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언젠가 학생들에게 내부 세미나로 라만 분광학을 강의하려고 생각하며 집을 가다가 문득 '왜 두 에너지 준위 차이만큼에 해당하는 빛 에너지가 입사되면 전자가 이를 흡수하여 들뜬 상태로 전이하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이것은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가 전자들이 정해진 궤도에서 정상파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한 준고전적(semiclassical)인 수소 원자 모형이 제안되었을 때부터 화학자들에겐 일종의 '상식'이 된, 너무나도 잘 알려진 기본 원리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여기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밀토니안 연산자(Ĥ)에 광자가 형성하는 전자기파에 의한 퍼텐셜 에너지 항을 추가하면 어떻게든 결론이 나오겠지 싶었는데, 그 식을 상상해 본 순간부터 제발 누가 이걸 좀 풀어놓은 결과를 알려달라고 구글에 검색을 신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문제의 답은 학부 물리화학 교재들에 있었다: 주교재로 쓰인 McQuarrie/Simon의 물리화학 책, 참고서적으로 사 놓은 Levine의 양자화학 책, 그리고 Cotton의 군론(group theory) 교재. 슈뢰딩거 방정식에 섭동(pertubation) 이론을 더한 뒤 몇 가지의 근사를 적용하면 물질이 두 에너지 준위 차이 만큼의 에너지를 가진 광자를 공명 흡수(resonant absorption)하는 것이 완벽하게 설명된다. 내가 이런 걸 18년 전에 수업 시간에 배웠다는 게 믿기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때보다 책 내용이 더 잘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더욱 놀랐다. 몇 년 전 고체물리학 책을 보면서 느꼈던 환희가 다시 살아났다고나 해야할까. 교과서로만 배우던 내용을 이제는 실제에 적용해서 측정과 분석에 활용하다보니 여기서 말하는 내용들이 아주 '절절하게' 와 닿는 것이 기묘했다.


그러고보면 학부 때 교육은 정말 별 쓸모 없는 이론 교육같으면서도 나중을 위해 이렇게나 소중하구나 싶다. 반 년 정도 시간을 가지고 학부 때 배웠던 모든 내용을 복습만 해도 '먼지를 뒤집어 썼지만 지금 연구 활동에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상상도 못할 만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따지고보면 이것도 과거 언젠가 배워본 (혹은 스쳐 지나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복기가 가능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듣기 편하고 학점 따기 좋았지만 남는 것이 없는 수업을 수강하는 것보다 진짜 '남는 것이 많은' 수업을 수강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이 되는구나, 새삼 학부 때 정말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거구나 싶은 감개무량함이 샘솟는다.


주중에 오랜만에 물리화학 책, 고체물리학 책, 전자기학 책, 그리고 인터넷 문서들을 죽 읽어가면서 관련 내용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완료되었다고 판단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그래핀의 라만 스펙트럼만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다듬는다면 꽤나 유용한 강의가 될 것 같다. 물리학 지식이 없는 이들에겐 다소 어렵겠지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