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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김밥과 닭강정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니, 오랜만에 유유자적하게 밖에서 이렇게 사람구경도 하고 좋았다. 어느 한 켠에서는 '저자와의 대화'라는 순서로 낭독과 책에 대한 이야기 나눔 시간이 진행되고 있었고, 행사장 내부에 즐비한 책 관련 부스들, 상담 관련 부스들은 이미 어린이와 어른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올림픽 공원 자체도 오늘이 날씨도 좋았던 주말인지라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사람들은 잔디밭을 가득 메웠고 남녀노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이은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7시가 되고 이은미가 무대에 나왔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 가을 분위기에 맞는 곡들과 자신의 최근 앨범 수록곡들을 불렀기에 평소에 우리가 알던 파워 넘치고 격렬한 무대매너를 선보이는 이은미가 아니었다. 물론 무대의 맨 마지막은 누구나 잘 아는 '애인있어요'로 마무리하고 앵콜 공연은 정말 강렬한 록 음악으로 장식했지만. 모두들 그의 독특한 음색과 무대매너 ㅡ 이번에도 역시 신발을 벗어 던졌고 후반부의 옷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ㅡ 그리고 가을감성 풍부한 가사들이 한데 어우러진 노래를 감상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는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로 유명한 전제덕씨도 나와 공연을 했는데, 마침 재즈의 기아에 허덕이던 내게 저 유명한 스탠다드 곡인 'autumn leaves'를 선사해주어 기분이 한층 좋아졌다. 함께 무대에 나왔던 심성락옹의 아코디언 연주도 참 아름다웠다.
이은미 콘서트에 왔지만 사실 나는 그의 히트곡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며 그가 도대체 어떤 가수 생활을 했는지, 그의 음악세계는 어느 분야를 주무르고 있으며 또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는 게 없었다.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단 일화도 들어서는 알고 있지만 그마저도 자세히 아는 게 아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이 '애인있어요'와 '나는가수다' 덕에 이은미를 더 알아보게 된 거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데뷔한지 24년이나 되었다는 그의 말에서, 또 과히 새 것은 아니지만 무디거나 녹슨 것 같지는 않은 칼을 생각하게 하는 그의 노랫소리에서, 아 정말 보통 가수는 아니었던 거구나, 나름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놓은 가수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참, 이거 하나는 얘기하고 싶었다. 이은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사실 여느 가수와 같지는 않다. 어떤 이들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해 보이는 그의 표정과 입모양, 그리고 자세를 비판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그의 무대를 다소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모든 악기에는 아주 정석 연주법이 있을 터이다. 하지만 꼭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기계적으로 매뉴얼에 나온 대로 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어떤 사람은 그게 습관이 되어서, 그리고 어떤 사람은 특수한 목적에 의해 그렇게 한다. 결국 사람도 발성기관이라는 부분을 이용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인 셈인데, 나는 이은미의 그 처절하고 기괴하게까지 보여질 수 있는 그 '연주법'은 자신만의 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글렌 굴드(Glenn Gould)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의 연주법은 매우 희한하게 보여질 정도인데, 놀랍게도 그의 기괴한 연주법이 바흐의 클라비어 연주곡집을 하프시코드가 아닌 피아노로 재현할 때 가장 아름답게 들린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요컨대 그는 바흐의 음악세계라든지, 정격연주의 부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지향했던 것이 아니고 오직 소리 그 하나에만 집착했던 것이다. 이은미도 자신만의 창법과 표현법을 만들어나갔던 것이고, 그것은 그와 결합하게 되면서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자 본질이 되었던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본다.
날은 생각대로 많이 쌀쌀해졌지만, 그럼에도 매우 기분 좋게 돌아올 수 있었다. 서늘해진 가을밤에 울려퍼진 어느 강한 에너지를 품은 채 처연히 이별과 아픔을 노래한 그. 이은미라는 가수에 대해서 한 번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