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내 생각을 말하자면, 민영화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민영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대표적인 진보언론인 '민중의 소리'에서 내놓은 기사(http://www.vop.co.kr/A00000712428.html)를 보면 앞으로 코레일이 어떻게 가야 할 지 눈에 보인다.

 

난 파업을 지지하며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몇몇 면에서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있다. 우리 모두 IMF 때나 리먼브라더스 몰락 이후 불어닥친 금융위기 때나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IMF 때 수많은 아버지들이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에서 해고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금융위기로 인해 국민(國民)이자 시민(市民)이었던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어느새 서민(庶民)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고 그것이 윗사람들이 우리를 통칭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되고 말았다. 어느 누가 도대체 이 생고생과 해직의 아픔에서 자유로웠단 말인가?

 

도대체 왜 사람들이 그렇게 정규직에서 쫓겨나게 되었나? 구조조정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단행되었던 명예퇴직이 아니었나. 구조조정이 뭔가? 간단히 말하자면 사업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적자를 내는 사업은 퇴출시키고, 불필요한 인력은 감축시켜 인건비 지출을 줄이는 것이 핵심 아니겠는가. 왜 그 서슬퍼런 구조조정의 칼날을 우리 서민들이 몸담았던 기업에 갖다대는 건 불가피한 일이라고 하고 방만하게 운영되는 그 수많은 공기업들 ㅡ 솔직히 기업문화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공기업, 공사들이 얼마나 '막장' 운영 테크를 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 없을 거다. ㅡ 에는 왜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밀면 나라 망치는 것같이 발악을 하는 것인가? 왜 사기업을 다니는 친구들이 죄다 공기업을 가겠노라고 그렇게 취업 반수를 하고, 그 아무짝에도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게 없는 관료주의의 일원이 되고자 애를 쓰는 것인지 모를 리는 없겠지?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소외된 사람들, 곧 비정규직을 양산할 거라는 우려는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 이미 지난 십수년간 그런 식으로 뼈를 깎고 체질을 개선해서 겨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넘긴 거 아닌가. 양산된 비정규직이 어떻게 흡수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논하는 것이 건설적인 거란 사실은, 지난 십수년간 비정규직 구호만 외쳐대며 (지금은 그리 칭송해마지 않는) 노무현마저 비정규직법 개악(改惡)이라며 연신 비난했던 그 무리들을 쳐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민영화 문제가 아니라 이런 노동환경 변화와 구조조정에 반발하여 지금 파업을 벌이고 거기에 동참하고 있는 거라면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 지금 당신들을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다 그런 아픔을 일찍 겪고 이제 다시 일어난 사람들이 더 많다. 남들 다 힘들 때 편하게 근속년수 늘리며 지내던 사람들이 이렇게 거리에 누워 '안녕들 하신지' 운운하는 것은 정말 염치없는 짓이다. 당신들에게도 그런 저울을 갖다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효율성 재고와 구조조정의 일환이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그 중의 하나가 수서발(發) KTX 자회사 법인 설립이라면 나는 충분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수단이라고 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을 빼고는 이런 '노동자'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집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부와 여당을 신나게 까기 위한 수단으로 이 주제를 택한 것이고, 그리고 우리 서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름아닌 '돈'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민주당의 선택은 별로 좋지 못한 것 같다. 민영화 '논란'보다는 국정원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게 더 정부에게 치명상이었을텐데 왜 그랬을까?)

 

이 돈 문제는 좀 생각해 봐야 한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확한 계산에 근거한 자료값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튼 수혜자 부담 원칙에 따르자면 운임은 지금보다 어느 정도 오른다고 해서 코레일을 대놓고 비난할 수는 없다. 지금 상황은 코레일의 적자를 국세(國稅)로 메워주는 형국인데 결국 코레일의 철도를 이용하지도 않는 사람까지 포함한 국민 모두가 부담을 다 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싸게 지하철과 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부채를 밟고 누리는 혜택이라면 그것도 좀 생각해봐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지하철 카드 찍을 때 100원이 더 나가는 것이 아버지 월급에서 공제되어 나간 세금이 국회의원 외유(外遊)에 쓰이는 것보다 더 공분(恐憤)할 일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전자를 택하고 후자를 엄히 다스리는 것이 전체적인 국가 공공 예산 지출에 더 바람직한 것 아니겠는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 모든 상황을 작년에 아주 비슷하게 겪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서울대학교 법인화 논란이었다. 그 때 학생들이 아주 신선한 농성방식을 택하여 ㅡ 세상에, 그 본부스탁이라고 불리는 락 페스티벌 기획은 정말 놀라운 충격 그 자체였다. ㅡ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 법인화 관련 학생운동의 결말은 다음과 같았다.

  1. 어찌되었든 법인화는 결국 이뤄졌는데, 일반 학생들은 국립법인 서울대학교의 설립 및 발족 이전 및 이후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는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쟁체제의 캠퍼스 침범'과 같은 요란스럽고 거창한 변화는 적어도 학부생 및 대학원생 수준에서 감지되지 않고 있다. (교수님들이라면 뭐 피부로 와닿는 변화가 있겠지만, 애초에 학생들이 교수님들의 상황까지 고려하면서 시위했을 리 만무하니까...)
  2. 많은 학생들이 가장 우려했던 등록금의 경우 거의 변화가 없다. (이명박 정부 이후 등록금은 거의 동결되다시피 하였다.) 참고로 서울대학교 등록금은 국내 국립대학교 등록금 중 가장 비싸다.
  3. 법인화 농성이 왜 별안간 중지되고 본부 점거가 풀려버린 걸까? 우습게도 내부 결속력 약화로 인한 주도권 싸움, 그리고 대부분의 일반 학우들은 그것에 질려 버렸다. '원자 모임'이라며 과, 반, 동아리에 속하지 않고도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린 뭔가 다르다며 자찬하곤 했으나 정작 그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개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채 거대한 조직에 이용당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 경험 때문에 최근 언론에서 크게 회자된 '안녕들 하십니까' 유행을 우려스럽게 생각한다.)
  4. 그 해 겨울 별안간 서울대 키보드 워리어로도 유명한 오 모씨가 학교 정문 위에 올라가 이틀동안 내려오지 않은 채 농성을 하다가 체온 저하와 건강 문제로 인해 119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오 모씨의 구호는 법인화 반대였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과는 관계 없는 '본부' 점거에는 긍정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자신들의 출퇴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정문' 점거에 상당히 신경질적인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당시 정문 아래에는 낙하에 대비한 거대 에어 쿠션이 설치되어 차량 진입이 금지되었으며 차량은 정문 양쪽의 좁은 길을 통해 지나다녀야 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늘 막혀서 문제인 서울대 정문 근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연히 버스가 원활하게 다닐 수가 없으니 2만 명이 상주하는 거대한 서울대의 구성원들이 엄청난 불편을 겪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궁여지책으로 시내버스가 POSCO 체육센터 옆길로 우회하여 다니는 것을 처음 봤다.)

요컨대, 지금 민영화 논란의 핵심은 민영화 자체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믿음'의 문제이다. 그 많은 파업 지지 이유 중에서 딱 하나 유일하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선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수서발 KTX 법인이 정말 국민을 속이면서 '민영화'를 위한 어떤 전 단계로서의 방책이라면 그것은 대단히 큰 문제이다. 서울대학교 법인화의 경우 '국립법인'이라는 별 희한한 형태의 법인으로 발족시켰고 그에 수반되는 갖가지 규칙들을 달아놓아 일반적인 사립대학 법인과는 분명하게 다른 형태의 법인으로서 존립할 수 있게끔 법적 장치를 완비하였다고 알고 있다. 수서발 KTX 법인 역시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다. 사실 정부가 그런 것까지 신경 안 쓸 멍청이는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독일의 철도회사 방식을 따라 이런저런 장치들을 마련했을 테지만, 시민사회와 야당의 지적과 문제 제기에는 귀기울여 듣고 만일 문제될 소지가 있다면 대승적으로 타협하며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과 정부가 좀 태도를 고쳐먹을 필요는 있다.

 

아무튼 이번 민영화 시위의 끝이 서울대학교 법인화 논란과 같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 같은게, 철도 노조원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시민들의 생각이 다 제각각이라는 것에 있다. 이 경우, 분명히 불편함을 못 이긴 시민들이 결국 반발하게 될 것이고, 민심의 흐름이 바뀐다는 것을 감지하는 거대 야당의 태도가 조금 느슨해질 것이며, 그 동안 철도 상황이 어느 정도 부족한 운송량 안에서 정상화가 된다면 사람들은 그 때부터 철도 노조를 비판하게 될 것이다. 수서발 KTX의 운행으로 인해 강남, 분당, 용인 등지의 사람들의 KTX 이용이 편리해지고 자연히 서울역 KTX의 붐비는 현상이 감소됨에 따라 시민들은 몇 달 전에 품었던 분노의 감정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거두게 될 것이고, 결국 이 일은 2008년 전국을 쓸데없이 떠들썩 거리게 만들었던 광우병 괴담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이미 벌써 괴담식의 근거 없는 이야기가 퍼지는 걸로 봐서 이 민영화 논란은 반대 측의 패배로 끝날 것이 명백하다. 법인화 때에도 그랬다. 등록금이 몇 배 치솟을 것이고,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에 반하는 강의들과 연구는 모조리 급살될 것이라고...)

 

제발 그렇게 되지 말고 좀 건설적으로 일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이 파업과 시위의 목적이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 하나에만 집중해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으면 좋겠다. 이래가지고서는 결말이 뻔하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