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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정본을 받아보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예상보다 미처 생각 못한 엉뚱한 실수들(예를 들면 수의 일치라든지 시제 등등)도 많았고, 전치사(preposition) 같은 경우는 내가 항상 in 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on으로 고쳐져 있었다. 더욱 나를 좌절스럽게 만든 것은 관사(article)인데 도대체 a 와 the 는 아무리 배우고 배워도 이게 도통 머릿속에 완전하게 박혀 있지 못한 듯 싶다. 부정관사와 정관사, 일반적인 명사와 구체적인 명사, 아무개와 그것의 차이를 우리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를 실제 언어 생활에 연결시켜 구분하기란 대단히 힘들다. 특히 the 와 복수 명사가 나오는 경우에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 모를 정도로 난감할 뿐이다. 더구나 일반 명사가 아닌 과학 용어와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헛갈린다. 그나마 독일어처럼 관사의 격변화가 없다는 것을 다행히 여겨야 할까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교정자가 절대로 쓰지 말라는 잘못된 영어 표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 국문법에는 없는' 것들이다. 한국어에는 전치사도 없고 관사도 없다. 수의 일치도 없고 시제도 비교적 자유롭지 않은가? 요컨대 외국어로 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이런 '그네들만의 문법 감각'에 도가 터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지난 10년동안 수많은 영문을 보고 쓰고 영어로 이런저런 옹알거려도 보고 했는데도 수준이 제자리걸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퍽이나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또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글을 읽을 줄 알고, 용인될 수준에서의 쓰기와 말하기가 된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영어 공부는 안 했던 것 같다. 어차피 원어민 실력의 50%에서 80% 끌어올리는 시간만큼 투자해야 80% 에서 90%로 향상되고 또 시간들을 합친 시간만큼 공부해야 90%에서 95%가 되고, 또 그때까지의 시간을 더한 만큼 노력해야 98%가 되고, 그렇게 또 기나긴 시간을 덤으로 얹어 익히면 99%가 될 것이라는 게 내 자조적인 생각이다. (참고로 절대로 100%가 될 수 없다. 우리 유전자는 논한다. 그는 한국인이라고.) 그랬으니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오히려 같은 투자 시간 대비 실력 향상이 빠르게 느껴지는 제 2 외국어들에 더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다. 진짜 교수님께서 대학원 입학 초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매일 영어 표현 한두개씩 익히고, 좋은 영어 문장 한두개씩 써보고, 매일 논문 한 편씩 읽으면서 지냈다면, 지금쯤 수천 개의 표현과 문장과 글을 섭렵했을텐데.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까지 나는 뭐했나 싶다. 당장 지금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것 자체도 영어 공부의 신이 굽어 살펴보시기엔 낭비라고 생각하실 것이 아닌가.
그래도 교정자가 글을 완전히 잘못 이해해서 이상하게 바꿔놓은 부분이 없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나. 가만 생각해보면 영문으로 글쓰기를 논하기에 앞서서 국문으로 글쓰기를 잘하는 것도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 내 홈페이지 관리는 그런 측면에서 우리 영어의 신께서 용인해주시길. 나도 박사 졸업 후에는 영어 학원이랑 과외를 좀 받아볼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