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귀환한 KBS의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이 아까 막 끝났다. 첫날부터 몰아치는 빠른 내용 전개가 기존에 내가 봐 왔던 정통 사극과는 너무 달랐던지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데, 오히려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10초씩 건너뛰면서 영상을 보는 게 익숙해진 요즘 시대에 걸맞는, 군더더기가 제거되어 중심 내용이 더 잘 드러나게끔 연출된 형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사극은 특이하게도 기존의 야사(野史)에서 취한 일화라든지 극적인 연출이 없었다. 예를 들면, 이성계의 함흥차사 이야기라든지, 원경왕후 민씨와 태종 사이의 화해라든지 말이다. 얼마든지 이런 내용들을 중간에 넣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넣지 않은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측면에서는 도저히 사반세기전(?)에 나온 『용의 눈물』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원체 전설 취급을 받는 『용의 눈물』과 비교될만한 장면과 연출을 곳곳에 배치해 두는 것은 『태종 이방원』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것들 없이 실록에 기록된 정사(正史)의 내용을 토대로 '家를 넘어 國으로'라는 기치 하에 그려내고자 했던 이방원의 삶과 고뇌를 담담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해낸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록의 내용을 최대한 반영하고자했던 방침 덕분인지 기존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인물들에 대한 미화와 왜곡을 상당 부분 줄인 점 역시 『태종 이방원』이 이전 사극들과 차별되는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왕가 사람들에 대한 미화의 철폐 측면에서는 대표적으로 온갖 패악질로 인해 폐세자가 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세자 양위설'을 채택하지 않은 점을 들 수 있겠고, 왜곡의 교정 측면에서는 기존에 유약하게만 그려졌던 정종(定宗)을 본래 무인으로서 강인한 인상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인물들의 작위/군호 등과 같은 호칭 표현 등에 오류가 최대한 줄이면서도 역사성을 반영했다. 예를 들어 초기 왕자들의 군호가 공(公)이었다가 군(君), 그리고 대군(大君)으로 바뀌는 것까지 잘 반영했고, 마지막에 세종의 정비인 소헌왕후 심씨를 공비(恭妃)라고 표현한 것에서 작가들이 정말 꼼꼼하게 실록을 확인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ㅡ 실제로 세종초까지는 왕비에게 비호(妃號)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선 초 복식을 굉장히 잘 재현해 보여준 게 정말 눈이 즐거울 정도였다. 정말 다양한 형태의 깃과 포, 외투가 등장했고 색깔도 정말 다양했다. 그렇다고해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과도한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드라마의 주축을 이끈 태종 역할의 주상욱, 그리고 세종 역할을 맡은 김민기의 연기가 출중해서 깜짝 놀랐다. 특히 주상욱은 사극에 전혀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잘 해낼 줄은 미처 몰랐고, 김민기는 앞으로 이상한 추문에만 휩싸이지 않는다면 자주 보게 될 배우가 될 것 같다. 


주말에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 일들이 있어 32부의 모든 회차 방영분을 보지는 못했지만 대만족이다. 이런 수준의 대하사극이라면 수신료를 더 내서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