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이유는 몰랐지만 막연히 우리 할머니는 병상에서 좀 더 오래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 아침 큰 고모부로부터 할머니께서 위중하시다는 SMS가 날아왔을때 내 예상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오전 9시 반에 소천하셨자. 즉시 나는 특별휴가서를 제출하고 ㅡ 교수님께서는 이거 마치 말년휴가와 같다고 하셨다. ㅡ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이모와 함께 창원의 상복공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시자마자 만 하루도 안 되어 다시 귀국행 비행기를 급히 잡으셨다. 입관이 세시였는데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3시 2분에 장례식장이 도착하셨고 할머니의 입관을 지켜보실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었다. 이윽고 상복으로 모두 갈아입은 우리 친척들은 모두 문상객을 맞이할 준비를 완전히 마쳤다.


우리 할머니에 대한 인상은 사실 그렇게 강하지 않다. 우리 할머니는 부드러운 분이셨고,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할머니셨다. 어린 아이였던 나는 그런 할머니의 의중과 화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우리를 편하게 해 주셨고 또 늘 함께해 주셨다. 외할머니와는 대체로 대척점에 있었던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외부활동도 많고 아주 억척스럽기까지 한 외할머니에 비하면 우리 친할머니는 매우 조용하고 사려깊은 여인의 모습을 간직하셨다. 지난 3~4년여간 요양병원의 병상에서 지내셨는데 병상에서조차 참 조용하고 순하셨다. 이제 그런 모습도 다시 뵐 수 없게 되긴 했지만.


그건 그렇고, 3일의 기간 동안 오랜만에 많은 친척들을 뵈었다. 백부와 백모, 그리고 이제 유일한 종형인 태수형과 형수님 그리고 귀여운 종질들, 그리고 세 고모와 고모부는 물론이거니와 고종사촌 형누나들 가족까지 모두! 할머니는 오늘 하루 당신의 손주 8명과 증손주 10명을 맞아주셨다. 그뿐인가. 불모산에서 지내시는 작은할아버지 가족들도 봤다. 나랑 비슷한 연배인 재종제들까지 한자리에서 보기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가지 걱정은, 아마도 할머니 사후에 이 많은 친척들과의 관계는 무척 멀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5촌 이상의 종숙부는 물론이거니와 재종제들은 사실 이름조차 잘 모르는 상황. 우리 사촌지간들은 그나마 잘 알고 지내며 있으나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니. 앞으로 우리 친척들이 어떻게 결집하는가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 싶다.


많은 분들의 문상으로 내 무릎 양쪽에는 약간 붉게 멍이 들긴 했지만 뭐 괜찮다. 할머니 마지막 길까지 잘 지켜드리고 끝까지 자리를 잘 지켜서 작은 손주의 의무를 잘 마치면 그거야말로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해드리는 효도가 아닐까 싶다. 할머니, 부디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