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에 일찍 자야지..' 라고 늘 마음 먹어도 실패하는 게 바로 전자 피아노 때문이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면 피아노나 치다 잘까 해서 건반 앞에 앉는데 실컷 연주하고 나면 1시를 넘게 된다. 한동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치다가 최근엔 어머니께서 원주에서 보내주신 '인벤션'과 '6개의 작은 프렐류드', 그리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소나타 및 슈베르트의 즉흥곡 등등. 항상 업라이트 피아노로 치다가 처음으로 전자 피아노로 쳤는데, 건반을 내리치는(?) 느낌이 조금 다르지만 좀 더 섬세하게 칠 수 있다는 점과 헤드폰으로 음을 더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게 강점인 것 같다.


사실 집에서 치는 피아노 곡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이 클래식 레퍼토리를 조금 확장시켜보려고 체르니 50번 연습곡과 베토벤 소나타 3권, 그리고 쇼팽의 환상곡집을 샀지만 모두 다 실패로 돌아갔다. 배우지 않고서는 나 혼자 스스로 터득하기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 특히 쇼팽은 왜 샀나 몰라, 이런 고문을 돈 주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스스로 위안을 삼기를, 나이 서른이 지나서도 이런 피아노곡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대신 재즈 쪽으로의 연주 확장이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요즘 선법과 다양한 스케일 연습에 한창이었는데 덕분에 코드를 짚는 실력이 아주 조금은 는 것 같다. 이게 아주 대단한 건 아니지만 상당히 머리를 복잡하게 써야 하는 것이 지금 쳐야 하는 코드의 스케일이 리디안 스케일인지, 올터드 스케일인지, 하모닉 마이너 퍼펙트 피프스 빌로우인지 즉흥적으로 알아내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므로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머릿속으로 계산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주 하다보면 손이 익숙해져서 어떤 식으로 왼손과 오른손을 위치시키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즉, 뇌가 머리가 아닌 손에 달려 있는 그런 느낌 말이다.


왜 재즈 피아노 교본과 선생들이 투-파이브 진행을 그렇게도 강조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리고 세븐스와 나인스를 짚고 전회형을 자유자재로 손에 익혀놓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예전에는 '이거 조금만 생각해보면 악보에 다 그릴 수 있는 걸 뭐 이리 거창하게 강조해놓았담.'이라고 했지만 머리로 아는 것이 손에 익기까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조만간 '다라'에서 나온 재즈 피아노 교본들을 살 생각이다. 이 책에는 아주 기계적으로 코드와 스케일, 즉흥 연주 프레이즈를 반복 연습할 수 있도록 설계된 부분들이 여럿 있기 떄문이다.


아무튼 피아노 연주는 즐겁다. 왜 진작에 이런 생활을 하지 못했던가. 좀 더 일찍 전자 피아노를 샀어야 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