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싸이의 '젠틀맨'은 아쉽다.


전세계에서 유튜브를 통해 지켜본 싸이(PSY)의 콘서트, 그 콘서트의 마지막에 그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젠틀맨(gentleman)'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공연이 중계되었다. 그 때 느낌은 '어라,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였다. 그건 한 분야의 대가라고 여겨진 어떤 교수님이 강연을 한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강연장에 들어섰는데, 정돈이 되지 않은 데이터들만 슬라이드를 통해 쏟아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매우 흡사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gangnam style)' 뮤직비디오를 처음 유튜브로 봤을 때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젠틀맨'의 경우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이 뾰루퉁하게 튀어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싸이의 후속곡이 대히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박 정도만 쳤어도 '강남 스타일'에서 이어지는 세계적인 영향력이 엄청났을텐데, 그런 점에서 '젠틀맨'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다.


2. 좋은 노래는 '듣보'도 '스타'로 만든다. / 나쁜 노래는 '스타'도 '듣보'로 만든다.


걸스데이(Girl's Day)의 경우 몇몇 곡들을 선보인 적이 있었지만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고, 수많은 '안개같이 사라질 것으로 점쳐지는' 여성 걸그룹 중 하나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대히트를 친 '기대해(expect)'은 걸스데이를 꽤 유력한 걸그룹 중 하나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치 시크릿(Secret)이 '샤이 보이(Shy Boy)'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면서 인기를 확 끈 걸그룹으로 수직상승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그냥 이 노래를 듣다보면 그 비트에 몸을 맡기면서 (가상의) 멜빵을 손에 걸고 엉덩이를 흔들게 될 것만 같다. 가사는 그렇게 유려하거나 멋진 건 아니지만 난 개인적으로 이런 가사들도 과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카라(KARA)의 '숙녀가 못 돼'는 정말 못 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내겐 '부처가 못 돼'나 '초라해 죽겠단 말이야아~~'라는 가사보다는 차라리 '네가 숨기고 쓰는 문자가 더 신경 쓰여'가 더 낫다. 해체를 앞두고 낸 앨범이라고 이렇게 타이틀곡을 내서는 아니 되지요. 카라는 '스텝(Step)'에서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하지만 좋은 노래가 아니어도 한 방은 확실히 무명의 가수들에게 큰 팬덤을 안겨준다. 올해 최고의 문제적 히트곡인 '빠빠빠(Bar bar bar)' 때문에 전국의 모든 수련회와 장기자랑 순서에 교리닝(교복+츄리닝)을 입고 직렬 5기통 춤을 쳐대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크레용팝(Crayon Pop)은 2013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천하통일 남자 아이돌


어째 남자 아이돌 시장은 엑소(EXO)로 통일되는 것 같다. 초반엔 틴탑(Teen Top)이나 B1A4가 좀 나오고 Infinite도 꽤 선방하는가 싶었는데, '으르렁(growl)'이 나오면서 다 무너지고 만 느낌이다. 물론 처음에 '늑대와 미녀'가 나왔을 때 이거 뭐 별수 없구나... 싶었는데, 세상에, '으르렁'은 아주 최고의 노래라고 하긴 힘들어도 정말 깔끔하게 그리고 귀에 익숙하고 쏙쏙 박히게 ㅡ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나서 내 머릿 속에서는 자꾸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더라 ㅡ 만든 게 인기 끌만 하다고 생각했다. 블루스 음계 위에서 리듬도 덩실덩실 탈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난 그 '으르렁'이라는 도무지 가사로 쓰이지 못할 것 같은 의성어가 전혀 촌스럽지 않고 맛깔나게 들릴 수 있도록 놨다는데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역시 극찬을 받은 뮤직비디오로 많은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였다.


한편 빅뱅(Big Bang)이나 샤이니(SHINee)는 각자 갈 길을 정한 것 같다. 빅뱅은 멤버 개별적인 음악적 활동의 영역을 늘리면서 빅뱅이라는 이름 하에서 내놓는 노래는 이제 10대 소녀들이 흥얼거릴 노래라기보다는 20대의 젊은 처자들이 클럽에서 몸을 흔들며 취할 노래인 듯 싶다. 분명 힙합 그룹이라는데 클럽음악에 어울리는 힙합이라고 해야 하나 이거 참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내가 분명 빅뱅은 정규 3집을 끝으로 해체할 거라고 단언한지 벌써 5년이 지나가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아직 정규 3집을 내지 않고 있다.) 한편 샤이니는 아예 강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더 거침없이 몰아붙이기로 작정한 듯 싶다. 이번에 '드림 걸(Dream girl)'이 나오길래 2012년에 우리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셜록(Sherlock)'과 균형을 맞추나보다 싶었는데 그 후속곡(Why so serious?)들과 가장 최근에 나온 'Everybody'를 듣다보면, 그리고 그 앨범의 수록곡들을 대체로 들어보면 이제 얘네들은 어떤 선을 넘어 강렬한 어딘가로 치달아 달려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이돌이긴 한데 어떤 아이돌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보통 아이돌들은 차별화를 위해 작사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거나 뭐 그런 식으로 아티스트가 되려고, 아니면 훗날을 위해 연기를 한다든지 뭐 그런 부업들을 벌이는데, 샤이니는 SM에서 이끌어가는 강한 전자음악의 세계로 충실하게 나아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될 지 알 길이 없다. (생각해보니 소녀팬들을 장악하려고 하면 같은 기획사의 EXO와 나눠먹기를 해야 하는 것이니 골치 아프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긴 하다.)


남자 아이돌은 아니지만 소녀시대도 그런 점에서 어떤 비슷한 변곡점에 서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I got a boy' 가 그렇게 좋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소녀시대도 뭔가 변화가 필요했나보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소녀시대에게 원하는 것과 소녀시대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일치하는 것은 오직 시간이 정지해 있을 때만 가능한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남자 아이돌 중에 가야할 길을 모른채 여전히 헤맨다는 느낌을 주는 ㅡ 혹은 뭐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ㅡ 그룹은 JYP의 2AM과 2PM이다. 최근에 역대급 아이돌을 선보인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그러면 이 그룹들은 자연스레 도태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제 더 이상 벗을수도 없고 말이다.


4. 아이유(IU)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아이유의 경우 앨범 전곡을 다 듣고 나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짬뽕처럼 온갖 것들이 다 들어가 있다. 그런데 다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 말은 이 앨범이 평타 이상이라는 뜻 아닌가? 원래 아이유가 삼촌팬을 거느리던 그 여아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목소리 표현이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백호와 양희은이 피쳐링에 참여한 곡을 들었을 때는 역시 아이유라도 이들 두 대선배에게 묻히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일 수 있겠다 싶기도 한다. 아무튼 다채로운 샐러드바에 다녀온 느낌이 들었다.


5. 내 멋대로 순위


내가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혹은 가장 인상 깊었던 노래를 남/녀 세 개 씩 꼽자면…


여자: 걸스데이 <기대해> / 에이핑크 <No No No> / f(x) <첫 사랑니>
남자: EXO <으르렁> / 범키 <미친 연애> / 무명 <강한 용사 여호와>


한편 정말 싫었던 노래는 헬로비너스의 '차 마실래요?' 였다. 이 노래를 음률 없이 가사만 읊다보면 도대체 이것이 아이돌 그룹의 노래 가사인지 아니면 저급한 육담 가사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좀 세련되게 멋지게 가사를 썼거나, 아니면 곡 분위기가 좀 발랄했다면 모를까. 그냥 걔네 집에 가서 차만 마시고 나오련다.


2014년에는 더 흥미롭고 좋은 가요들이 쏟아져 나왔으면! 이상 내맘대로 비평 끝!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