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가가가 정규 5집 앨범 'Joanne'을 발매하고나서 8월부터 미주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8월 21일에는 미네소타의 주도인 세인트폴(St. Paul)에서 투어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었고, 나는 이것을 지난 4월부터 진즉 알고 있었는데 표가 이미 동이 나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날짜가 다가오면서 취소하는 표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각 섹션마다 한개씩 비는 자리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열흘 전쯤에 티켓마스터 웹사이트를 검색하다가 빈자리가 있는 좋은 구역을 발견하게 되었고 옳다꾸나 싶어서 바로 예매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12년에 서울에 내한했던 Born This Way Ball Tour 이후로 5년만에 그녀를 공연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인트폴 공연장은 아이스하키 프로팀인 미네소타 와일드(Wild)의 주경기장인 엑셀 에너지 센터(Xcel Energy Center).


공연 시작 시간은 오후 7시 반인데 10분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공연장 안에 자리잡은 사람보다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외부에서 음료를 일체 가져올 수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경기장 내에서 음료를 파는 매점마다 사람들이 북적였고,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매점에서 피자나 버거를 사서 먹고 있었다. 가가의 얼굴과 공연 일정 등이 적힌 기념 티셔츠를 파는 곳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성 소수자 권익을 옹호하는 가가의 공연답게 공연장에서는 서로 손을 잡고 다니는 동성 커플들 ― 특히 레즈비언 커플이 많이 보였다. ― 혹은 드랙 퀸이 여럿 보였다. 화장실을 들렀다가 물을 한 컵 사서 공연장에 들어갔고 내가 예매한 자리인 109번 섹션의 5열 6번째 자리를 찾아 그대로 앉았다.


그런데 자리에 앉은지 1시간이 지나도 공연이 시작할 기미를 안 보이는 것이었다. 하긴 5년 전에도 예정된 시각을 더 넘겨서 오프닝 무대를 선보인 DJ의 공연이 한참 있었지. 공연 10분 전이 되자 무대 중앙 스크린에 거대한 타임워치가 떴는데, 그게 8시 40분 정도 였으니... 자리에 앉아 1시간 반동안 무대를 기다린 것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이런 관행(?)을 원래 아는 것이었는지 8시가 넘어서도 여유있게 공연장으로 들어오는 관객들이 참 많았다. 심지어 8시 반이 되어서조차 말이다. 나도 다음부터는 공연이 있으면 30분 정도는 여유를 가지고 늦게 도착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튼 카운트다운 이후 드디어 성대하게 레이디가가의 Joanne World Tour가 시작되었다. 첫 두 곡은 최신 앨범 'Joanne' 수록곡인 'Diamond Heart'와 'A-Yo' 였는데 아주 시원한 목소리가 '역시 가가는 노래를 잘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5년 전 Born This Way Ball Tour의 첫 곡이었던 'Highway Unicorn'에서 마차를 끌고 무대에 등장했던 게 너무 충격이었는지라 그것에 비하면 굉장히 수수한(?) 시작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비교적 수수함'은 공연 전반에 걸쳐서 느껴졌다. 요컨대, Joanne World Tour는 Born This Way Ball Tour에 비하면 덜 파격적이고 덜 괴기스럽다. 하지만 파격과 괴기스러움으로 세계를 휘어잡았던 그녀도 계속 그같은 방식으로 인기를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을 잘 알기에 지난 앨범 'Cheek to Cheek'과 이번 앨범 'Joanne'을 통해 변화를 꾀했던 것이고, 그 변화가 콘서트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Joanne Tour이니까 앨범 'Joanne'의 수록곡들 중 'Hey girl', 'Grigio girl', 그리고 'Just another day!'을 제외하고 모두 공연 곡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곡 목록에는 'Poker face'나 'Born this way'와 같은 이전 앨범 곡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오히려 그 곡들이 'Joanne' 앨범 수록곡들보다 관중들로부터 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사실 오늘의 레이디 가가를 있게 만든 곡들이 초창기 1, 2집 히트곡들이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들를 귀에 젖도록 들어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1, 2집 앨범 판매량에 비하면 3집 'Artpop'이나 5집 'Joanne'의 판매량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즉, 사람들이 더 많이 호응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따라 부를 수 있는 곡들이 공연 곡 목록에 포함되어야 하며 그 결과 1, 2집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많이 포함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가장 박한 평가를 받고 있는 'Artpop'의 경우 이번 공연에 포함된 곡이 'Applause' 하나 뿐이었다.)


한편 그 많은 곡들을 춤추면서 라이브로 소화한다는 게 굉장히 경이적이었다. 레이디 가가의 가창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2시간 15분 정도를 쉴새없이 춤추며 노래한다는 것은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른다'는 수준에서 이행 가능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녀는 가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했고, 기타도 직접 잡아 연주했다. 그저 대단할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녀의 행동 하나에 모든 관중들이 일사불란하게 반응하고 호응하는 것을 보노라니 공연장이 하나의 거대한 종교 단체 모임같이 느껴졌다. 중간중간 레이디 가가는 'put your paws up!'이라고 외치는데 그 때마다 사람들이 손을 들고 흔들며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이 과연 내가 정말 대규모 찬양 집회에 온 것은 아닌가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 거대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휘감았던 그녀는 가장 최근에 발매한 싱글 'The Cure'로 공연을 마무리했고, 마지막 앵콜곡으로 'Million reasons'를 열창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관중들이 공연 끝나고 '앵콜!'을 연호하지는 않았는데, 알아서 앵콜곡을 하러 나왔다.) 이 'Million reasons'라는 곡은 굉장히 좋다. 사실 앨범 발매 이후 처음엔 좀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올해 초 수퍼볼 중간 공연 때 레이디 가가가 피아노를 치며 이 노래를 한 것을 계기로 굉장히 인기가 높아졌다고 했다. 가사를 생각하면서 가가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정말 그저 좋다.


공연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나서 세인트폴의 Central station에서 경전철을 타고 East bank에 내려 집에 도착해서 씻고 자리에 누우니 벌써 시간이 자정을 넘긴 시각. 공연 내내 거의 서 있느라 다리가 좀 피곤했지만 그래도 참 오랜만에 노래를 맘껏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들어대어 기분은 참 좋았다. 게다가 스탠딩 영역에 설치된 섬 형태의 공간까지 레이디 가가가 친히 움직여다니며 노래하고 춤췄는데, 그 덕분에 내가 앉은 자리가 무대를 정면으로 좌석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2~30 m 떨어진 지점에서 레이디 가가가 노래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직접 '클로우즈 인카운터'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마 레이디 가가를 다시 무대에서 보는 일은 없겠지. 그래도 내 대학원생 시절을 함께 했던 그녀의 노래들을 들으며 이곳 미네소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