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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orF 소개

Introduction of fluorF

기본 신상에 관하여

이력서(Curriculum Vitae)

영문 이력서 열어보기 (English version)

이름?

한국어 이름은 '김성수'로 할아버지께서 미리 생각해 두셨던 이름인데, 거룩하고 성스럽다는 뜻의 한자 성(聖)과 빼어나고 뛰어나다는 뜻의 한자 수(秀)를 합쳐 작명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출산 직후에 바로 편지를 쓰셔서 아이의 이름을 부모님께 내리셨다. 대한민국에는 김성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제법 흔한 편이라서 초등학생 때 같은 반에 동명이인이 있었고, 학교 후배 중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 영문 이름은 제가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가게 될 때 부모님에 의해 정해진 당시 여권 성명 Sung-Soo Kim 을 쓴다.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Seongsu Kim 으로 하고 싶었던 적이 무척 많았지만 이미 이십여년 전에 굳어진 것인지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스페인식 이름은 파블로(Pablo)이고 이는 살라망카 대학교에서 3주간 공부할 당시 같은 반에서 스스로 정한 스페인식 이름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받은 이름은 성공회(聖公會)에 전입하면서 얻게 된 신명(信名)으로 4세기 알렉산드리아(Αλεξάνδρεια)에서 활약한 교부 아타나시오(Αθανάσιος, Athanasius)이다. 아마도 조만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새로운 언어 이름을 가져야 할때 신명이 유용하게 쓰일 듯 싶다. 예를 들면 러시아식 이름은 아파나시(Афанасий)로 한다든지 말이다.

아이디 fluorF?

이 아이디는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직전인 2002년 2월에 만든 것이다. 당시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이 한창일 때라 정확하게 시기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화학 공부에 빠져 있던 나는 커뮤니티의 닉네임으로서 화학 관련된 것을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몇 차례 고민하다가 fluorF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100개가 넘는 원소들 중에서 '플루오르'만큼 어감이 가장 상쾌(?)한 원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라. SodiumNa(소듐Na)라든지 TunstenW(텅스텐W)보다는 fluorF(플루오르F)가 발음상, 그리고 표기상 가장 안정적이고 괜찮지 않은가. 물론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플루오르라는 원소 자체의 독특한 성질을 알게된 이상 닉네임에 대해 더는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당시 알고 있던 얕은 화학 지식에 따르면 플루오르는 가장 전기 음성도(electronegativity)가 커서 전자는 무조건 다 끌어당기는 아주 욕심 많은 원소였다. 앞으로 배우게 될 많은 것들을 강하게 끌어당겨 내 것으로 만들겠노라는 17살 어린 학생의 의지가 바로 이 아이디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사는 곳?

광명시에서 태어났지만 생애 대부분을 그 옆동네인 안양시에서 보냈다. 2살 때 이사온 이후로 단 한번도 이곳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아버지께서 가정을 꾸리면서 4인 가족이 살기 위한 적절한 장소를 찾던 중 안양에 당시 새로 지은 아파트에 이주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운이 좋았다.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안양 관내에 위치한 곳을 다녔고, 교회 역시 늘 안양에 있는 교회였다. 흔히 '안양에 있는 것은 전국에 다 있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이 동네는 갖출 것들은 모두 갖춘,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그런 도시이다. 그리고 서울 남부권 어디로든 가기에 참 편리한 위치에 있어 늘 '교통의 요지'라고 치켜세우기도 하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대담하게 이를 주입시키려고 노력한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부산에서 수십년 사시다가 안양으로 이사하신 뒤 말년을 여기서 보내셨는데 안양(安養)이 비록 불교용어에서 온 말이지만 직역인 '편안하게 기른다'라는 뜻풀이 자체를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곤 했다. 현재는 직장이 위치한 전라북도 완주군 옆에 있는 익산시에서 살고 있다.

신체 사이즈?

키는 175 cm 인데 몸무게가 2021년 6월 현재 71.7 kg. 키가 가장 급격하게 성장한 것이 중학교 3학년을 전후해서였고 똑같이 키가 175 cm 정도인 우리 아버지는 늘 본전 뽑은 거에 불과하다며 한탄하신다. 한편, 키가 다 큰 고등학교 2학년 때 내 몸무게는 여전히 50 초반. 학부 때 몸무게는 늘 54 kg 였는데, 대학원 진학 후 열심히 먹고 마시고 운동을 하면서 1년에 1 kg 씩 찌웠다. 그 덕분에 지금은 심각하게 마른 상황은 면하게 되었고 지금이 30년 인생 통틀어 가장 무거운 때. 이제는 대한민국 평균 체격이 되어 더이상 말랐다는 소리를 안 들어도 될 정도가 되었다! 보통 입고 다니는 바지는 이제 31 인치, 상의는 105 사이즈. 발은 아버지를 닮아 그리 크지 않은 265 mm 이다. 다른 신체 사이즈에 대한 답은 노코멘트.

가족?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있다. 사진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동생 안나는 혼인해서 멋진 매제(妹弟), 그리고 귀여운 조카와 함께 살고 있다.

학교에 관하여

왜 전공을 화학으로 했나?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한민국 어린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흰 가운을 입고 실험하는 멋진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재적인 두뇌를 타고난 것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있는 교육용 과학총서들을 읽으면서 많은 흥미를 느낄 수 있었고 나중에 크게 되면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는 과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러다가 '화학'이라는 단어와 그에 관한 기초적인 이야기를 초등학교 5학년 때 선물로 받게 된 '심심풀이로 읽는 화학(에버하르트 로사 著)'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난생 처음 접했다. 당시 그 책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기에 화학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책을 읽게 되면서 화학에 대한 흥미가 전보다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윽고 중학생 때 과학 공부를 하면서 다른 분야보다는 물질의 변화 부분에 더 재미를 느낀다는 것을 파악한 나는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기 직전의 겨 울방학 교회 수련회 때 나의 장래희망을 화학자로 설정하였고, 그것을 위해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화학 관련 과에 진학하겠노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공부한 결과 서울대학교 화학부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학사와 석박사통합과정을 마침으로써 고분자화학 분야에서의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학부 과정 동안 무엇을 했나?

학부에서는 매우 다양한 것들을 공부하고 체험할 수 있었다. 비록 많은 여가 시간들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심지어 대학생 과외를 하느라 날려버리긴 했으나 그 없는 시간들도 쪼개서 내가 하고픈 것들을 조금씩 해낼 수 있었다. 전공 외 측면에서는 스페인어를 좀 더 깊이 공부하였고, 재즈(Jazz)에 대해서 더욱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학부 때 읽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Heidelberger Katechismus)'는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다시 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하프시코드(harpsichord) 연주 수업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경험이었다. 해외에도 여러 번 나갔고, 특히 아버지께서 지내고 계신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이었다. 전공 측면에서는 주로 화학과 물리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학부 중반에 접어들어 물리학을 더 깊게 공부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나는 복수 전공을 신청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3학년을 도대체 어떻게 보냈을까 싶을 정도로 전공 공부에만 매진하며 그렇게 2년여를 보냈다. 4년 졸업을 딱 마치고 나니 이수한 학점이 154 학점이었다. 졸업 요건이 130 학점인데 한 학기에 최대 21학점을 들을 수 있는 것을 고려해보면 남들보다 한 학기 더 많이 다닌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고분자화학을 전공하게 된 배경?

원래 나는 물리를 엄청 싫어했다. 하지만 학부 1학년 때 물리학을 정말 재미있게 배우게 되었고 복수 전공을 신청하게 되면서 나중에 이론 화학 쪽을 공부할 생각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물리화학이나 화학물리학에서 이후의 연구를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내려놓게 되었고, 그 결과 박사과정을 이수한 지금의 고분자화학 연구실에 진학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라며 의아해 했지만, 당시 나는 머릿속에서만 둥둥 떠다니는, 실재(實在)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수많은 수식들만 좇기보다는 실제로 실험을 하면서 응용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화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두었다. 그 결과 고분자 물질이 유용하게 연구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고, 실제로 마지막 학년에는 물리천문학부 및 화학부의 고분자과학 실험실에서 연구실 체험을 각각 해 보고 고분자화학 수업도 들었다. 고분자화학은 여러 학문들이 융합된 학제간(學際間) 연구의 성격이 짙었고 내가 폭넓게 배웠던 물리학적 지식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대학원 과정 동안 무엇을 했나?

그런데 고분자화학 연구실에서 나는 좀 더 다른 일에 착수한다. 바로 물리학 수업 때 소개되었던 2차원 탄소 소재인 그래핀(graphene)을 우리 실험실에서 다루는 이중블록공중합체(diblock copolymer)로 나노패터닝(nanopatterning)하는 연구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학(理學)보다는 공학(工學)에 조금 더 가까워진 모양새였다. 이중블록공중합체로 제조할 수 있는 규칙적이고 다양한 나노구조를 식각 마스크나 템플리트로 활용하여 다양한 금속 및 산화물 나노구조 배열을 제조하고 이를 이용하여 그래핀을 식각함으로써 이중블록공중합체의 나노구조를 본뜬 그래핀 나노구조를 만드는 일을 6년 반동안 꾸준히 진행했다.

박사 졸업 이후엔 무엇을 하고 있나?

박사학위를 취득한 2015년 8월 이후 1년간 서울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박사과정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와 관련된 논문 작성을 마무리했다. 이후 2016년 9월부터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화학공학 및 재료공학과로 건너가 박사후연구원(postdoctoral associate)으로 연구생활을 잇게 되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고분자 합성 및 응용을 연구하고 있는데 기존 박사과정 때 했던 일과 접점이 없는 전혀 새로운 일을 진행하였으며, 따라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물성을 분석하고 측정하였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연구 주제에 투신하게 된 것은 큰 도전이었지만 동시에 귀중한 경험이었고, 쉬운 일이 아니기에 좌절감을 느낄 때도 참 많았지만 그래도 주어진 임무들을 잘 수행하면서 여러 일들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1일자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KIST)의 선임연구원으로 임명받아 복합소재기술연구소가 있는 전북분원에서 첫 연구직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또다른 새로운 연구 주제를 가지고 도전하는 일을 쉬지 않고 있다.

좋아하는 것에 관하여

좋아하는 음식?

누군가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답하는 것이 바로 참치회이다. 참치회를 처음 먹어본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에는 국어와 수학 과목에 대한 시험을 도내 모든 초등학생들이 일괄적으로 함께 치는 도학력고사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시험이 끝나고 나서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외식을 하기로 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중앙로 근처에 있는 동원참치 횟집에 갔다. 부모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참치회같은 것을 과연 좋아할지 걱정하셨다는데 생각보다 나와 동생이 참치회를 너무 잘 먹자 안도하셨다고 한다. 회 맛을 어떻게 표현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감칠맛과 코 안에서 감도는 회 냄새는 언제나 대환영이다.

좋아하는 스포츠?

나는 운동을 잘 못한다. 중고등학교를 모두 남중, 남고를 나왔는지라 체육 시간이면 특별한 일이 없다면 축구나 농구를 해야 했는데 다른 또래들처럼 공을 잘 다루지 못해서 언제나 늘 고민이었고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공을 가지고 노는 스포츠 중에서 취미를 붙일 만한 스포츠가 있었으니 바로 고 1 때 처음으로 제대로 접한 볼링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모의 고사나 혹은 다른 일로 인해 방과 후 시간이 나게 되면 평촌에 있는 청소년 수련관으로 달려가 볼링 게임을 즐겼는데, 당시 청소년 수련관의 볼링장은 한 게임에 1,000원밖에 안 했기 때문에 한창 때에는 하루에 다섯 게임을 내리 하기도 했다. 요즘도 기회가 되면 가끔씩 볼링을 치는데 성인 볼링 요금은 너무 비싸서 예전처럼 자주 칠 수는 없다. 주로 12 파운드 공을 굴리며 평균은 130~140 정도 나온다.

좋아하는 영화?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퇴폐적이고 돈 낭비라고 막연히 생각해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영화를 잘 보지 않았다. 그러던 나를 완전히 바꾸게 만든 영화가 바로 롭 마셜(Rob Marshall) 감독의 영화 '시카고(Chicago)'였다. 영화 내내 흐르는 재즈풍의 음악과 주연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볼만한 안무 영상은 나를 확 잡아 끌었고, 영화관에서 한 번 본 이후로 학교에서 한 번, 집에서 세 번 다시 보았다. 이 영화를 본 뒤로 나는 친구들과 영화를 가끔씩 시간을 내서 보게 되었고, 지금은 '영화는 죄악'이라고 말했던 과거를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 시카고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위치를 위협한 영화가 여럿 있었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바로 리안(李安)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였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종교에 대한 여러 함의가 가득 담긴 멋진 영화였다.

좋아하는 악기?

하프시코드(Harpsichord). 하프시코드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사 놓으신 클래식 음악 컴필레이션 음반 중 악기별로 분류된 것들 중에 하프시코드 CD가 있었다. 물론 어렸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초등학생 때 동생과 즐겨했던 컴퓨터 주사위 게임 중 하나인 'Yacht'의 배경 midi 음악이 바흐(Bach)의 인벤션 4번인 것을 알았던 나는 피아노가 아닌 하프시코드로 연주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악기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져갔고, 중고등학생 때 이 악기에 대해 보다 제대로 알게 된 이후로 나는 하프시코드가 내는 특유의 음색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운 좋게 교양 수업으로 하프시코드 수업을 듣기까지 했다. 평생의 소원 중 하나가 하프시코드를 직접 방 안에 두고 치는 것이었는데, 비록 이것을 구입할 만큼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학교에서 매주 한번씩 직접 이 고악기를 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

단언코 재즈(Jazz). 나는 꽤 어렸을 때부터 즐겨하던 게임으로부터 재즈 음악을 접했다. 내가 가장 즐겨 했던 게임 중 하나인 트랜스포트 타이쿤(Transport Tycoon)과 심시티(Sim City)의 배경 음악은 재즈 일색이었다 ― 특히 트랜스포트 타이쿤의 배경 음악 중에는 아예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Watermelon Man'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음악 장르가 '재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 3때였다. 수능을 열흘 정도 앞두고 학교 도서관에서 'Jazz it up!'라는 책을 빌려봤는데 이 책을 통해 재즈가 무엇이고 어떤 유명한 음악가들이 재즈를 발전시켜 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대학 입학 후 재즈 중앙동아리에서 잠시 몸담기도 했고, 좋아하는 음악가의 CD들도 구매하기 시작했다. 비록 꾸준하게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재즈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서 연습하기도 했고, 시간이 나면 혼자 혹은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재즈 클럽에 가서 음악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Mark Gridley의 '재즈총론(Jazz Styles)'는 재즈를 보다 잘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자주 오래 들어도 재즈는 질리지 않았고, 들을 때마다 늘 기분이 좋았다. 참고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재즈 아티스트는 Bill Evans고, 가장 즐겨 듣는 재즈 곡은 Return to Forever의 'Spa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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