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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일기(http://fluorf.net/xe/77768)에서 밝혔듯 10월 말에 페리언 Vocabulary 책을 가지고 매일 10개씩 단어를 새로 외우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용케도 2달이 조금 못 지난 지금까지도 이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사실 매일 10개로 구성된 새로운 단어 세트를 완벽하게 외우지는 못했다. 부정(不定)이 두 곳 모두에 적용되는데 매일 하지는 못했고, 또 10개의 단어를 완벽하게 외운 것은 아니다. 당장 10월에 적어 원노트(OneNote)에 저장해두었던 10개의 단어 중에서는 한 75% 정도 완전히 기억하고 있으려나 싶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아예 몰랐던 0%보다는 무한대 곱절의 진전 아니겠는가.
오늘 잠깐 세어 보니 총 230개의 단어를 노트에 저장했다. 평균적으로 이틀에 한 번씩 새로운 세트의 단어를 노트에 저장했다고 보면 되겠다. 고작 10개씩 외우면 얼마나 어휘력이 늘겠느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1년을 하면 1,000개는 거뜬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짓(?)을 수년 간 계속했다면 몇 천개의 단어를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세상에, 영어단어 수 천개는 말만 들어도 너무 막막하지 않은가. 그런데 10개씩 쪼개서 꾸준히 하면 그 정도 외울 수 있다. 새삼 놀라운 일이다.
왜 진작에 이렇게 하지 못했지? 10개씩 노트에 정리하면서 외우고 예문을 보며 활용을 해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이다. 예전에는 이 30분마저 다른 공부에 쏟아 부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만,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정도의 여유 시간은 늘 있었던 것 같다.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주중에도 분명 쓸데없는 핸드폰 게임이나 인터넷 서핑을 하는 시간을 줄였다면 그 정도 여유는 있었지. 하지만 또 다시 돌이켜보면 그런 게 시간낭비였다고 해서 과거의 내게 그 시간을 단어 공부에 쏟아부었야 했노라고 툴툴거리는 것은 조금 비인간적인 것 같다. 너무 잔인한 처사 아닌가. 아니 없는 시간 있는 시간 쪼개고 쪼개서 그렇게 공부해야 했나. 아무튼 과거의 나를 옹호하고 변호하자면, 나는 그 당시에 쉼과 유희를 원했을뿐 아니라 단어 공부를 하는데 조금의 의욕도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금같이 꾸준히 10개씩 단어를 외우는데 헌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이쯤 와서는 이 말들이 변명과 궤변에 불과한 것 같아서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스페인어 사전, 독일어 교과서, 러시아어 교본을 보면 '쟤네들도 시간을 쪼개서 조금씩 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우수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을텐데...'라는 짧은 탄식이 나오곤 한다. 피아노도 재즈도 이런 식으로 조금씩 시간을 내어 연마했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뛰어난 실력을 뽐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능률적이지 못했을 것이고 그닥 좋은 학습 효율을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례로, 러시아어 공부의 경우 카자흐스탄 첫 방문 이전 한달 동안의 기량 향상이 그 이후 1년 동안의 향상 속도보다 월등히 앞섰다. 두 번째 카자흐스탄 방문 이후에는 러시아어를 쓸 일이 사실상 소멸하였기에 학습 의욕은 물론 학습에 쏟는 시간조차 자취를 감췄다. 그러니 박사학위 논문 발표를 준비하면서 러시아어 교본을 공부하는 것은 무의미한, 비능률적인 일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잠깐 생각해보라. 많은 사람들은 '아니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쏟을 바에야 네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라고들 얘기하겠지만 어차피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내가 '해야 하는' 일에 100% 온 시간과 정성을 쏟지 못한다. 아무리 큰 노력을 들인다고 해도 100%에는 못 미치는, 한 80~90% 정도라고 치자 (이것도 엄청 높게 잡은 비율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10~20%는 쉬는 것, 혹은 노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 것이고 또 바람직한 것일까. 막상 쉰다고 해서 우리는 잘 쉬는 것도 아니고, 혹시 그 쉰다는 핑계로 진짜 시간 낭비를 했던 건 아닌가.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과연 자는 것 말고 도대체 어떻게 잘 쉬었는지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우리 한국인들만큼 '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민족이 없지. 그러니 그 시간 낭비하는 명목상의 휴식 시간에 차라리 책이라도 한 장 더 읽고, 단어라도 더 외우고, 기도를 하며 하느님과 접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바람직하다는 게 이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원래 그건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꿈꿀 수 없는, 애초에 안 되는 일이었던 걸까. 모두들 Carpe Diem 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한다지만 저것만큼 인간 본성에 배치되는 격언이 없다. 시간을 쪼개 단어를 조금씩 외우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혼란스러운데 실험이나 하러 가야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페인어는 오랫동안 꾸준히 봐 와서 그런지 감이 완전히 죽은 것 같지는 않다. 완전히 죽기 전에 되살려야지.. 1월에 학원을 다니면서 DELE를 준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