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꼬박 이틀동안을 논문 리뷰 제출에 매달려야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글을 제대로 읽기도 쉽지 않은데 평가자의 입장으로 비평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그 평가를 영어로 친절하게 풀어써야 한다는 것 역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평가를 부탁받은 저널은 저명한 세계 최대의 화학 관련 학회 중 하나인 미국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에서 발간하는 중급 정도의 충격 지수(impact factor)를 갖는 저널이었으므로 그리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저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동료 평가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가 이 사람들이 중점적으로 확인하고 측정했던 것들은 내가 크게 관심있어하는 분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저자들은 내 의견에 '뭐 이런 생각을 다 했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것을 알기에 이 부분에서 부족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도 이 사람들은 일을 참 많이 해냈다. (벌써 논문 초안에 그림 정보만 보충 자료까지 도합 18개...)


참고로 동료 평가의 결과 투고된 초안에 대한 최종 결정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1. 수정 없이 그대로 통과

2. 소규모 수정 요구 (minor revision): 소규모 수정의 경우 저자들의 답변과 수정 사항을 읽어본 편집장이 출판을 확정하기도 한다.

3. 대규모 수정 요구 (major revision): 대규모 수정 결정 후에는 반드시 저자들은 평가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의 답변과 추가 실험 및 데이터를 보충해야 하며 평가자들이 이에 만족하게 될 경우에야 출판이 확정된다.

4. 다른 저널에 투고 권고: 내용은 좋으나 본 저널의 성격과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때 다른 저널에 투고할 것을 권고할 수 있다. 일부 논문 초안의 경우 보다 적합한 저널에 투고되어 바로 출판이 결정되는 경우가 있다.

5. 거절 (reject): 거절되는 초안의 경우 저자들이 평가의 불합리 혹은 부당함을 항의하는 서한을 보낼 수 있으나 편집장의 직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같은 저널에서의 재심은 불가하다. (일사부재의 원칙?)


동료 평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하므로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말하지 않겠다. 아마도 편집장(editor)이 나와 다른 평가자의 리뷰,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의견을 수합하여 저자에게 의견을 전달하게 될 것 같다. 부디 편집장과 저자가 이 대한민국의 한 대학원생이 애를 쓰며 작성한 의견의 진정성을 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고 나니 마치 방학 숙제 잘 마친 것보다 훨씬 후련하다. 좀 애먹은 작업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좀 귀찮게 느껴지고 일이 늘어난 슬픈 기분이 들긴하겠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이런 기회가 자주 올 수 있으면 좋은 것이겠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