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였다. 당일과 그 다음날 저녁에 각각 시험이 잡혀있었다. 대비도 할겸, 집-학교를 왔다갔다하는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려고 베개랑 츄리닝이랑 세면도구를 다 챙기는 바람에 등교길이 사뭇 분주했다. 누가 보면 등교하기 전에 어디 옷 가게에서 쇼핑하고 가는 줄로 알 정도였다.
그런데 등교 전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물건이 있었다. 바로 담요였다. 이건 참 부끄러운 얘기긴 하지만. 지난 태국-호주 단기선교 때 타이 항공을 이용했는데 긴 시간 여행에 기내에서 편안한 수면을 위해 베개와 담요를 제공해 주었다. 타이 항공의 보라색 베개와 담요, 그것을 찾고 있었다.
항공기에서 제공하는 담요는 보온 효과도 괜찮고 크기도 딱 알맞다. 더구나 그 재질이 보푸라기가 생긴다든지 촉감이 피부에 거슬린다든지 하지도 않는다. 물론 기내 담요, 베개를 기내 밖으로 가져가는 일은 상당히 비양심적이긴 하지만 이걸 내가 넣었는지 동생이 넣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뭐 일단 소유권을 차지하였고 본인과 타이 항공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지도 않으니 이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내 손 밖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집에 없던 것이다. 아, 기내 밖으로 가져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때 내 작은 양심(良心)이 빛을 발했던 것 같다. (이제서야 당당히 말할 수 있지만 기내 제공 물품을 밖으로 가져가는 행위는 비양심적인 행위이다!) 아무튼 기내에서 담요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당장 필요한 게 없음에 탄식을 한 번 했고, 하지만 내 양심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에 스스로 자긍심을 치켜 세울 수 있었다. :)
하지만 자긍심이 이 추운 가을밤에 나를 따뜻하게 해 주지는 않는다. 내겐 담요가 필요하단 말이다. 노숙자의 신문지라도 급히 필요하단 말이다. 그러다 문득 스쳐가는 한 생각. '헌혈을 하면 그와 비슷한 크기의 베개/담요를 제공해 주는 것을 고등학교 때 보았다.'
내가 헌혈을 최초로 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휘상이와 함께 종로 교보문고에 가서 유기화학 책 ㅡ 지금 생각해보면 고 1 때의 학구열을 대단했던 것 같다 ㅡ 을 구입했을 때 출구 밖으로 나오다가 헌혈을 권하는 분의 부르심(?)에 이끌려 헌혈의 집에 들어갔었다. 그 때 처음으로 헌혈이란 것을 해 보았고, 헌혈증이란 것을 받아았다. 학교 생물시간에 지겹도록 들어온 항체-항원 반응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도 직접 실험할 수 있었다. 덩치도 작고 마른 나도 헌혈을 할 수 있구나. 이후로 고등학교에 헌혈 차량이 와서 두 번 정도 더 헌혈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헌혈 후에 나는 거기서 우유와 초코파이를 제공받았다. 당시 가격으로는 500원 정도? 나는 헌혈 후에 간단한 음식을 제공받는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다. 아니, 헌혈하고 왜 이런 걸 베풀어 줄까? 그 때에는 마냥 무언가 먹을 것을 손에 쥐어주셨으니 감사하게 받아먹었지만 돌아오는 지하철 1호선 전철 안에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뭐, 이 정도는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도의 후원금 내지 운영비가 있나보지, 피를 뽑는데 나름 헌혈자도 수고한 셈이니 그에 응당한 댓가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헌혈 차량이 왔을 때, 어느새 제공물품은 달라졌다. 우산과 베개/담요 세트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얘네들은 분명 500원보다는 비싸다. 이야, 헌혈하면 이제 이런 것도 주는구나, 헌혈 관련 사업이 많이 남는 장사를 하는지 이런 것도 아주 '뿌리고' 있고 말이야.
대학생이 되어서는 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서울대 안에도 '헌혈의 집'이 있는데 이 곳에서 헌혈을 하게 되면 온갖 기념품들을 받게 될 수 있고 안양 일번가나 범계역 근처의 헌혈의 집에서 헌혈을 하면 영화표까지 공짜로 제공한다는 믿기 힘든 홍보물이 곳곳에 붙어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이 정도 되면 헌혈하고 뜻하지 않는 초코파이와 우유에 감사했던 기억은 완전히 구닥다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헌혈하고 초코파이와 우유를 받고 감사했다고? 지금은 헌혈을 하고 당당히 7~8000원의 값어치를 하는 영화표를 받을 수 있는데?
헌혈에 보답하는 의미로 기념품과 영화표를 제공하는 것들은 진정 헌혈을 유도하는 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적성을 가지고 헌혈을 하는 것이야 말로 헌혈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니까. 봉사나 헌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자발성이 강조되는 숭고한 행위에 영화표는 대체 무슨 말이냐. '헌혈의 집'은 자발성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시민들에겐 헌혈의 '자발성'보다는 '떡밥'이 강하게 어필하게 되는 역효과를 낳지 않았는가. 이건 헌혈이 아니라 매혈이다, 매혈. 이제 학생들은 헌혈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응급환자들을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3분 후에 무슨 기념품을 받을까 하는 생각으로 헌혈하는 시간을 채우고 있다. '나눔'이라는 전제가 빠진 이런 헌혈 유도책으로는 결코 시민들로 하여금 꾸준히 헌혈의 집을 찾게 해 줄 수 없다.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자원봉사를 해서 주는 지원금이나 격려금 때문에 자원봉사를 하나? 내가 무언가를 나누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그 휴머니즘에서 기인한 뿌듯한 기쁨이 자원봉사의 원동력 아니겠는가.
하지만 공급이 적으면 값이 오르게 된다는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하도 헌혈하는 사람이 적으니 그 피를 받기 위해서는 이 쪽에서도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 또 그만큼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현실이다. 이제는 상품을 가지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탐색전을 벌이며 타산을 계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피'도 한낱 경제학의 논리에 따라 다뤄지게 된 것이다. 피는 '인간'이라는 공장에서 제작한 '피'라는 상품에 불과한 것이다. 도대체 이런 기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했나. 봉사활동으로 20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학교 규정에 따라 억지로 봉사현장에 헌신 아닌 헌신을 해야 했던 내 지난날의 모습은 영화표를 위해 헌혈하는 사람과 다를 게 없다. 결국 참된 나눔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이 아니고서는 그 어떠한 시도도 불발 100%이다. 혈액 저장고에 저장된 피가 점차 줄어들어는 것은 결코 획기적인 유도 방안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순진하고도 중한 도덕 교과서의 가르침이 부재한 현재 우리네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결국 '헌혈의 집'을 탓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들은 이 난국에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쓰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군사들과도 같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매일 'AB형 급구, A, O형도 필요'라고 적힌 '헌혈의 집' 게시판을 쳐다보면 정말 피에 목말라 있는 그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안 그래도 최근 헌혈 인구가 줄고 저장된 혈액도 적어 응급 때 사용할 피가 점점 부족해진다고 하는데 이들의 입술, 아니 혈관이 바싹바싹 타 들어갈 것이 아닌가. 결국 비난과 반성은 헌혈의 대상자인 우리들에게 짊어져야 할 것들이다. 피의 가격이 이렇게 오르도록 도대체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 땅에 자발성을 격려하고 자극하는 교육이 부재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혹은 더 큰 '떡밥'이 나오면 그 때쯤이면 내 귀한 피 좀 주려고?
시험 기간이 끝나면 헌혈해야겠다. 헌혈 후에 주는 것, 당당히 받지 않고 나오리라.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