일본 제국에 충성하며 친일 행위를 보란 듯이 했던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6.25 전쟁 이후 철저한 반공 세력으로 거듭났고, 친정부 세력의 핵심이 되어 눈에 불을 켜고 공산주의자들과 반(反) 이승만 세력을 숙청했다. 망국(亡國)에 기여한 자신들의 과오(過誤)와 죄책감을 덮을 요량으로 바뀐 시대의 권력이 요구하는 바에 무조건적으로 달라붙어 광적으로 이를 옹호하여 자신들의 살 길을 찾는 것이었다. 사실 최근의 내 마음가짐이 그러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선봉에 서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박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배신감과 황당함에 사무쳐 '내가 던진 한 표 되돌려받으려고 나왔다.'라고 인터뷰에서 외친 한 중년 남성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결국 바로 그 친일파같은 행동 아닌가. 과(過)은 대가(代價)를 치러야 해결되는 법이지, 다른 공(功)으로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하나. 속죄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근신하는 것이 첫번째일 것이다. 곧 치러질 선거에서 무조건 새누리당과 그 후예들에게는 표를 던지지 않는 것이 두번째일 것이다. 지금까지 수구 세력이 그토록 강조해 왔던 역사관과 경제관을 내 안에서 모조리 타파해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것이 세번째일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내 부모님을 대적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 굉장히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옳은 일이다 ― 그분들도 나도 이제껏 속고 살았으니 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