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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사과정생이 아닌 박사로서 가는 첫 국내 학회였다. 이제 더 이상 고분자학회의 강연과 포스터 발표에 지대한 흥미가 나지 않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박사님들과 교수님들, 그리고 심지어 후배들도 그런 얘기를 입을 모아 하는 것을 보면 학회가 양적으로는 성장했을지는 몰라도 안에서부터 위기가 생겨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자꾸 드는 것은 왜일까. 요즘 학회는 의견 교환과 토론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최근에 내가 출판한 연구를 자랑하는 자리가 된 것만 같아 참 씁쓸하다. 최신 정보는 오히려 인터넷에서 빠르게 접할 수 있고, 학회에서는 적절히 그 결과물들을 엮어 낸 15분짜리 뒷북 강연이 판을 치고 있으니 이제 학회에서 최신 연구 내용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은 적어도 고분자학회의 경우에는 실종된 지 오래인 듯 싶다.
2. 학회만이 위기가 아니라 나라 자체가 위기가 아닌가 싶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 직업, 전공, 연봉을 불문하고 같은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능력과 실력보다 이력서에 써내는 줄 수와 숫자가 더 중요해진 세상, 놀라운 성장을 거듭한 대한민국의 경제 신화 뒤에 감쳐줘 있다가 곪은 상처 터지듯 요즘 나타나기 시작한 착취와 갑질의 현장, 해준 것은 없는데 할 것만 강요하는 정부, 점점 연구할 의욕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최근의 열악한 연구 행정 환경 등등. 놀랍게도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교육이 첫째 문제인데, 그렇게 치자면 교육을 베푼 이전 세대의 문제이며, 그들의 문제는 뼈아픈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니 사실상 책임을 전가할 상대란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 진짜 답답한 노릇이다. 꿈은 없고 길은 없으니 도전 정신과 진취적인 기상은 잃은 채 노예처럼 길바닥에 청년들이 엎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이 현실을 외면한 채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야', '나 때는 이보다 더 심했어' 이런 소리만 하고 앉아있으니 진짜 답답한 노릇이다.
3. 학회 중에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는데, 영어 교정 이후 연구 논문 한 편을 Langmuir에 제출해도 좋겠다는 답신을 받았다. 다음주 중에 교정을 완료하면 아마도 다다음주에 투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구 생활 최초로 교수님의 직간접적 수정 없이 전부 내가 영어로 작성한 논문이다. 물론 논문의 큰 방향과 작성 지침은 교수님이 수정해 주셨지만 말이다. 절차가 간소화되니 논문 작성에 소요된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논문 한 편도 서론을 쓰기 시작했다. 아참. 학회 마치고 나서 내 연구 과제를 돕고 있는 학부 연구 참여생이 결과를 단기간에 얻어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온성 액체를 이용한 실험인데 충분히 논문을 써서 보고할 만한 일이 될 것 같다. 다행인 것이 제출'한' 논문과 제출'할' 논문과 '쓸' 논문 세 종류가 항상 같이 있다는 것이다.
4.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학회 중에 시영이를 만났다. 조길원 교수님 연구실 사람들이 복도에 모여있었을 때 시영이가 없어서 이번에는 안 왔나보다 생각했는데, 시영이는 내가 이번 학회에 참석할 줄 꿈에도 몰랐는지라 내게 연락을 미처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짧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미 일찍 결혼한 시영이가 생각보다 의연하게 혼인 생활과 연구 생활을 같이 짊어지고 있는 것이 참 대견해 보였다. 시영이도 곧 고민이 엄청나게 많아질 시기를 지나가겠지만, 아무튼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구를 잘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5. 대구 동성로는 생각보다 먹고 놀만한 것들이 많았다. 실험실 사람들은 야끼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노라며 아주 극찬을 하던데 나는 그게 그렇게 찬사를 아끼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도시에서 먹은 음식들이 맛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고.
6. 만일 내가 다음 대전 고분자학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이번 학회는 실험실 후배들과 참석한 마지막 국내학회인 셈이었다.
7. 오는 길에 12월 혼인을 준비 중인 진형이를 만났다. 진형이도 KAIST 물리학과에서 연구를 시작한지 벌써 만 4~5년이 넘었다. 가끔 보면 좀 안쓰럽기도 한데 어느 정도 흥미를 가지고 일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그 아이가 있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퍽 위안이 되기도 한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골인했는데 지금까지 무수한 어려움도 이겨냈으니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연구 주제를 하나 새롭게 잘 창안하여 졸업 요건도 충족시키고 논문도 써 내면 좋을텐데, 시간이 많이 없어보였다. 아무쪼록 잘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 진형이는 올해 초에 훈련소를 갔다온 뒤에 살이 좀 빠져서 그런가 더 건강하고 활기차 보였다.
8. 이번 대전-대구 기행의 하이라이트는 한글날 공휴일에 화학부 05 동기 여자들과 함께 한 짧은 여행이었다.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하고 있는 현주가 난데없이 휴가 기간에 대전으로 내려왔단다. 가끔씩 학부 동문들이 있는 곳에 서에 번쩍, 동에 번쩍하는 그였지만 시기가 비슷하게 대전에서 보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침 대전의 LG 화학에서 근무 중이었던 이랑, 다정, 혜선이와 함께 다섯이서 함께 만나게 된 우리는 아침부터 차를 타고 계룡산 국립공원의 수통골 지구로 향했다. 아침부터 등산을 한다기에 나는 여자들이 어인 등산인가 상당히 의아해했지만 등산의 실질적인 목적이 등산 후 오리고기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되었다. 순천의 용산전망대에 오른 뒤 오랜만의 등산이었는데 빈계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고 날도 그리 덥지 않아서 과히 힘들지는 않았다. 빈계산에서 바라 본 계룡산의 모습이 일품이었는데 조만간 홈페이지의 사진첩에 올릴 예정이다. 끝나고 하산하여 감나무집이라는 유명한 오리고깃집에서 오리백숙을 맛있게 마음껏 먹었고, 충남 지역의 명물이라는 밤막걸리도 몇 사발 들이켰다. 2층 테라스에 있는 카페에서 빙수를 시켜 먹으며 두 시간 이상 앉아 사람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늘어놓다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충남대에서 커피를 사서 유림공원을 한 바퀴 도니 그제서야 이제 집에 갈 시간. 실험실 석사과정 동기였던 이랑이를 제외하면 다들 5~6년만에 보는 것이었는데 마치 5~6개월 전에 봤던 사람인양 별로 어색하지가 않았고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다정이 누나가 '우리들이 처음 만난지 10년이 지났어.'라고 얘기했을 때 시간이 정말 빠르게 많이 흘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다들 예전같은 말랑말랑한 철없는 학부생의 모습을 잃은지 오래이지만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며 잘 살고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 아닌가. 우리들은 각자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고민거리만큼이나 이야깃거리는 더 많아졌고, 덕분에 오랜만에 옛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
글을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드네요....야/끼/우/동이 그냥저냥 이셨나요?
어떻게 그럴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