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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annah & Marco / Ann-Katlin
헬싱키(Helsinki)에서 독일로 돌아온 9월 13일(금)에 마인츠(Mainz)에서 세 친구들을 함께 보았다. 몇년 전 결혼해서 함께 살고 있는 마르코와 안카는 여전히 마인츠에서 살고 있었고, 올해 초에 봤던 한나는 마인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촛첸바흐(Zotzenbach)에서 살고 있었다. 한나의 제안으로 넷이 함께 다 보기로 했고, 우리는 Mainz 시내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보았다. 헬싱키에서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로 돌아오는 비행편의 출발이 지연된데다가, 내가 타고 온 핀에어(Finnair)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터미널 2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나는 허겁지겁 S반(S-Bahn)을 타고 마인츠로 향했다. 음식점은 옛 로마 극장(Römisches Theater)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체크인도 하지 않은 채 캐리어를 끌고 그 돌 타일들이 박혀있는 시내 거리를 가로질러 9시가 넘기 전에 겨우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늦은 저녁과 함께 마인츠 시내에 있는 다소 힙한 칵테일 바에 가서 2차를 마저 했다. 그 칵테일 바의 알바생은 자신들이 보유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서 손님이 원하는대로 맞춤형 칵테일을 만들어줄 수 있다며 장광설을 늘어놓았지만, 칵테일에 대해 아는 바도 별로 없고 추구하는 맛이 어떤지도 모르는 나로서는 벽에 부착된 대표 메뉴 중 하나를 고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우리는 과거 DAAD 및 IRTG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왔던 이야기, 요즘 근황, 최근 독일의 우경화(右傾化)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고, 다들 나이가 벌써 마흔을 바라보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에 장탄식을 했다 ㅡ 그런데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독일어 교본에 ein rüstiger Vierziger (정정한 40대)라는 다소 고전적인(?) 표현을 우연히 보게 된 우리는 모두 다들 파안대소했다. 어느덧 시간이 벌써 자정이 넘어갔고, 독일에 우리 연구원의 거점이 있는 한 독일에 다시 올 가능성은 많으니 곧 다시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모두 헤어졌다. 안카는 마인츠의 집으로, 한나는 마인츠에 사는 친구 집으로, 그리고 나는 중앙역 근처에 있는 호텔로.
2. Victor
그 다음날과 다음다음날은 빅터의 결혼식 행사가 치러지는 날이었다. 토요일 날씨가 생각보다 추워서 나는 밖에 나가서 관광을 하기보다는 호텔 내에서 운동을 한 뒤 그 위층에 있는 사우나를 이용하기로 했다. 헬싱키에서 경험한 사우나의 기억이 사그라들기 전에 다시 맛 본 사우나. 참고로 이 지역의 사우나 천장은 높고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구역이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너무 뜨거운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은 아래쪽으로, 몸을 더 뜨겁게 지지고 싶은 사람은 위쪽으로 올라가면 되는데, 나는 가장 위쪽에서 한 10분 정도 충분히 사우나를 즐겼다. 추위도 가시고 뭔가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이 사우나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
방에서 잠시 개인 정비(?)를 하고 독일어 자습을 좀 하다가 저녁 일고여덟시경이 되어 마인츠 중앙역 근처의 바로 갔다. 일종의 전야제(前夜祭)같은 것이었는데, 빅터가 재즈 밴드를 초청해서 작은 음악회를 개최한 것이었다. 사실 빅터는 박사과정 재학 중에서 DJ를 하는 등 라운지 및 재즈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혼식도 그답게 꾸며놓았다. 오랜만에, 그것도 이곳 마인츠에 와서, 그루비한 재즈 음악을 백포도주와 함께 즐기니 기분이 무척 흡족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빅터와 그의 아내인 샬린과 인사했고, 거의 두세 시간 동안 음악을 들으며 이것저것 먹고 마시다 다음날 식장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 S반을 타고 마인강 너머에 있는 헤센(Hessen)의 주도(州都)인 비스바덴(Wieswaden)에 갔다. 거기에 좀 오래된 성공회 교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주일 감사성찬례를 드리고 나와 잠시 시내를 둘러보았다. 비스바덴은 미네랄이 풍부한 유황 성분의 온천이 무척 유명한데, 시내에 있는 코흐브루넨(Kochbrunnen)이라고 하는 온천 분수에 가 보니 과연 그 명성을 코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서 서성거리다 사진기를 들고 계신 분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는데, 독일어를 무척 잘 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마인츠 중앙역 근처에서 빅터의 친구들과 함께 셔틀 버스를 타고 근교 하스로흐(Haßloch)에 있는 이벤트 장소인 구트 레바흐(Gut Rehbach)에 갔다. 이전 Bernd의 결혼식과는 달리 공무원의 공증 하에 이뤄지는 결혼 서약 과정은 이미 작년에 진행되었으므로 해당 이벤트는 없이 신랑신부 입장과 서약문 낭독, 그리고 반지 교환식이 이어졌다. 빅터의 아들인 에스라(Ezra)를 거기서 처음 보았는데, 애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자기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무척 키가 커서 놀랐다 ㅡ 역시 유전인가? 그리고 전혀 보기와는 다르게(?) 빅터가 결혼 서약 관련 얘기를 하는데 울먹거려서 무척이나 놀랐다. 식을 마치고 식당 외부에 마련된 뜰에서 샴페인과 간단한 다과를 곁들여 즐기며 새 신랑과 신부인 빅터와 샬린에게 인사했고, 거기서 빅터와 함께 AFM 회사에서 일하고 계시는 한국인 동료분을 만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 둘을 동반해서 오셨는데, 한껏 분위기가 고양된 결혼식장 내에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던 귀여운 아이들은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잠잠해졌다.
이윽고 식사 시간이 되었고, 지정된 자리에 앉아 저녁 식사와 함께 식후 행사에 참여했다. 안타깝게도 이날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한 Katta 내외는 자동차 문제 때문에 올 수 없었고, 내 오른쪽 자리는 그래서 비게 되었다. 내 앞과 왼쪽에는 영국에서 온 샬린의 여자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님이 와 있었는데, 그들이 나누는 억양 강한 영국식 영어는 아무리 BBC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집중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내 앞에 있던 여성은 '오, 잠시 말 끊어서 미안한데, 독일사람들이 영어로 말하면 좀 알아듣기 그런데, 당신 발음은 완벽하네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긴 독일식 영어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기는 하지. 아무튼 그 여성은 양파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샐러드에 양파는 아니지만 파와 비슷한 종의 무슨 식물이 있었던 모양인지, 먹고 나서 잠시 동안 자리를 비우고 온몸을 달래야 했다. 한국 사람들은 음식 알레르기가 별로 없는데, 서양 사람들은 그런 게 너무 많아서 식당이나 이런 이벤트 홀에서 제공하는 음식마다 음식 정보를 명확하게 기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사실 초대받았을 때 개별 손님들에게 특정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지 여부를 세밀하게 따져 묻길래 얼마나 그렇기에 그런가 했더니... 무척 놀랐다.
샬린은 영국에 살고 있고, 그의 부모님은 화교 계열의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보였다. 건배를 제안하는 샬린 아버지의 구호도 그렇고, 샬린 쪽 하객들은 대부분 영국에서 왔으나 그의 친척들 중에서는 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대부분 시차 적응 문제로 9시경에 다 호텔로 돌아가긴 했지만, 나중에 사회자 왈 독일, 영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요르단 등지에서 온 하객들이 모인 굉장히 국제적인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샬린 아버지의 축사, 샬린의 소감, 빅터의 소감, 샬린 친구의 소감을 들었고, 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의 한 바에서 서로 알고 있었던 필리핀 출신의 여성이 키보드를 치며 축가를 불렀다. 둘이 런던(London)의 한 음악 축제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왔다는 배경 지식 덕분인지, 그들의 결혼식에 음악이 빠지지 않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며칠간 독일에 머무를 영국의 하객들과는 달리, 나를 포함해서 독일에서 일하는 몇몇 하객들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식후 파티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11시경이 되어 공식적인 행사가 종료되고 본격적인 춤판(?)이 벌어지기 전에 나는 빅터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볼 것을 기원했다. 빅터가 현재 카타 외에는 긴밀히 연락하는 DAAD & IRTG 출신 독일 동료는 거의 없는 것 같아 보였는데, 아마도 내가 나서서 전부 모으는 일을 언젠가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빅터 친구 내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마인츠 중앙역에 내렸고, 자정 너머 도착한 호텔방에서 씻고 바로 잠을 청했다. 바로 새벽 5시경에 일어나 라이프치히로 향하는 기차를 타야 했기에... 월요일에 출근해야 하니까!
3. Bernd & Katta
벤트와 카타는 독일행이 결정된 시점부터 꽤 오랫동안 왓츠앱(WhatsApp) 단체 대화방을 통해 만날 계획을 조율하고 있었다. 마침 지난주인 9월 21일(토)-22일(일)에 다른 일정이 없었던 나는, 이 주말을 제안했고 다들 흔쾌히 받아들여 만남이 성사되었다. 이 친구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라이프치히 중간 어디쯤에서 보는 게 좋을까 싶어서 도시를 검색하다가 벤트는 밤베르크(Bamberg)와 뉘른베르크(Nürnberg)를 제안했고,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나는 토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뷔르츠부르크(Würzburg)에 갔고, 거기서 차를 타고 온 벤트와 카타를 만났다. 둘 다 올해와 작년 자기들 사는 곳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여행으로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카타는 최근 배드민턴을 하다가 입은 부상 때문에 발이 부어 거동에 좀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행에 참석했기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밤베르크는 굉장히 작지만 시내가 관광객으로 들끓는 도시였다. 도시 외곽에 진입했을 때, 다들 유령도시가 아니냐고 할 정도로 거리가 휑해 뭔가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다들 시내로 맥주 마시러 온 모양이었다. 시내에는 독일인 관광객이 정말 많았는데, 여기는 독일인도 놀러오는 관광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내 곳곳에는 양조장이 산개해 있었는데,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잔 이렇게 마시다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바이에른(Bayern) 지역의 서북부 지역을 프랑켄(Franken)이라고 부르는데, 이 프랑켄 지역의 가장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돼지 어깨를 구워 만든 쇼이펠레(Schäufele)라고 했다. 이것과 함께 지역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니 아주 기가 막혔다. 훈연(燻煙)한 재료로 만들어 색깔이 거무튀튀한 라우헨비어(Rauchenbier)도 마셔보았다.
밤베르크에서의 맥주 구경을 마치고 뉘른베르크로 옮겨가서는 프랑켄 지역의 또다른 명물인 소시지를 먹었다. 프랑켄 지역의 소시지는 타 지역 소시지보다 작고 가는 것이 특징인데 먹기에 간편했다. 그리고 이날 저녁 먹은 소시지는 양파와 함께 와인에 넣고 끓여 만든 일종의 소시지탕이었는데 오랜만에 이런 독특한 맛의 국물을 맛보니 그것도 참 좋았다. 우리는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며 마저 맥주를 마셔댔는데, 2.5 L 이상은 마시지 않았나 싶었다.
다음날 뉘른베르크 구(舊) 시가지 지하에 있는 거대한 지하 맥주 저장고를 견학했는데, 맥주를 향한 이 지역 사람들의 놀라운 사랑을 엿볼 수 있었고, 덕분에 맥주 제조에 대해 몇 가지 익히게 되어 무척 유익했다. 비록 그 양조장의 맥주를 마셔볼 기회는 없었지만, 뭐 낮부터 맥주를 마시면 어떻게 하겠... 나 싶더니 점심에 결국 프랑켄 소시지와 함께 또 맥주 한 잔 했다. 마침 뉘른베르크의 성모교회(Frauenkirche) 앞 광장에서 가을 시장이 열려 온갖 간식과 수공예품을 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뉘른베르크 역시 독일인들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이하게 광장 근처에 이탈리아 음식점이 굉장히 많았는데, 뉘른베르크를 떠나기 전에 광장 근처 이탈리아식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 한 잔을 후딱 마셨다.
벤트와 카타와 여행을 겸해서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니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 정작 근황이나 속깊은 얘기는 잘 나누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은데, 정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먹고 마시고 보고 또 먹고 마시고 보았다. 다만 이 친구들은 다들 가정이 있으니 일찍 돌아가야했다. 우리는 점심 시간동안 충전시킨 전기 자동차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고, 나는 서로 안아주며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다만 뉘른베르크에서 라이프치히로 가는 기차 시간이 아직 두어 시간 남아있었던 관계로, 나는 친구들을 전송한 뒤 구 시가지에 있는 게르만 국립박물관(Germanisches Nationalmuseum)에 들렀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작품도 볼 수 있었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선사 시대부터 중세 시대에 이르는 유물들도 한 점 한 점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독일 역사와 이 프랑켄 지역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