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실험실에 연구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온 한나(Hannah Huesmann)가 독일로 돌아가기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전에 뭔가 기억날 만한 일을 하나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무엇이 괜찮을까 생각했는데, 여행이나 이런 건 어렵고 뭐 먹으러 가는 것도 큰 의미는 없겠다 싶었다. 그러던 중 한나는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고 또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하기에 ㅡ 심지어 한국어 수업 프리젠테이션 주제도 자전거였다. ㅡ 자전거를 같이 타는 것을 제안했었다. 역시나 한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오늘 아침 10시에 여의도 역에서 보기로 했다. 토요일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생각보다 곤혹스러운 일이었지만, 용케도 일어나서 5713을 타고 여의도를 향해 나갔다.


여의도 역에 내리니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공공자전거 대여소가 눈에 띠었다. (http://www.bikeseoul.com 참조) 그래서 거기서 휴대폰을 이용해서 자전거 두 대를 대여했고, 우리는 곧장 한강공원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였다. 아마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탔던 게 20살 때였나 21살 때였나 그랬을 것이다. 한나는 처음에 한강공원에 있는 자전거를 대여할까 생각했지만, 공공자전거의 대여가격이 싼데다가 자전거에 붙어 있는 디스플레이에 대여 시간과 속도, 소모된 칼로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매우 괜찮다고 말했다. 처음 3분 동안은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아서 중심이 흔들거렸고, 기어 조절에 애를 먹어서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내 평정을 찾고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참고로 여의도에는 도로변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도로변에 주차된 몇몇 차들만 좀 빼면 말이다.


여의나루에서 잠수교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로 달리다보니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주말에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나 싶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등산할 때도 온 의복과 도구를 갖추고 하는데,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저 모든 것을 갖추려면 돈이 꽤나 들었겠다 싶은데, 한나는 이게 한국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거기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길이 잘 닦이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한나는 이 모든게 전임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의 덕분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이명박과 그의 후임 오세훈이 여러가지 일로 비판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나 한나나 한강의 많은 부분을 정비하고 서울시 곳곳을 볼만한 도시답게 탈바꿈시킨 점에는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잠수교를 건너면서 거대한 오르막길이 나왔고, 이 때부터 좀 고생했다. 잠수교를 건넌 우리는 죽 더 올라가서 결국 녹사평에 이르렀고, 좀 더 올라가서 경리단 길을 거쳐 독일식 빵을 잘 만들어 판다는 'The Baker's Table'에 갔다. 한나는 이태원-녹사평 근처에는 잘 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곳에 밀집해 있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카페, 디저트집을 보고 적잖이 놀라워했다. 10분 정도 기다리고 나서 'The Baker's Table'에 들어가 빵과 음료를 주문하고 버터에 치즈, 토마토, 그리고 소금을 쳐서 먹었는데 아주 기가 막혔다. 우리나라 빵이 이처럼 맛있었다면 전통적인 주식인 쌀의 위상이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맥주를 한 잔 들이키고 싶었지만, 나름 '운전' 중이므로 참았다. 빵이 너무 맛있어서 나오기 전에 뮈슬리(Muesli) 빵이랑 호밀 빵을 몇 개 샀다.


정오가 되어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고통스러웠는데, 허벅지나 장딴지는 문제가 없었으나 안장이 안 맞아서 그런지 엉덩이가 너무 아팠던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달렸다. 돌아갈 때에는 이촌 쪽으로 돌아갔다. 원효대교 위를 자전거로 달렸는데, 자동차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한강을 건넌 것은 처음이었다 ㅡ 심지어 걸어서 다리를 건넌 적도 없었다! 달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드넓은 한강이 쫙 펼쳐져 있는데, 순간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 중간에 내려서 사진도 찍고 그랬다. 총 달린 거리는 24 km. 내 평생에 하루에 이렇게 자전거를 많이 탄 적은 없었다. 어쩌면 평생 자전거를 타고 달린 거리보다 이날 달린 거리가 더 길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여의도에 돌아와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잠깐 커피숍에 들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냐(Ana Fokina)를 만나 간단히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한나는 아냐와 함께 쇼핑하러 동대문에 간다고 했다. 진짜 대단한 체력이다. 한국인 여자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나는 6시까지 교회에 가서 중창단 연습을 해야 했기에,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5713을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주 깊은 잠에 빠져버렸는데,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들이 맨 앞자리에 앉아 쓰러져 있는 날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 지 조금 아찔하기도 했다.


그래도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데 그렇게 편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는 걸까? 이래서 사람들이 등산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돌아다니는 거였구나! 지금까지 토요일엔 실험실에 가거나 아니면 교회에 가거나 혹은 어디 구경할 만한 장소에 들러서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는데, 이처럼 역동적인 하루를 보낸 적이 별로 없었다. 꽤 신선한 경험이었고, 한번쯤 다시 해보고 싶은 경험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게 한나 덕분이다. 한나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