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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는 결국 계면활성제의 일종이다. 왜냐하면 두피와 머리카락에서 발생하는 각종 기름때를 제거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누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기름때 제거 외에 기능성 및 향을 위해 다른 첨가제가 들어가긴 하지만 어쨌든 샴푸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계면활성제 성분이 필수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계면활성제로 널리 쓰이는 것들이 로릴황산 소듐(sodium laurylsulfate), 로릴에스터황산 소듐(sodium laureth sulfate), 로릴황산 암모늄(ammonium laurylsulfate) 등이다. 이들은 (계면활성제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한쪽은 물에 잘 녹을 수 있도록 물 분자와 정전기적 상호 인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황산 이온 부분과 기름때와 같은 지방 성분을 잘 감쌀 수 있는 알킬 체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물에서 마이셀(micelle)을 형성하게 된다. 석유에서 화학적으로 합성해냈다는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이들 제품의 원료는 팜유나 코코넛유와 같은 식물성 섬유에서 얻어낸 1-도데칸올(1-dodecanol)로, 알케인 사슬이 12개로 이뤄진 긴 지방 알코올이다. 이들을 황산 혹은 삼산화황 가스와 결합시킨 뒤 수산화 소듐(NaOH)과 반응시켜 황산소듐염을 만들면 음이온성 계면활성제(anoinic surfactant)가 탄생하게 된다.
이외에 첨가되는 물질들 중에는 친숙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향 성분들을 용해시키기 위해 쓰이는 폴리소르베이트(polysorbate)의 경우 생물학적으로 널리 쓰이는 고분자인 폴리에틸렌글라이콜[poly(ethylene glycol), PEG]으로 치환된 소르비탄(sorbitan)의 일종이고, 디메치콘이라는 상용명으로 널리 알려진 폴리다이메틸실록세인[poly(dimethylsiloxane)]은 이미 수많은 실리콘 고무와 오일, 그리고 콘택트 렌즈 등과 같이 투명하지만 유연한 제품을 만들 때 전방위적으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쿼터늄(quarternium)은 헥사메틸렌테트라아민(hexamethylenetetramine)이 1,3-다이클로로프로핀(1,3-dichloropropene) 사이에서 클로린을 치환하면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염으로 계면활성제와 방부제 역할을 하고 이런 용도로 샴푸에 더해지는 물질로는 메틸아이소싸이아졸리논(methylisothiazolinone)도 있다.
저런 긴 화합물 이름이 전혀 생소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 유해한 것들을 눈앞에서 다루는 화학자의 입장에서 '다소 위험하게' 인류의 피부 및 장기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는 것은 계면활성제 쪽이 아니라 후자의 방부제 관련 계열의 화합물들이다. 실제로 메틸아이소싸이아졸리논의 경우 위험성이 여러번 회자된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샴푸를 수십 분동안 머리에 이고 지낼 것도 아니고 잠깐 거품을 내서 씻은 뒤 물로 헹궈내는 것이며 그렇다고 사용하는 양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심대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나치게 해당 성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알레르기성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샴푸 뒤 물로 충분히 머리를 헹궈내면 (의도적으로 먹지 않는 이상) 유해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이런 식이라면 세안제나 화장품 사용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무엇이든지 적절한 양을 적당하게 사용하고 완전하게 물로 씻어내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샴푸의 경우, 특히 남성들의 경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남자들은 머리를 그리 성심성의껏 감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아닌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머리가 긴 여성들처럼 충분한 시간을 들여 감는 남성은 흔치 않다. 출근길에 바쁜 남성들은 샴푸를 쭉 짜서 거품을 미친듯이 막 낸 다음에 고개를 숙인 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그냥 어느정도 버무린 다음에 수건으로 닦는다. 나는 아니라고 항변할 남성들이 많겠지만 과연 '내 머리 속을 파고든 샴푸를 충분히 제거했다고 생각한다!' 라고 매일 확신하며 머리를 감는 남성은 정말 거의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머리에 남아있는 샴푸 성분들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샴푸 성분 그 자체보다도 올바르지 않은 샴푸 습관으로 인해 머리에 남게 되는 잔류 성분들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 생체 유해성 때문에 노푸를 주장하는 것은 약간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노푸를 통해 줄일 수 있는 생체 유해성의 정도라는 것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 문제를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약간 달라진다. 최근 샴푸를 구성하는 화합물들은 최대한 생분해될 수 있도록 제조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많은 화학적 발전을 통해 폐수로 버려지는 많은 물질들은 되도록이면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환경에 덜 영향을 끼치는 물질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물질들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물질들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그런 생분해성 물질들이 자연의 정화 능력 이상으로 무지막지하게 쏟아져 나온다면 어머니 자연도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샴푸를 제조하기 위해 소모되는 각종 산업적 과정들을 생각해보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산물과 자원 소모는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푸는 오히려 환경보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사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니 국민학생일 때 우리는 모두 폐식용유로부터 만든 재활용 비누로부터 머리를 감고, 뻣뻣해진 머리카락은 식초를 탄 물에 헹궈 중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육을 늘 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얘기였고 우리는 모두 샴푸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그 10살도 안 되는 아이들에게 주입하고자 했던 그 얘기들을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반추해 보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노푸 운동은 이미 20년 전 교과서에서 주장하던 바 그대로이다. 그러니 이런 움직임이라면 나도 기꺼이 동참할 의지가 있다. 화합물 이름이라면 무섭다고 치를 떠는 일반 대중에게 '그런 긴 이름들이 악마의 이름은 아니다'라고 설득하는 것은 꽤나 소모적이고 또 효과적이지 못하지만 '환경을 생각해서 하는 게 좋겠어요'라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보다 설득력 있고 또 유효하다. 이것은 거짓말도 아니고 우회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처음으로 노푸 머리감기를 시도해봤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방식이 탄산수소소듐(Sodium hydrogen carbonate)가 주성분인 베이킹 파우더를 물에 푼 뒤 이를 머리에 바르고 마사지하듯 두피를 씻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식초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식초로 헹구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열심히 머리를 약염기성 용액으로 씻어주고 충분히 헹궈준 뒤 나왔다. 우선 샴푸를 쓰지 않으니 머리에 뭐가 남아 있을 거라는 찜찜한 기분은 없다. 다만 기름기가 완전히 제거된 것 같지는 않아 약간 기분이 묘하다. (하지만 나는 이전에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하면 3일간 머리를 감지 않곤 했으므로 이 정도 소위 떡진 것은 아주 약과이다.) 내일부터는 식초를 물에 타서 헹궈내고, 그리고 베이킹 파우더 물과 식촛물을 세척병 같은 곳에 넣어서 쉽게 머리에 뿌려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하지만 덧붙여서 말하자면 사실 나는 탄산수소소듐의 세정력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어떻게 계면활성제 없이 머릿기름때를 제거하겠는가? 첫 시도라서 사람들이 해본다는 방식을 따라봤지만 이후로는 비누를 사용하여 머리를 감을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 머리가 다시 곱슬이 되는 건 아니겠지...?)
신기한 것은 두피를 긁으면 예전에는 흰 가루가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그 양이 현격히 줄어 있다. 나는 그것이 두피에서 나오는 때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머리 속에 잔류하던 샴푸 성분이 굳어지고 머릿기름때와 엉겨서 형성된 고체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이것은 노푸의 효과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내 샴푸 습관이 엉망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첫 시도이니만큼 꾸준히 시도해보고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판단해서 결론을 내려고 한다. 모두들 지켜봐 주시길.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