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음(俗音)이라는 것이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속음이란


한자의 음을 읽을 때, 본음과는 달리 일부 단어에서 굳어져 쓰이는 음


이라고 하며 이를 다른 말로 통용음(通用音)이라고도 한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은 정음(正音)이며, 이는 본래 중국에서 발음되는 표준 중국어 발음과 가깝도록 운서(韻書) 등에서 정의한 음에 해당한다. 정음을 실생활 발음에 구현하고자하는 소망에서 간행되었던 것이 저 유명한 세종대왕의 『동국정운(東國正韻)』으로, 당시 조선에서 발음되던 통용 한자음이 표준 중국 발음과 괴리가 큰 것을 안타깝게 여긴 학자들이 사람들의 입말을 제대로 된 표준음으로 바로잡고자 한 일종의 교화(敎化) 시도였다. 이러한 의도는 당시 집현전 학자이자 『동국정운』 편찬에 참여했던 신숙주(申叔舟)가 작성한 서문(序文)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대저 음(音)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고,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다르고 같음이 있나니, 대개 지세(地勢)가 다름으로써 풍습과 기질이 다르며, 풍습과 기질이 다름으로써 호흡하는 것이 다르니, 동남(東南) 지방의 이[齒]와 입술의 움직임과 서북(西北) 지방의 볼과 목구멍의 움직임이 이런 것이어서, 드디어 글뜻으로는 비록 통할지라도 성음(聲音)으로는 같지 않게 된다. 우리 나라는 안팎 강산이 자작으로 한 구역이 되어 풍습과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니, 호흡이 어찌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이랴… (중략) 일찍이 책으로 저술하여 그 바른 것을 전한 것이 없어서, 용렬한 스승과 속된 선비가 글자를 반절(反切)하는 법칙을 모르고 얽어놓은 요점에 어두워서 혹은 글자 모양이 비슷함에 따라 같은 음(音)으로 하기도 하고, 혹은 전대(前代)의 임금이나 조상의 이름을 피하여 다른 음(音)으로 빌어서 하기도 하며, 혹은 두 글자로 합하여 하나로 만들거나, 혹은 한 음을 나누어 둘을 만들거나 하며, 혹은 다른 글자를 빌어 쓰거나, 혹은 점(點)이나 획(劃)을 더하기도 하고 감하기도 하며, 혹은 한음(漢音)을 따르거나, 혹은 속음[俚語]에 따르거나 하여서,… (중략) 세속에 선비로 스승된 사람이 이따금 혹 그 잘못된 것을 알고 사사로이 자작으로 고쳐서 자제(子弟)들을 가르치기도 하나, 마음대로 고치는 것을 중난하게 여겨 그대로 구습(舊習)을 따르는 이가 많으니, 만일 크게 바로잡지 아니하면 오래 될수록 더욱 심하여져서 장차 구해낼 수 없는 폐단이 있을 것이다.


를 들어 中國의 중고한어(中古漢語) 발음은 /뜡꿕(ʈɨuŋkwək̚)/이었다는데, 중고한어가 쓰이던 시기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15세기에 살고 있던 조선 사람들은 /듕국/ 정도로 발음하고 있었고, 이를 불쌍하고 딱하게 여긴 세종은 중고한어 발음을 살리고자 하는 갸륵한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와 가장 비슷한 한자음인 /듕귁/으로 한자음을 바로잡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가 배운 바대로 이들의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고,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이 분들의 뜻과는 달리 /중국/이라고 읽고 있다.


『동국정운』 편찬의 주역들에게는 미안하긴 하지만, 사실 한자 본음에 대응하는 속음이 언중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한자가 본래 외국에서 건너온 문자였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발음하거나 전자할 때 이를 원어민처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는 없으니 당연히 한국인 방식의 독음이 자체 형성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중국인들과 한국인은 언어습관 자체가 다르니, 중국인들에게는 불편하지 않은 발음이 한국인들에게는 불편한 발음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경제성의 원리'에 따라 음운은 변동하기 마련이며 그 결과 속음이 등장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발생하는 한자 속음의 유형은 크게


1. 현대에도 본음과 속음의 대립이 존재하는 경우

2. 속음이 본음으로 교체된 경우


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세부적으로 나누면


1-1. 동국정운 발음의 분화

1-2. 활음조(滑音調) 현상

2-1. 동국정운 발음의 변이

2-2. 와음(訛音)의 등장


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1. 현대에도 본음과 속음의 대립이 존재하는 경우


자전(字典)을 찾아보면 한자의 대표 독음이 등장하고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몇몇 한자어의 경우에서는 이와 달리 발음되는 독음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특히 이런 독음은 본음이 아니기는 하지만 속음으로서 인정되며, 한글 맞춤법 제52항에서는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고 되어 있으므로 속음을 사용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맞춤법에 맞는 것이다.


1-1) 동국정운 발음의 분화


훈민정음 창제 이후 동국정운에서 규범으로 채택한 독음을 철저히 따라 쓰인 글들 중 대표적인 것이 『석보상절』이나 『월인천강지곡』과 같은 불교 문헌이었다. 따라서 불교 문헌에서 빈번히 등장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 한자어들의 표준 발음은 보수적인 동국정운식 한자음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중의 입말은 변화하여 한자의 본음은 변화하였지만, 자주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종교적 단어인 불교 용어들은 동국정운식 한자음이 유지된 채 읽히게 되었고 결국 속음으로 인식되었다. 즉, 과거의 보수적 관점에서는 본음이어야 할 것이 현대에 와서는 속음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대표적인 단어가 스님들이 불공을 드리고 설법하는 집회 장소를 의미하는 '도량'인데, 이를 한자로 쓰면 道場이다. 보통 이 한자를 /도장/으로 읽는게 일반적인 것이, 場의 본음이 /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장/으로 읽으면 道場은 통상적으로 무예를 연마하는 장소를 의미하며 불교적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동국정운』에서 정의된 道場의 본음은 '또ㅱ땨ㆁ'이었는데, 이걸 현대식으로 읽으면 [도우댱] 정도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우댱] 발음을 하다보면 道 의 운미(-w) 발음 덕분에 뒤의 [댱]이 점점 [량]처럼 발음되지 않는가? 그래서 『석보상절』에서는 場의 발음을 [도랴ㆁ]으로 썼다고 한다. 이것이 굳어져서 불교에서는 道場을 [도량]으로 발음한다. 현대에는 道는 사람들이 종성의 순경음 따위는 무시하는 바람에 [도]가 되었고, 場은 구개음화되어 [장]이 되었다.


불교에서 베푸고 나누는 행위를 의미하는 보시(布施)의 경우 원래 동국정운에서 정의된 본음은 '봉싱'으로, 이것의 발음은 [보시]가 된다. 그래서 정음으로는 布施를 [보시]로 읽는 게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 입말에서는 布는 [포]로 읽었고, 그 결과 불교 용어로 읽을 때에만 布施를 [보시]로 읽게 된 것이다.


꼭 불교 용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동국정운이 정의하는 宅의 독음은 [택]과 [댁]이 있는데, 훗날 편찬된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도 나오듯 [택]이 본음으로 채택된 반면 [댁]은 속음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自宅, 在宅勤務는 [자택], [재택근무]이지만 本宅, 宅內는 [본댁], [댁내]로 읽는 것이다. 그리고 뜻도 미묘하게 달라서, [택]으로 읽을 때에는 중립적인 의미로서 사는 곳을 뜻할 때 쓰이지만, [댁]으로 읽을 때에는 누군가를 일컬을 때 높여 부르는 말로 쓰인다.


1-2) 활음조 현상


활음조에 대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듣기에 좋은 음질. 한 단어의 내부에서 또는 두 단어가 연속될 때에, 인접한 음소들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로, 모음 조화나 자음 동화, 모음 충돌을 피하기 위한 매개 자음의 삽입 따위가 있다.


'도대체 멀쩡하게 한자 본음을 알고 있는데, 이 한자를 왜 이렇게 읽지?' 싶은 것들의 대부분은 다 여기에 속한다. 당장 6월과 10월은 한자로 쓰면 六月과 十月로, 원래대로라면 [유궐]과 [시붤]로 읽어야하지만, 발음이 좀 어렵다보니 각각 [유월]과 [시월]로 읽는 것을 사람들이 선호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런 경우에 한해 [유]와 [시]가 각각 六과 十의 속음으로 쓰이게 된다. 그뿐만인가. 五六月은 [오뉴월]이라고 읽으니 六의 속음에는 [뉴]도 있는 셈이다.


모과 역시 이 영역에 속한다. 모과를 한자로 木瓜라고 쓰는데, 원래대로라면 [목과]라고 발음해야 하지만, ㄱ이 두 번 연달아 나와 발음하기에 다소 부대끼므로 ㄱ을 탈락시킨 [모]가 木의 속음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한자 독음의 초성이 ㄴ, ㄹ 인 경우 이런 일들이 아주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한글 맞춤법 제52항에 있는 예만 들어도 무릎을 딱 칠 것인데, 한자 諾의 본음은 [낙]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락]으로 읽힌다. 예를 들어 承諾은 [승낙]이지만, 許諾은 [허락]이다. 또다른 예로 論의 본음은 [론]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논]으로 읽힌다. 예를 들어 討論은 [토론]이지만, 議論은 [의논]이다. 여기서 헛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은 두음법칙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ㅡ 왜냐하면 해당 한자의 위치가 단어의 첫머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2. 속음이 본음으로 교체된 경우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속음으로 취급되었을 독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본음을 밀어내고 정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들이다. 이 경우는 한국인들의 언어습관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변이와 운서에 등장하는 반절(反切) 기반의 정음에 대한 지식 없이 잘못 전해진 독음으로 인한 교체로 나눠지는데, 쉽게 말하자면 전자는 '이게 속음인 것은 알겠는데, 말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하게 되더라.'이고, 후자는 '내가 정확한 독음을 모르겠으나 대충 두드려 맞춰 본 건데 다들 그렇게 따르더라.'라는 것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자연스러운 천이(遷移), 후자는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개환(改換)이라 할 수 있다. 이 속음들은 사실상 현대 한국 한자음의 대표 본음이 되었으므로 한자문화권 내에서 같은 한자를 공유하는 중국과 일본의 본음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2-1) 동국정운 발음의 변이


『동국정운』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중고한어의 발음을 모본으로 삼아 채택한 독음을 규범적인 정음으로서 기술했다. 그런데 중고한어가 수(隨), 당(唐), 송(宋) 시대의 표준 중국어이고, 이 중고한어 시기 초기에 간행된 대표적인 운서인 『절운(切韻))』이 편찬된 해가 601년이니, 『동국정운』이 간행되던 1448년과 비교하면 무려 800여년 이상의 시간적 간극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동국정운』에서 채택한 정음들은 800년의 시간동안 서서히 변이된 통용 한자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음운의 변화는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당장 15세기에는 그렇게 읽혔을 한자일지라도 21세기에는 다른 독음을 가질 수 있는 법. 결국 한자의 본음은 서서히 사람들이 말하기 편한 형태로 변하게 되었고, 이렇게 등장한 속음이 어느 시대부터는 완전히 정음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革이다. 『동국정운』에서는 이 한자의 발음을 [극] 혹은 [격]으로 규정하는데, 이 한자가 '(병세가) 중하다, 위독하다'의 의미를 담은 통가자(通假字)로 쓰일 때에는 䩯 대신 쓰여 [극]으로 발음되지만 가죽의 의미로 쓰일 때에는 [격]으로 발음되어야 했다. 실제로 당나라 시대의 운서인 『당운(唐韻)』은 革의 반절을 古覈切로, 송나라 시대의 운서인 『집운(集韻)』은 各核切로 표기했는데, 두 경우 모두 성모(聲母), 즉 우리말의 초성에 해당하는 자음이 모두 ㄱ(古=[고], 各=[각])이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중고한어 발음으로 이 한자의 발음은 [깩]에 가까운 것으로 재구(再構)되는데, 중국어 보통화 발음은 [거(gé)]이고 일본어 음독(音読み)으로는 [가쿠(かく)]가 되는 것을 보아 한국어 한자음이 전래되었을 때 독음의 초성은 분명 ㄱ이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격]이라는 발음에 혼란이 와서 점차 [혁]으로 변화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속음이 본음으로 자리잡게 되고 원래 본음이었던 [격]은 소멸했다.


ㄱ이 ㅎ으로 변한 예는 발효하다는 뜻을 가진 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한자의 반절을 또다른 송나라 시대의 운서인 『광운(廣韻)』에서는 古孝切, 『집운』에서는 居效切라고 표기하는데, 둘 다 성모가 ㄱ(古=[고], 居=[거])이었음을 말해준다. 중고한어 발음은 [까우], 중국어 보통화 발음은 [쟈오(jiào)], 일본어 음독으로는 [고(こう)]이므로 원래 이 한자의 한국어 독음은 [교]가 맞으나, 앞에서 언급한 같은 혼란으로 인해 [효]로 바뀌게 된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한자의 원래 본음 [교]는 사실상 소멸되었으나 기독교 한국어 성서의 오랜 버전인 개역한글 및 개역개정판에 속음으로서 등장하는데, 유대 절기로 등장하는 無酵節의 경우 [무효절]이 아닌 [무교절]이라는 속음이 활용된 독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2-2) 와음(訛音)


와음이란 잘못 전해진 글자의 음을 말한다. 현재에는 와음들이 해당 한자의 본음으로 굳어진 터라 이게 왜 본음이 아닌 속음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통용 한자음이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하는 해당 한자의 독음 및 과거 운서에서 정의한 반절과 동떨어져 있고, 명백하게 형성자(形聲字)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거의 높은 확률로 해당 한자음은 정음으로 둔갑한 와음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럽의 한역어(漢譯語)인 歐羅巴이다. 원래 이 단어는 중국어 보통화로 [어우뤄바(Ōuluóbā)]로 읽히는데, 첫 글자인 歐의 중고한어 발음은 [어우]로서 『집운』은 於口切로, 『당운』은 烏后切로 반절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원래 이 한자의 한국어 발음의 초성은 ㅇ(於=[어], 烏=[오])이 되는 것이 맞는바, [우]가 옳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자를 읽은 우리의 선조들은 부수 欠 왼쪽에 있는 區를 보고, 형성자인 이 한자의 독음이 區와 같은 [구]일 것이라고 짐짓 잘못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중국어 보통화로 [어우(ōu)], 일본어 음독으로 [오(おう)]라고 읽는 이 한자를 우리나라만 [구]라고 읽는 것이다. 만일 우리도 歐을 반절에 기반하여 와음 [구]가 아닌 [우]라고 읽었다면 유럽을 [우라파]라고 읽었을 텐데, 그건 아마도 [구라파]보다는 조금 더 납득이 가는 음역이었을 것이다.


중화민국이 자리잡은 타이완 섬의 한자어 臺灣의 灣도 와음이 굳어진 형태이다. 조금 복잡한 흐름이긴 한데, 오랑캐를 뜻하는 한자로서 [만]으로 읽는 蠻라는 글자를 사람들이 많이 접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한자와 비슷하게 생긴 彎도 대강 [만]으로 읽히겠거니 두드려 맞춘 듯하다. 그러나 이 한자의 반절은 烏關切으로, 이를 따르면 이 한자의 발음은 [완]이 되어야 맞다. 실제로 중고한어 발음은 [완], 중국어 보통화로도 [완(wān)], 그리고 일본어 음독으로도 [완(わん)]이다. 오직 한국에서만 이 한자를 [만]으로 읽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한자에 삼수변(氵)을 붙여 만든 형성자인 灣의 경우 한국인들은 당연히 [만]으로 읽는 것에 이끌린 것이다.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로는 모두 [완]. 그래서 우리는 臺灣을 [대만]이라고 읽지만, 중국어로는 [타이완(Táiwān)], 일본어로는 [다이완(たいわ​ん)]이라고 읽으며, 여기서부터 로마자 표기인 Taiwan이 나온 것이다.


십이지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丑 역시 와음이다. 이 한자의 반절은 敕久切인데, 이를 따르면 이 한자의 발음은 [추]가 되어야 한다. 중고한어 발음은 [튜], 중국어 보통화로는 [처우(chǒu)], 일본어 음독으로는 [추(ちゅう)]인 것을 보면 [추]라는 독음이 온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 한자음으로 丑은 [축]인데, 이 경우는 와음의 형성 원인을 유추해볼 수 있는 위의 경우들과는 달리 대체 왜 불파음(不破音)으로서 종성으로 ㄱ이 왔는지 알 길이 없다.


내친김에 다른 와음의 예도 이야기 해 보자. 車처럼 하나의 한자가 여러 독음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自動車는 [자동차]지만, 自轉車는 [자전거]이다. 만일 누군가가 自動車와 自轉車를 각각 [자동거], [자전차]라고 발음한다면 모두들 틀렸다고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독음을 잘못 선택하여 형성된 한자어 와음이 언중의 무지로 인해 표준음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꽤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銀行인데 ㅡ 참고로 이 내용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심화' 수업 시간에 들었던 내용이다 ㅡ, 行을 '다니다'의 의미로 쓸 때에는 [행]으로 읽어야 하지만 '줄'이라든지 '가게'의 의미로 쓸 때에는 [항]으로 읽어야 한다. 이는 중국어 독음으로도 동일한데, 전자의 경우 [싱(xíng)]으로, 후자의 경우 [항(háng)]으로 읽는다. 은행의 개념을 한자어로 담아낼 당시, 중국은 명(明)-청(淸)시기 은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세금과 대금 결제를 은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화폐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은을 취급하는 점포라는 의미에서 銀行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사용된 行은 점포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항]이라고 읽어야 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銀行은 [은항]이었어야 했다. 실제로 중국어 보통화로 [인항(yínháng)]이라고 읽는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그랬는지 아니면 몰라서 그랬는지 기묘하게도 선조들은 당연히 이를 [행]으로 읽어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한 모양이고, 그래서 우리는 현재 [은항]이 아닌 [은행]으로 읽고 있다.




아마도 21세기 이후로는 한자어의 속음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국한문 혼용체로 쓰이는 글이 전무하다보니 눈앞에 한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고민해야 할 상황 자체가 없을뿐더러, 설사 모른다 하더라도 검색을 통해 빠르게 해당 한자의 본음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즉, 역설적으로 한자어의 독음이 어떻게 되는지 애초에 잘 모르기 때문에 자전을 통해 확립된 본음만을 '찾아서' 쓰게 됨에 따라 자의적으로 읽는 음인 속음이 생겨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다.


그런데 속음 현상 자체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한자어가 아닌 영단어의 발음을 전자(轉字)하는 과정에서 속음 비스무레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영어의 발음은 한자만큼이나 표기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경우가 많아 동일한 모양임에도 불구하고 위치나 어원 등에 따라 발음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이유는 문자와 발음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자인 한자와는 달리, 영어의 라틴 문자 알파벳은 어느 정도 문자와 발음 사이에 유기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애매하게 관련있는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어두(語頭)에 등장하는 a를 어떻게 발음하고 옮겨 적을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address는 IPA 기호에 따른 발음이 /əˈdres/ [어드레스]에 해당하므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어드레스'라는 표제어로 등록되어 있다. 한편, access는/ˈækses/ [액세스]이므로 사전에 '액세스'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accessory의 경우 IPA 기호에 따른 발음은 /əkˈsesəri/ [억세서리]인데, 사전에는 '억세서리'가 아닌 '액세서리'로 등록되어 있다. 이것은 새로운 양상으로서의 속음이 아닌가?


문제는 또 있다. 내가 미국 포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지도 교수가 '주소'라는 명사로서 address를 말할 때 /ˈædres/ [애드레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대부분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어두의 a를 웬만하면 다 슈와(schwa)인 /ə/ [어]로 읽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admire, approach, account 등 많은 단어들의 어두에 등장하는 a가 /ə/ [어]로 발음되지만 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당장 앞에서 언급한 access를 [액세스]라고 발음하는 사람보다는 [억세스]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application이라는 단어의 한국어 표기는 와음이 완전히 표준음으로 굳어지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단어의 영어 발음은 /ˌæplɪˈkeɪʃn/ [애플리케이션]으로 어두의 a는 명백히 슈와 /ə/ [어]가 아닌 전설 비원순 근저모음인 /æ/ [애]로 읽혀야 마땅하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도 이를 '애플리케이션'이라고 적는 것을 표준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8월에는 영어 표기법 회의 결과 이 단어의 줄임말로 '앱'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 절대 다수는 이 application이라는 단어를 [어플리케이션]이라고 읽고 있으며, 여기에서부터 파생된 줄임말이 '어플'이다. 국립국어원은 이 와음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스마트폰의 응용 프로그램을 일컫는 말로서 '어플'의 사용례가 '앱'의 사용례를 절대적으로 능가하는 것을 일상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다. 즉,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속음 현상은 중국어 한자가 아닌 영어 알파벳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속음이 발생하는 현상은 무조건 비판받아야 할 그릇된 것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명백히 틀린 것이라면 고쳐나가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이 현상이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게 되면 쉽게 고칠 수 없을 뿐더러, 시간이 흐르면 표준음을 제치고 새로운 기준이 되기도 하니 어떤 것이 명백히 틀렸다고 판단하기조차 애매한 것이 현실이다. 앞에서 살펴 본 한자의 독음과 관련된 속음 현상은 과거의 역사적 음운 현상으로 추억될 뿐이겠지만, 온갖 언어들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한자가 아닌 다른 언어의 문자로부터 빚어진 속음 현상은 앞으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