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연구실에서 다소의 ― 한국어의 '다소(多少)'가 극단적으로 다른 두 의미를 중의적으로 표현할 있다는 점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나면 머리를 쓰는 일을 집에서 하기가 좀 버겁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함과 동시에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일종의 취미생활이 되었는데, 최근 열흘간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영화 4편을 골라 Google Play Movie 앱을 통해 대여해서 보았다. 참고로 네 편의 영화를 보는데 든 비용은 평균 $4 정도 했던 것 같다. 이곳 영화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Dr. Strange)』를 보기 위해 거의 $21 를 지불해야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집에서 편안하게 차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게 훨씬 이득 ― 시쳇말로 개이득! ― 이었던 것이다.


무엇을 봤느냐? 『컨택트(Arrival)』 를 시작으로 하여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그리고 이번에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Moonlight)』를 순서대로 보았다. 첫 영화와 마지막 영화는 바로 2016년에 개봉했던 작품이었는데도 Google Play Movie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대여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뒤의 세 영화에 모두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서로 다른 줄거리임에도 성 소수자가 등장하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물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실존했던 HIV 보균자의 일생을, 그리고 『문라이트』는 한 흑인의 일생을 그리는 과정 중에 등장한 정도로 아예 양성애 혹은 동성애 자체가 중심 내용인 『브로크백 마운틴』에 비하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네 편 다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특히 『컨택트』는 영화를 감상한 사람들의 평론 및 후기를 보며 더 재미있게 들여다보게 된 경우. 『문라이트』는 순전히 『라라랜드(La La Land)』를 꺾고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충동적(?)으로 대여해서 본 것인데 생각보다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그런 영화는 아니지만 뭔가 보는 내내 짠한 것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흑인 영어는 자막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이해했고, 동시에 그 흑인 영어로부터 피진(Pidgin)의 느낌이 난다는 그런 언어학적 특성을 발견하는 재미 정도...? 아, 영화에 삽입된 음악이 굉장히 많은데 그녀에게(Hablo con Ella)』에서 처음 들었던 "꾸꾸루꾸 비둘기" 노래가 나와서 굉장히 반가웠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주연과 조연이 동시에 상을 받을만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브로크백 마운틴』은 영화관에서 봤으면 정말 아름다웠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만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자주 오르내린 『핵소 고지(Hacksaw Ridge)』와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를 대여해서 볼까 생각중이다. 도대체 연구하느라 피곤하고 지칠 텐데 늦은 밤에 영화 볼 기력은 남아있냐고? 사실 없다. 하지만 짜내서라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보려고 한다. 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험만 하다가 하루가 피폐해질 것만 같으니 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