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여간 잠자고 있던 논문이 드디어 투고되었다.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연구 주제였다.


그래핀 패터닝 관련된 이 일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보고한 것이 2011년의 일이고, 정식으로 홍병희 교수님 연구실과 협업하기 시작한 것이 2012년 늦봄의 일이었다. 한동안 실험이 되지 않아 좌절하다가 그 해 10월에 전문연구요원 훈련소 입소 때문에 잠시 일을 놓았고, 뒤이어 MRS 로 출국하느라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 보스턴에서 돌아와서 이것저것 실험을 진행하다가 여전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재확인하고 엄청나게 실망했던 것. 어느 겨우날 침대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13년 2월 말에 실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면서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대반전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너무 놀라워서 지하에서 바로 뛰쳐나와 교수님께 연락드린 것도 그 때였다. 그 해 2월부터 5월까지는 진짜 미친 듯이 실험만 하던 기간이었다. 그 기간 중에 찍은 AFM 사진 갯수만 해도 엄청났고, 매일같이 밤늦게까지 남아 현미경을 찍고 샘플을 주고 받고 했다.


물론 중간에 황당한 상황들 때문에 주춤거렸던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늘 되던 게 안 되고, 보여야 할 것들이 안 보일 때면 항상 생각하지 못했던 사소한 것에서 다름이 발생하는 바람에 생긴 문제들이었다. 하나하나씩 그런 요소들을 제거하면서 내가 관찰한 이 현상이 여러 경우에서나 동일하게 관찰된다는 것을 최종 확인했을 때, 그 때 얼마나 내 자신에게 자랑스럽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메커니즘의 자세한 연구 때문에 시작하게 된 분광학적 측정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그 와중에 진행한 논문 작업도 시간이 꽤 걸려 2013년 10월이 되어서야 공동연구자 측에 보내 줄 수 있었다. 나는 분광학적 논의가 모두 종료되면 본격적으로 논문 작업을 해서 2014년 초에는 논문을 투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희망은 엇나갔다.


전체적으로 작업은 이 때를 기점으로 해서 급속도로 느려지기 시작했고, 설날 이후 답보 상태가 되고 말았다. 중간 중간 추가 실험 및 관찰이 요구되긴 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답답한 상태는 지난 7월까지 이어졌다. 물론 그 와중에 나도 넋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2013년에 이미 다른 연구 주제 하나를 완료했고, 그 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한 확장 프로젝트 역시 2014년 중순 쯤에는 새로운 논문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심지어 2014년 초에는 새로운 일에 대한 연구 결과마저 확보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되는 이 일의 진행 상황은 1년 전 그대로였다니 정말로 끔찍한 상태였다.


그랬던 그 일이 2014년 11월의 어느날 (그래, 오늘이다.) 전광석화같이 마무리되었다. 공동연구하는 랩의 교수님 스타일은 우리 교수님 스타일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것은 다소 의외의, 전혀 생각지 못한 진행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럴 거였으면 왜 석달 전에, 아니 다섯 달 전에, 아니 올해 초에 이렇게 진행해주지 못하셨나 의문스럽기는 하다. 물론 '어른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ㅡ 그래서 그냥 학생들끼리 이렇게 뒤에서 서로 아쉬워하며 하소연할 뿐이었지만 ㅡ 나 스스로는 그간 많이 위축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일을 무척 좋아한다. 이 연구 주제는 내가 꿈꿔왔던 많은 요소들이 동시에 다 들어가 있다. 우선 발견 자체가 우연적이었고, 우리 실험실에서 능히 할 수 있는 연구 범위 내에 들어와 있으며, 그러나 발상의 전환 없이는 이룰 수 없었던 결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과학적 사실들만으로도 이러한 결과를 손쉽게 설명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분광학적인 어려운 말들로도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이 실험 결과는 눈으로 명확히 보여 독자로 하여금 '정말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게 하 룻 있다는 점에서 매우 선명하다. 이런 일을 내가 해내다니, 처음에는 무척 감격스러웠다. 지금은 하도 시간이 지나서 다소 무감각해지긴 했지만.


현재 이 논문은 Science 지에 투고가 되었다. 하지만 나나 교수님이나 이 논문이 그와 같이 높은 저널에 아무 문제 없이 실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처음 타깃은 Advanced Materials 나 Nano Letters 였는데 말이다. 설사 이 논문이 에디터로부터 차단되거나 리뷰어들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고 물러나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기쁘다. 그들이 준 의견들과 비판들을 읽어보면서 논문을 좀 더 가다듬고 원래 우리가 생각했던 저널들에 낸다면 왠지 기쁘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는 희망이 아직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는 끙끙대지 않고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다. 좋은 날들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