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체류 마지막날에 태호도 볼겸 오랜만에 구경도 할겸 뉴욕에 잠시 다녀왔었다.


뉴욕은 내가 즐길 거리들이 무척 많다. 우선 사람들이 거리에 많으니 흥미롭고, 좋은 볼거리들 ㅡ 특히 박물관과 미술관 ㅡ 이 있다. 거대한 공원이 있으며 우뚝 솟은 건물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뮤지컬과 공연의 본산인 브로드웨이(Broadway)와 저 유명한 재즈클럽 블루 노트(Blue Note)가 있다는 사실이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준다. 아쉽게도 이번 방문은 워낙 짧았는지라 블루 노트에서 공연을 보기는 힘들었고,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구경을 한 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하나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워낙 유명한 위키드(Wicked)를 보려고 했는데, 내 눈을 사로잡는 뮤지컬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The Book of Mormon 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몰몬경(經) 정도가 되겠다. 몰몬교, 그러니까 우리말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당장 우리 학교 근처에도 이들 교회가 있으며, 교수님들 중에서도 신자가 계시다고 알고 있다. 상당히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생활로 유명하며 특히 이들은 둘씩 짝지어 해외로 선교로 파송받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과거 미국 대통령 후보 물망에 올랐던 미트 롬니(Mitt Romney)가 몰몬교도라서 더욱 주목(혹은 비난)을 받았던지라 미국에서도 몰몬교에 대한 인식(혹은 편견)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뮤지컬 제목이 떡하니 이 '몰몬경'이라고?


호기심에 잠시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매우 유명한, 그리고 불경하고 유쾌한 뮤지컬이라는 설명이 줄을 이었다. 우선 우수한 연극 및 뮤지컬에 수여되는 상으로 유명한 토니 상(Tony Award)을, 최고 뮤지컬 상을 포함하여 9개 부문에서 수상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띠었고, '사우스 파크'의 제작자가 참여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각 넘버에 대한 간단한 해설들을 보자마자 이것은 놓쳐서는 안 될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 ㅡ 사실 이 뮤지컬을 한국 무대에서 결코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ㅡ 바로 인터넷으로 예매해서 밤 8시에 그 문제의 뮤지컬 The Book of Mormon 을 보았다. 여담이지만, 그 날 공연 역시 매진이었는지라 예매를 안 해갔으면 다소 고생했을 뻔 했다. (물론 잘 아는 사람들은 당일 취소되는 표를 잘 골라서 싼 가격에도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나는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만 뉴욕에 있어야 했던 말이다!)


2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는데 정말로 재미있었다. 전체적으로는 몰몬교도들의 위선과 허점투성이인 교리 및 역사에 대한 풍부한 풍자와 비꼼이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종교의 무의미함 혹은 불필요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광의적인 차원에서, 종교의 유익함에 대한 해학적인 대답을 제시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종교 뿐 아니라 이 뮤지컬은 아프리카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서도 상당히 무겁게, 그러나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이는 반드시 모든 관객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이와 같다. 선교사들이 도착한 우간다 마을에서 아프리카인들은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Hasa diga Eebowai(=Fuck you God)' 이라고 외치는데 과연 이들더러 신성모독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굶주림에 아사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HIV는 만연해 있으며 내전에 신음하는 이 사람들에게 오히려 기성 종교들의 '고상한 신의 뜻'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이와는 별도로 가벼운 풍자와 섹드립, 그리고 욕설이 난무하는데 보는 내내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리는 역할을 했다. 비록 나는 영어 모국어 화자가 아닌지라 무대에서 쏟아지는 온갖 상황 설정 ㅡ 예를 들어 조니 코크란(Johnnie Cochran)이 어떤 사람인지 미국인이 아니고서는 바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ㅡ 들과 농담들을 100%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하나하나 이해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뮤지컬 전반에 걸쳐서 아주 소프트한 동성애 코드도 깔려 있기는 한데 그렇게 노골적이거나 불편하지 않는 수준인지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애초에 남자 둘이서 파송받는데 그런 코드를 넣지 않고서는 재미가 없겠거니 싶었다.


마지막 넘버가 끝나고 나서 모든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개인적으로 프라이스(Price) 장로 역할을 한 주연 배우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끝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OST 음반을 사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이었는데 조만간 인터넷으로 구매를 시도해 봐야겠다. 한국에 들어온 지금 아직도 그 음률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Hasa disga Eebowai!'


아참. 그리고 한국에서 뮤지컬 관람 가격이 훨씬 싼데 시간이 되면 좀 자주 보러 돌아다녀야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