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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에 온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양고기와 보드카를 들이키는 것 같다. '이러다가 살 찌는 거 아니야?'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아마 오늘도 양고기를 맘껏 먹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나라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국인지라 생선요리가 거의 없으니 고기를 많이 먹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물론 카스피해를 접하고 있는 서부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알마티의 카작 사람들 ㅡ 카자흐어로 카자흐는 '카작'으로 읽힌다. ㅡ 은 꼬치에 꽂아 맛있게 구은 샤슬릭(шашлык)을 항상 으뜸으로 칠 것이다. 보드카는.. 이제 거의 저녁 때마다 곁들이는 음료가 되었다.
1박2일의 여행 이후에는 주로 알마티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그랬다. 사람들 사는 곳을 자주 접하다보니 이젠 카작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것들을 공유하고 있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알마티에 있는 박물관을 돌아보니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우리 말로 하면 추장에 해당하는 '칸'의 지도를 받아 생활하는 유목 민족의 삶과 전통, 문화를 한국인같이 오랜 세월동안 정착 생활을 해 온 민족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작은 반도에서 나름의 민족적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생각의 틀로 대륙의 한복판에서 드넓은 스텝을 끊임 없이 돌아다니며 생활해 온 사람들을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 비록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은 그렇게 값비싸 보인다든지 혹은 역사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중요해보인다든지 아무튼 그렇게 눈길을 끄는 물건들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카자흐스탄의 역사가 어떠했겠구나 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책장 한 켠에 꽂혀 있는 '중앙아시아 이야기'를 좀 읽어야겠다.
이 박물관 3층에는 특기할 만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카자흐스탄은 다민족 국가이다. 물론 카작인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러시아인도 상당히 많이 있으며 우즈벡인, 위구르인, 타타르인, 키르기스인, 독일인,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려인 등등이 카자흐스탄 사회를 구성한다. (사실 독일인과 고려인은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를 온 사람들이나 다름 없다.) 3관에는 이들 민족들 및 이들의 뿌리가 되는 나라들과의 교류를 개괄적으로 보여주는전시관들이 나라별로 있는데 그 중 한국관이 제일 크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중 모스크바까지 치고 올라온 독일군으로부터 소련을 지켜내기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보낸 지원군들의 활약상을 아주 대대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훈장을 받은 카작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을 보면서 '그래... 카자흐스탄도 사실 소비에트 연방의 한 지역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일한 느낌을 알마티 시내의 큰 공원인 판필로프(Панфилов) 공원에서도 다시 받게 되었다. 여기는 모스크바 공방전 때 전사한 28명의 카작 병사들을 추모하는 공원으로 판필로프는 모스크바 공방전 때 모스크바 사수를 위해 싸운 316 사단을 이끌던 장군의 이름이었다. 여기에는 용맹한 카작 병사들을 표현한 동상과 비장한 글귀, 그리고 영원히 꺼두지 않도록 활활 타오르는 불이 있었다. 약간 사회주의 느낌이 나긴 했지만 뭐 그것도 카자흐스탄의 역사니까.
알마티 시내에 있는 성모승천 성당(Вознисенский собо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목조건물 ㅡ 만일 황룡사 9층 목탑이 살아 있었다면 세 번째였겠지... ㅡ 인데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성당으로서의 기능이 멈춰있다가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 교회로서 다시 사용된 재미있는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1911년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도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붕괴되지 않고 제 모습을 유지하여 당시 사람들이 신의 보호를 받은 건물이라고 칭송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이며 아스타나와 카자흐스탄 수도대주교(metropolitan of Astana and Kazakhstan)가 다스리는 주교구(eparchy) 관할 성당으로 등록되어 있다. 내부는 매우 잘 장식된 제단과 성화들로 가득하였는데 외부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인 형태이다. 성당을 찾는 사람들의 신심이 대단해 보였는데 어떤 여성은 모든 성화마다 성호를 세 번 긋고 입을 맞추는 공경의 예를 다하였다.
벌써 알마티 일정의 절반이 지나갔다. 3일만 더 있으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세상에! 이렇게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니! 내 대학원 생활 중에 이렇게 여유롭고 한가로웠던 휴식 시간은 이 때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남은 시간도 더 여유롭고 즐겁게 가족과 함께 보내야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