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우리 화학부 졸업요건의 양대산맥은 논문심사, 그리고 논문 게재를 허락한 국내외 저널의 충격 지수(Impact Factor) 합계 하한선이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새로운 규정이 스멀스멀 들어와서 아예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공개 세미나이다. 졸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학부에 공개 세미나를 공지하고 이를 실행한 뒤 학부에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정확히는 2010년도에 박사과정으로 편입된 사람들부터 적용되며, 특히 2012년도 이후에 박사과정으로 편입한 사람들은 졸업하기 6개월 전에 이를 시행해야 하는 보다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박사과정생들의 졸업은 단지 요건을 채웠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교수님과의 협상과 승인이 어찌 보면 더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졸업 전 6개월이라는 규정이 사실상 무의미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내가 졸업하고 싶다고 내 맘대로 졸업할 수 있지 않는이상 내가 언제 졸업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6개월 전은 또 언제이려나. 이리하여 학부에서는 박사과정 수료 이후에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졸업 시기와는 관계 없이 빠른 시일 내에 일괄적으로 이 '공개 세미나' 의무에서 자유롭게 하고자 '학생 콜로퀴엄'이라는 과목을 신설하여 졸업을 준비하는 박사과정생들의 공개 세미나의 시공간을 든든히 확보해 주려고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정책이 내년인  2016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2015년 올해는 정책이 바로 서지 못한 상황에서 다소 위태롭게 학사 일정이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현재는 원래 연구과목이던 다른 과목이 세미나 과목을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똥은 내게도 튀었다. 원래 4~5월쯤에 넉넉히 준비하고 공개 세미나를 하려고 했는데, 상중에 온 해당 세미나 과목 담당조교의 메일을 받아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공개 세미나와 관련된 모든 결정 사항들이 학부 교수님들의 승인을 받은 것이고, 또 그 변화의 지향이 부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바, 학부에서 정한 내규를 따르고자 하는 생각에서 순순히 본 과목을 통해 공개 세미나를 실시하겠다는 답변을 보냈다. 그리고 그 날짜는 3월 9일 월요일로 지정되었다. 다음주! 다음주다.


사실 지금까지 진행했던 모든 학회 발표나 연구 발표는 어느 정도 공통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고분자를 안다든지, 그래핀을 안다든지, 아니면 적어도 나노입자를 아는 사람이었다든지. 그런데 학부 공개 세미나에 모이는 학생들은 고분자도, 그래핀도, 심지어 나노입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때문에 청중의 수준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는 내게 큰 부담이다. 벌써 도입부의 슬라이드 수가 평소의 배는 되는 것 같다. 사실 이것이 박사논문심사발표가 아닐진대 내 연구결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다. 어차피 이 사람들에게 나는 '공개 세미나를 의무적으로 하는 수많은 박사과정생들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인만큼, 보여주고 강조할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그리고 좀 더 대중강연 스타일로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농담이나 소소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섞어가면서 말이다. 굳이 감추인 속내를 드러내자면, 언젠가는 이렇게 일반적인 대중 앞에서 내 연구에 대해 편하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긴 했었다. 그러니 이번 공개 세미나는 좋은 기회라고 볼 수도 있다!


그나저나 이 세미나 준비로 인해 3월 첫주는 몽땅 날아가게 생겼다. 발표 스타일과 진행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보니 시간이 꽤나 걸린다. 어떤 실험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 우리 교수님은 '성수야 뭐 발표하는 거 쉽잖아' 이러셨지만 정작 발표를 멋지게 하시는 당신께서도 발표 자료를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잠시 잊으셨나보다. (하긴 교수님 발표 자료 제작에는 많은 학생들이 동원되기는 한다만...) 아무튼, 큰 문제 없이 잘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