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나도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듯 싶다. 어제 새벽에 발표자료를 최종 점검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면서 이명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도 그대로였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돌발성 난청'일수도 있다는 말에 학교에 도착해서 기본적인 사무를 해결하고나서 바로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기본적인 청력 검사를 하고 귀와 코를 검사해 보시더니 별 문제는 없고 정상이란다. 그냥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생각하라고 하시니 나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였다. 내 정신은 '공개 세미나 그까이꺼...' 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 몸은 '야, 이거 장난 아니야'라고 절규하고 있었나보다.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지만 발표자료 슬라이드 수는 첫 계획보다 대폭 줄었다. 원래 29장의 슬라이드였지만 23장으로 줄이고 슬라이드에 들어가는 그림과 글도 최대한 단순화했다. 그럼에도 발표 연습을 해보니 발표 시간이 20분 안으로 좀체 들어오지가 않는 것이다. 조금 걱정될 만도 했다. 애니메이션 효과와 슬라이드 번호 등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최종 버전의 파일을 제작해서 저장해 두었다.


발표 시간은 오후 5시 반. 총 2시간 동안 4명이 발표하는데 나는 순서상 두 번째이다. 밥을 먹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서 저녁도 그냥 건너 뛰고 발표 순서를 기다렸다. 500동 306호 강의실에서 발표 시간을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이윽고 강의실이 꽉 찼다. 보통 수업 때도 그렇게 꽉 차지 않는 306호 강의실이 이렇게 학생 발표로 인해 꽉 차는 걸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07학번 성환이가 발표를 훌륭히 마치고 마이크를 내게 넘겨 주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발표를 시작했다.


스스로 판단하자면 30분간의 발표에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우선 마이크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 그런지 중간부터는 결국 마이크를 내려놓고 육성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못내 아쉬웠다. 마이크를 내려놓자 양손이 주체할 수 없이 마구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게 좀 민망스럽다. 그리고 생각보다 발표에 걸린 시간이 20분보다 짧았다! 무대(?)에서의 언변이 오늘따라 책상에서 연습하던 것보다 훨씬 괜찮아서 나 스스로도 놀랐다. 말하면서 '생각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계산해보니 16~17분 정도 걸렸다. 어떻게 보면 지루한 수강생들을 배려해 준 것이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재미있는 그림이 있는 연구 결과 한 셋을 더 보여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들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전혀 떨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말하는 내용 대부분은 다 한 번쯤 영어로 발표해본 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한국어로 발표하라고 이렇게 멍석을 깔아주니 그렇게 자유롭고 편할 수가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은 모국어로 소통해야 해! 공개 세미나 전체 일정이 끝나고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복도에서 윤재를 만났는데 윤재가 나더러 약을 팔아도 되겠다고 농담을 해 주었다.


아무튼 졸업을 향한 구부 능선 중 하나를 거뜬히 넘긴 것 같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밟아나가야겠다. 오늘 성수 잘 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해 줄 터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