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Halloween)이 10월 31일이라는 것, 그 날은 모든 성인들의 축일(All Saints' Day)인 제성절(諸聖節) 혹은 만성절(萬聖節) 전날이라는 것, 어린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trick or treat?'이라고 물어보며 사탕을 받아간다는 것, 어른들은 각양 각색의 기괴한 복장을 입고 파티를 즐긴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핼러윈 파티를 제대로 경험한 것은 나이 서른이 되어서 처음이었다. 사실 당연할 수도 있는 것이 내가 학부생일때만 해도 핼러윈은 서양에서 즐기는 그들만의 잔치였을따름이고, 정작 핼러윈이 국내에 상륙했을 당시 나는 그런 파티에 참가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바쁜 대학원생이었다. 물론 마침 이 시기에 파티를 좋아하는 독일 교환 학생 친구들이 있었던 것도 한 몫 했다.


어제, 나른한 오후에 카카오톡을 통해 Katta가 내게 밤 9시 반에 이태원역 2번 출구에서 보자고 메시지를 했고, 나는 학교에서 일을 마친뒤 집으로 돌아가 옷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용산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좀비 화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대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신용산역에서 이태원역으로 가는 전철에서는 벌써부터 범상치 않은 복장과 분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나는 삼각지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는 친구들 무리에 운좋게 합류할 수 있었고 처음 만나는 분들과 인사하며 통성명을 했다.


그렇게 도착한 이태원역은... 내가 살면서 이렇게나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역사 내외에 운집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호각을 불며 교통 정리를 하는 교통경찰들에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로 거리와 도로는 수많은 인파와 차량으로 뒤덮여 있어 바늘 하나 서 있을 공간조차 없었다. 기사로만 접했던 핼러윈 파티의 열기를 눈앞에서 직접 목격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대부분은 얌전한 노는 복장이었지만 간혹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복장과 분장을 보며 파안대소하거나 혹은 흠칫할 때가 있었다. 우리 무리는 거리 위에서 예거마이스터와 레드불을 섞어 내리 석 잔을 들이켰고 이태원에서 한강진쪽으로 가는 거리에 있는 Rocky Mountain Tavern 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음악은 점점 사람들을 춤의 세계로 인도했다. 내부는 더워서 나도 옷을 좀 벗고 Katta와 함께 준비해갔던 옷을 입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문 DJ가 하는 것 같지 않아서 선곡한 곡들의 이음이 영 깔끔하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즐길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거의 10시쯤에 시작된 파티 분위기는 2시 반 정도가 되어 소강 상태에 이르렀고, 나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로 점령된 이태원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분장도 안 한 채 일찍 나오게 된 것은 바로 다음날인 주일이 성공회에서도 축일로 지키는 주일이었을뿐 아니라 내가 감사성찬례 복사 ― 사제의 전례 집전을 돕는 사람 ― 로 섬기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애매한 시간에 택시를 탔기에 택시만 세 번을 갈아탔고, 집에 도착한 시각은 대략 새벽 4시 반 정도였다. 빠르게 씻고 잠을 청한뒤 무사히 교회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렸고, 그리하여 숨가빴던 핼러윈-축일 일정을 잘 소화해낼 수 있었다.


핼러윈 파티는 문화 사대주의, 서양 따라하기의 전형으로 여겨져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핼러윈이라는 문화는 우리 고유의 문화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고, 무슨 뜻깊은 행사나 인류의 공동선을 기리는 것도 아니라 단순히 흥청망청 쓰며 즐기는 '노는 날'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난의 여론이 뜨거운 것이 사실이다. 나도 처음에는 왜 이런 서양의 축제 문화까지 우리가 수입해서 즐겨야만 하는 것인지, 또 이것이 불러올 폐해나 악영향이 문제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직접 이태원에서 경험한바 핼러윈 파티가 우리네 젊은이들에게 긍정적인 요소가 무척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들 남 눈치본다고 압제되다시피하며 살고 있는데 이날만큼은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조금 많든 적든 기괴하거나 재미있는 복장과 분장 아래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가면 뒤에 자신을 가려놓고 즐길 수도 있는 공식적인 날이 바로 핼러윈 아닌가. 어떤 이들은 그 복장과 분장마저 남 신경쓰느라 스트레스 받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스트레스는 시쳇말로 '핵노답'인 사회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다. 분노가 가득하고 해결책은 없는 문제만 가득한 요즘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휴가와 휴식, 놀이 문화가 필요한데 핼러윈 파티는 그런 분출구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참 괜찮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행사는 다분히 상업적이다. 그러나 그 성스러운 크리스마스와 하찮은 빼빼로데이, 그리고 밸런타인데이를 생각해보면 핼러윈이 상업적이라고 해서 비난받아야할 이유는 엄밀히 말해 전혀 없다. 난 오히려 거리에서 활동하는 분장업자들과 복장을 판매하는 사람들, 액세서리들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내서 또 하나의 전에 없던 경제 시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 비록 하루일뿐이지만 하루 휴가를 통해 경제 활성화 수준이 몇십, 몇백 억원 정도라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요즘, 핼러윈 파티를 통해 새로운 소비 문화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활성화되었다고 보면 그 또한 긍정적인 것 아닌가. 혹자는 꾸미고 즐기는데 돈이 많이 든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선택 여하에 달렸다. 나같은 경우는 핼러윈 복장을 위해 들인 돈이 0원이다. (다만 어린이집 핼러윈 파티 때문에 학부모의 부담이 커지는 등의 폐단은 분명히 지적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외래의 것이긴 하지만 우리 방식대로 잘 즐기고 그것을 통해 긍정적인 것들을 잘 누리면 된다. 새롭게 생겨나고 사라져가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것은 이래야만 해'라는 경직된 태도를 갖기보다는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어제 파티를 통해 핼러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나저나 아마 10년 내에는 핼러윈이 너무 보편화될 것이기 때문에 차별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다른 이국적인 파티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것이 아마도 3월에 있는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