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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은 각종 소설과 드라마, 영화로 자주 그려지는 역사 이야기 중 하나이다. 내가 최초로 본 사극 드라마가 계유정난의 일등공신의 삶을 다룬 '한명회'였고, 가장 최근에 본 사극 드라마인 '인수대비'도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였다. 재작년에 방영된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 역시 계유정난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였다. 계유정난에는 어린 왕의 비애, 충직한 신하들의 절개,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야욕, 모략과 술수가 난무하기에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재생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관상'은 역사적 사실의 심각한 변개 없이 한 관상쟁이의 삶을 겹쳐놓았다. 관상쟁이라는 직업과 계유정난이라는 (전개와 결말을 이미 국사시간에 잘 배웠던) 역사적 사실은 각각 극 안과 밖에서 이미 처음으로부터 끝을 잘 알고 있다는 어떤 운명론적인 무언가를 시사하고 있다. 그의 아들은 이름까지 바꿔가며 ㅡ 사실 이름 역시 한국에서는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ㅡ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되고, 관상쟁이는 자신이 바라본 그 운명들의 싸움 앞에서 어찌해 볼 도리 없이 그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관상쟁이는 그저 정해진 운명을 바라보는 사람일 뿐, 역사를 움직이는 주역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이 관상쟁이의 한계였고, 사실 지나간 쓰린 과거를 돌이키며 가슴 아파하는 우리 자신들의 한계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운명에 별로 냉담해 보이는 듯한 수양대군이 이 운명의 게임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그 먹먹한 하릴없음의 감정은 절정에 치닫는다. 그럼에도 관상쟁이는 극 말미에 시대의 흐름을 상징하는 파도의 넘실거림을 보며 그 한계를 위로하고 소극적으로나마 그것을 극복하는 정신승리를 보여준다. 역사서에 기록된 세조 및 그의 일가친척들이 당한 불우한 일들, 한명회의 부관참시는 관객들에게 동일한 소극적인 작은 해소감을 선사해주기는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날 때 기분이 영 처참하지가 않았다. 비극으로 점철된 패배한 인간의 넋두리가 아닌 '자네 목이 잘릴 상이오'라고 섬뜩하게 경고장을 두는 관상쟁이에게 아직도 더 환호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짠하게 남았던 것이다. 그것이 참으로 관상쟁이다운 항거 아닌가 싶다. 관상쟁이를 철저하게 관상쟁이로 남겨놓아서 더 좋았던 이야기였다.
훤칠한(?) 수양대군을 너무 악의적인 캐릭터로 묘사한 게 좀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극적인 진행을 위해서는 오히려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김종서 살해 장면은 윤색된 부분이 많았지만 만약 거기에 칼 든 무사들이 그렇게 있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을는지 모르겠다. (실제로는 김종서는 철퇴를 맞고 쓰러졌으나 용케도 죽지 않았고 며느리의 친정집에 피신하였지만 거기서 죽게 된다.) 사실 극중에서 가장 처참하게 죽은 것은 사람 호랑이가 아닌 진짜 호랑이였지만...
생각보다 재미있는 영화라서 2시간 넘는 상영 시간동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즐겁게 보았다. 오랜만에 본 영화인데 주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이다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