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마시러 냉장고를 열었더니 엊그제 샀던 냉이 한 봉지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봄을 맞이하여 된장국에 넣어 먹겠다고 로컬푸드에서 한 봉지 샀던 것이었는데, 사놓고 보니 1인이 먹을 국에는 너무 많은 양의 푸성귀가 들어있었던 것 아닌가. 1/3을 꺼내서 주말에 된장국과 함께 먹었고, 나머지는 그대로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는데 그새 그걸 잊었던 모양이다. 왜 로컬푸드는 그렇게 많은 양을 한 봉지로 담아 팔았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이대로 두면 음식물 쓰레기가 될 처량한 운명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자비심의 발로에서 나는 냄비에 물을 받아 소금을 좀 넣은 뒤 끓이기 시작했다. 팔팔 끓는 물에 냉이를 넣고 목소리를 내어 20초를 센 뒤 ㅡ 원래 15초를 세는 것이었는데 앞에 5초를 너무 빨리 셌다고 생각해서 뒤에 15초 이후부터는 빠르게 5초를 더 셌더란다. ㅡ 체에 거르고 찬물로 헹구어 두었다.


고추장, 된장, 다진마늘, 참기름을 넣어가며 무치노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이란 이렇게 늘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지. 하지만 개인에게 적절한 양을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만들어내고, 무작정 구매하고, 무작정 쌓아두다가 결국 대부분은 의미있게 쓰지도 못한 채 버리고 만다. 감정도, 재물도, 지식도.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런 불필요한 과잉생산과 과소소비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니, 세상은 인간의 활동이 만들어낸 온갖 쓰레기로 인해 더 어지럽고 무질서해질 뿐이로구나. 이런 바보같은 순환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 것인지, 어쩌면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지게 된 노동의 형벌이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런 고달픈 반복이 무한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과 그 반복된 고생이 우주적 엔트로피를 그저 늘리는 데 기여하는 물리학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참깨까지 솔솔 뿌려놓은 냉이무침 조각 하나를 확인차 무심코 먹자마자 이런 생각을 했다: 냉이를 많이 사두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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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끝끝내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