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고모와 영지누나를 만나다!]
Date 2008.09.13


오늘 신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참으로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다. 이제는 외할머니라는 이름을 달게 되신 둘째 고모와, 사촌누나이자 학교 선배이기도 한 영지누나를 만났다. 오랜만에 뵙는 분들이라 무척 반가웠고, 그간 찾아뵙지 못하고 연락도 자주 못 드리게 되어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사실 추석인데 친척들은 뵈어야 할 것 같고, 진해까지 내려가지는 못해서 근처의 친척들과 함께 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영지누나와 연락을 했고 오늘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신사, 압구정 이 쪽은 처음이었다. 익히 들어온 현대고등학교가 이 근처에 있는 것도 처음 알았고 가로수길이라는 거리도 오늘 처음 알았다. 환경이 무척 깨끗하고 깔끔했으며 조용한 분위기에, 밤에는 낮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 날씨는 무척이나 좋아서 길을 거닐기에도 괜찮은 그런 날씨였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이 곳에 또 와 봐야지!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먹다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오늘 정말 다양한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나 영지누나에게서는 배울 점이 많다. 물론 나와 다른 면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먼저 앞서 간 선배로서 이것 저것 이야기해주실 때에 많은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누나와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 내가 전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고민해 왔고, 아쉬워 해 왔고, 그러는 동안 생각이 조금 더 깊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학번 때 누나와 얘기했을 때와는 지금 내가 다른 모습임을 오늘 자각했다. 예전에는 그냥 학부생으로 공부하고 과제하고 이러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뭐랄까, 지금은 나도 모르게 정말 '삶의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를 가지고 늘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게 날 이렇게 바뀌게 했나. 물론 학년이 올라가면서 '어떤 기간의 마침과 어떤 기간의 새로운 시작'을 점차 가까이 둠에 따라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각지로 돌아다닌 여행들, 여기저기서 겪은 좋고 나쁜 경험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많이 들어 왔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날 지금 이렇게 성숙하게 만들어준 게 아닐까. 물론 아직 누나의 수준에 이르려면 난 아직 한참 먼 것 같다. 누나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나는 근시안적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부족한 내게도  지난 몇 년간 내면의 큰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남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

정말 큰 변화는 내가 굳이 내 시야와 내 활동 범위를 좁혀 옭아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남들은 내가 물리를 복수전공하기 때문에 무조건 물리화학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물리와 화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내가 가지게 되는 인생의 카드가 늘어난 것이다. 세용이를 만나서 밥을 사줄 때에도 그런 얘길 했었다. 아직 내가 선택할 삶의 방식은 많이 남아있고, 심지어 곧 입대를 할는지, 홀연히 유학을 떠날는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물리를 공부했어도 난 유기화학을 전공으로 택할 수 있는 것이고 더구나 그간 몰랐던 무기화학, 고분자화학 등등 너무나도 다양한 화학의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단지 '물리를 복수전공'했다는 이유로 틔워보지도 않은 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 말이다.

내 앞길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당장 내가 교수가 되고 싶다고 해서 내 삶을 거기에 맞출 필요는 없다는 게 요즘의 내 생각이다. 취업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해서 방학 때 들어오는 인턴쉽 자리나 채용설명회 이런 것들과 나는 무관해! 하고 도서관에 쳐박혀 있는 것이 오히려 바보스런 짓이 아닐까.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으며 설사 취업과 무관한 인생을 살아도 며칠간의, 몇달간의 경험은 훌륭한 인생의 자양분이 되는 것을. 자신의 삶의 '카드'들을 쌓아두고 잘 보관했다가 요긴할 때 사용할 줄 아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삶이지 일찍부터 다 버려 버리고 고집스럽게 요거 하나만이 내 길이라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는 것이 요즘의 내 생각이다.

얘기를 하다가 가장 아쉽게 느껴진 것은 8학기에 딱 맞춰 졸업하게 되었다는 것. 사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4년만에 전공을 두 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말은 전공과목을 90학점 듣고, 졸업논문을 두 개 쓴다는 것을 의미하고, 재수강을 극히 적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다는 것을 경이롭게 생각하긴 하지만 ㅡ 물론 내가 생각해도 장하다고 느낀다 ㅡ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쉽고 씁쓸한 것이 많다. 남는 시간이 더 있었다면 내가 그렇게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더 값진 일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다른 방향으로도 나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 물론 군대문제가 없었다면 아주 자유롭게 내 삶을 조절했겠지만, 이게 사실 한국 남학생들이 부딪히는 벽이긴 하다. 문제는 군대를 다녀오면 그 2년간 나는 정체해 있었다는 생각에 이런 자유를 스스로 버리고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복학생들은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뒤쳐진만큼 옆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해서 빨리 이 간극을 메워야한다는 생각.

누나와 학부생 이야기, 대학원 생활, 직장 생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고모의 서울 생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스치는 오늘 대화의 한 단편인데, 세계를 무대로 삼아 살아야 할 우리들이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수재들이 모였다는 서울대학교에서 1등이네 2등이네 하면서 아웅다웅거리는 것이 얼마나 딱한 일인가. 그러고보니 오늘의 대화는 진짜 나를 크게 자극시키는 귀한 시간이었다. 내가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세계 속의 김성수'라는 존재를 다시한 번 들추어보았달까. 그래, 난 내가 누릴 것을 다 누릴 것이고, 내가 하는 일을 미치도록 사랑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늘 고민하도록 설계된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행복을 찾아 기뻐하는 그런 세계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의 일기가 다소 두서 없게 쓰여졌지만 원래 우리네 대화는 각본 없는 연극이고, 절정과 하강이 잘못 나온 NMR 피크처럼 들쭉날쭉한 것이기에ㅡ! 그리고 대화한 지 수 시간이 지났는데 그 모든 것을 내가 녹음해 둔 것은 아니라는 걸 솔직하게 인정해야지. 하지만 그 느낌만은 가지고 있다. 그 느낌, 그 감동, 그 공감, 그리고 그 결심.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