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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여간 침대에서 누워만 계시면서 몸고생, 마음고생 하셨던 외할아버지가 지난 18일에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나셨다. 좋은 시절에 떠나가셨노라고 서로 위로하고, 또 조만간 있을 일이라고 늘 얘기해왔던 일이지만 그럼에도 정작 이렇게 삶을 마감하시는 것을 지켜보니 뭔가 허망함 혹은 안타까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가장 가까운 혈육인 외할머니와 어머니, 이모가 그러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5일동안의 장례를 치르면서 많은 것을 느꼈지만, 딱 두가지만 말하자면 온전한 정신과 태도를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가운데서 평안히 눈을 감는 것이 굉장하고 드문 복이라는 사실, 그리고 하루에도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 죽음과 장례에 대한 태도는 종교와 나이, 지위를 막론하고 다 '한국인으로서'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친척들은 5일장을 잘 치러낸 내게 큰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얘기해주었는데, 정작 나는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채 5일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생전에 '만 입이 내게 있으면'이라는 찬송을 즐겨 부르셨다고 했다. 이번 장례 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할아버지가 평안북도 용천에서 철도 관련 일을 하시다가 1950년경에 이북에 있던 사람들을 남쪽으로 수송하는 열차 일을 맡았고, 1.4 후퇴로 인해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셨다고 한다. 그 때 부산에 있던 연합군은 북한에서 내려온 공무원으로 본 외할아버지를 억류시키고 취조를 하게 되었는데, 외할아버지는 자신이 공산당과는 전혀 관련없으며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당원들을 증오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차원에서 저 찬송을 힘차게 불렀다고 하는데,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이북에서는 종교가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공공장소나 대중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게 사실상 금지되어 있었다. 때문에 근 몇 년만에 사람들 앞에서 찬송가를 부를 수 있게 되자 할아버지는 그것이 기쁘기도 하고, 그것이 일종의 '쉽볼렛'처럼 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힘차게 불렀다고 한다. 이후로 할아버지는 연합군 측의 군수물자 및 군사 수송에 관여하는 협조자가 되었고 그 덕에 국가유공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는, 영정 사진이 항상 그 찬송을 보실 수 있도록 찬송가가 펼쳐져 있었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많은 시간을 찬송과 기도로 보내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장로교 장로셨다. 이제는 한 함에 가득 들어갈 재가 되어 호국원에 안장되어 계시지만, 그 분이 베풀어주셨던 많은 말씀과 생각들은 후손들 사이에서 살아 숨쉴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의 죽음은 나의 인생관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아무쪼록 주님 안에서 평안한 안식에 거하시길.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