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윈도에서 지뢰찾기 게임을 했는데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지뢰찾기 이야기는 우리가 두 번째 컴퓨터를 사고 나서 윈도 3.1을 깔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상 도스의 무뚝뚝한 프롬프트만 보다가 그래픽 기반의 윈도를 보니 나는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게임이 바로 지뢰찾기였다. 처음에는 지뢰를 찾는 것이 목적인 줄 알았는데, 찾는 것이 목적일 뿐 '클릭'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은 아버지가 알려주시고 나서의 일이었다. 즉, 지뢰가 있는 곳은 오른쪽 클릭을 해서 깃발로 표시하고 나머지를 모두 열어야 한다는 것.
도대체 숫자 1,2,3, 심지어 4,5,6은 무엇을 가리키나요? 그것은 그 칸의 주변 8칸에 지뢰가 n개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해 주셨다. 아니 도대체 이렇게 어려운 게임을 MS에서는 뭣하러 만들어 넣었나? 아버지는 이 게임이 참 머리에 좋은 거라며 가끔 하고 계셨다. 애석하게도 옆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셨기 때문에 머리가 좋아지는 만큼 폐는 나빠졌을 테지만.
그러다가 하루는 아버지가 굉장한 것을 아셨다면서 나를 컴퓨터 앞으로 부르셨다. 도대체 뭔데요? 이럴수가, 묻자마자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분명 다 클릭하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주변 칸들이 확 열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 수를 쓰셨어요? 혹시 꼼수를 쓴 거 아닌가? 알고 보니 왼쪽과 오른쪽을 동시에 클릭하면 다 열려버린다더라. 이렇게 하면 더 쉽게 할 수 있다고 연신 딸깍딸깍 마우스 버튼을 누르고 계셨다. 어느새 아버지가 하고 있는 지뢰찾기의 난이도는 중급, 고급이었다. 그 '신공' 덕분에 해가 조금 지나자 나는 초급을 무난히 깨게 되었다. 그러나 중급과 고급에 도전했을 때에는 항상 연전 연패였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늘
'요래 요래 보면 여긴 2이고 여긴 3이재. 그라면 바로 여기가 지뢰인 그야~'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미취학 아동의 두뇌로는 그곳이 지뢰여야 할 논리적 근거를 대번에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숫자가 1,2만 주로 나오던 초급에 비해 중급 이후부터는 3,4, 심지어 5,6이 등장하니까 오른쪽 클릭을 하도 많이 해야 해서 경우의 수가 많아지게 되고 때문에 오판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늘
'그게 아이고, 이그 봐라. 3이면 여기 좍 지뢰가 맞지. 그라고 여기 단디 보면 2랑 2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지뢰지. 그라믄 여기는 뭐야. 당연히 지뢰가 아니지~'
역시 이해 불가였다. 그 논리를 깨닫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중급을 처음 깨고 나서 얼마나 환호했던지.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카드놀이와 지뢰찾기 고급 모두 정복하게 되면서 의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물론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카드놀이 베가스식 세 장 플레이. 이건 너무 어렵다. 깨지 말라고 만든 판 같다.)
최근 검색한 바에 따르면 지뢰찾기 치트키가 있어서 마우스 커서를 지뢰찾기 칸에 갖다 대면 그 칸이 지뢰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표시가 상태 표시줄에 뜨게끔 만든다고 한다. 지뢰이면 깜빡거리고 지뢰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있는 그런 식이다. 지뢰찾기 고급을 하다 보면 결국 50:50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몇 번 찾아 오는데 그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래가지고서는 별로 재미가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아버지가 처음 알려주신 왼쪽, 오른쪽 동시 클릭 신공에 비하면 이 치트키는 별로 흥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신기하지도 않다.
아버지는 '지뢰찾기를 윈도에서 빼자는 의견에 대해 MS는 그럴 거면 차라리 윈도를 사지 말라고 했다'라며 지뢰찾기를 늘 강조하셨다. 이른바 그는 지뢰찾기 예찬론자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뭐 황당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지뢰찾기는 윈도에 대충 끼워맞추어 들어간 들러리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엔 의미가 있는 게임 프로그램이다. 마우스 친화력을 높여 주고, 두뇌도 회전시켜 주고, 무엇보다도 '운에 기인한 과단한 선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짜릿한 쾌감도 선사해 준다는 것. 뭐 이만하면 기본 게임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다 갖춘 것 같다. 오히려 그 시대의 대부분의 게임을 능가하는 스펙을 가지고 있다는 걸 요즘 새삼 느낀다.
뭐, 이번에도 아버지가 옳았던 거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