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속담(俗談) 중에 있는 말이다. 내가 이것을 처음 본 때는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초등학교 2학년 1반 교실에 붙은 조별 신문 전지에 이 속담이 쓰여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조별 신문을 만들면 정말 각종 내용들 ㅡ 유머, 속담, 심지어는 TV 시청표까지 ㅡ 을 잡다하게 써 넣었고 늘 유행했던 반짝이 풀을 덕지덕지 쏟아내어(?) 장식을 허접하게 마무리하곤 했다. 신문 편집장이 가장 고려해야 하는 것은 독자(讀者)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만든 이 중요한 정보들을 부담 없이 잘 찾아 즐겁게 읽을 수 있을까인데, 우리의 초등학생 편집장 아이들은 전혀 그런 것엔 아랑곳하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어쩌면 저런 특별한 의미없는 이전엔 들어본 적 없는 저런 속담 같지 않은 속담이 눈에 확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난 '저게 무슨 속담이야?'라고 생각했다. 전혀 전통적(傳統的)인 맛은 없고 단순히 우리나라말로 되어있을 뿐 그냥 '받아쓰기 잘하면 도장받는다.'라는 말이나 별 다를 게 없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말이 설령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속담이더라도 내용에 동감할 수 없었다. 아니 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 그럼 나는 부모님도 사랑할 수 없나? 선생님도 사랑할 수 없나? 아니면 나이 많은 형이나 누나는 사랑할 수 없나? 이런, 결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가 많다는데 그럼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되 여자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는 얘기야? 도대체 이런 말이 어디있어?
자식을 불효자로 만들고 부부를 남남으로 만드는 이런 속담은 빨리 폐기처분(廢棄處分)시켜야 한다.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이 속담은 정말 사람 관계를 정확히 꿰뚫는 말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 정말 손윗사람을 품는다는 것, 마음에 두는 것, 또 마음의 일부는 나누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해한다. 같은 나이나 손아랫사람에게는 이 일이 정말 쉽다.
그래서 정은 물과 같다. 낮은 곳으로, 아래로 자꾸 흐르지만 거꾸로 올릴 수 없다. 그러려면 댐 아래로 내려간 물을 다시 올리는데 필요한 태양 에너지의 거대한 양만큼의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건 성인군자(聖人君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이건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에 비하면 이건 사랑도 아니다. 아마도 이 속담은 이런 걸 말하는 것일 것이다. 아래를 향한 사랑에 비하면 위를 향한 사랑은 너무나도 표현이 서툴고, 익숙하지도 않은 것이며, 한국적 상황에서 빚어지는 많은 장애물(障碍物)들을 각오해야하는 그런 사랑인 것이다.
정말 선배들을 잘 대하는 후배가 되기도 쉽지 않고 후배들을 잘 품는 선배가 되기도 쉽지 않다. 지금 친구들의 대부분이 군인인데, 이들 역시 선임과 후임 중간의 위치에 서 있을 때 한창 곤란을 겪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좌절'이라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 버리고 이 속담을 근거로 삼을 수는 없지. 어쩌면 이 속담이 생겨난 이유는 현실이 이러니 네가 좀더 노력해보라는 것 때문일는지 모르겠다. 냉엄하게 닫힌 벽이 서서히 녹아나고 있는 요즘, 내게도 치사랑의 기운이 훈훈하게 불어오는 것을 미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