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연구실에서 하던 몇몇 공동 연구가 다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미네소타 대학으로 옮겨왔다. 미네소타에서 이 일들을 진행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아서 미국에 도착 한 뒤 가장 관련이 깊을 만한 두 후배들에게 메일을 보내 공동 연구 건을 적절히 나눠주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한 공동 연구에 대해 한 후배가 진척이 있었음을 알리는 메일을 오늘 보내왔다. 오늘 찍은 생생한 주사전자현미경(SEM)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늘 실패했던 실험을 이 친구는 보란 듯이 어렵지 않게 성공해서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이 결과 덕분에 교착 상태에이를 뻔한 공동 연구가 급물살을 타게 생겼다.


무엇 때문에 나는 못 했고 그는 해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해당 일을 6~7년간 하다보니 나 나름 젖어 있는 관성이 생겨서 기본적인 재료 준비 과정에서는 확립된 실험 과정 이외의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이 친구는 새로운 체계가 확립된 이후 이 일에 뛰어든 덕분에(?), 모든 과정에서 나와는 다른 방식을 기본으로 채택했고, 그 결과 내가 보지 못한 결과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걸 내가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공동 연구를 책임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겠지만 애초에 내겐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의외로 그런 생각은 별로 안 들고, 대신 살면서 적어도 후배 한 명에게 좋은 결과물을 얻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물론 이것이 논문이라는 최종 결과물로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내 판단에 적어도 석 달의 시간은 단축되었다. 이 후배가 이 일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한 것을 기점으로 해서 이후의 일들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준비가 되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서울대 화학부 연구실에 작은 기여를 한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