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학교에 가고 있었다. 한 정류장에 도착해서 손님을 태우고 있는데 뒤에서 하차하려던 초등학생 몇 명이 벨을 미처 누르지 못한 것 같았다. 아이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기사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

물론 친절한 기사님의 배려 덕분에 아이들은 꾸중을 듣지 않고 무사히 정류장에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뭔가 이야기가 잘못 흘러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버스에 올라탈 때 분명히 운전석에 앉은 분을 확인했다. 버스를 운전하시던 분은 여성분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았을 때 읽었던 (당시에는) 난해하기 짝이 없었던 '논리는 내 친구'라는 책에서 이런 문제가 나왔다.

성수(가명)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것을 목격한 아버지가 재빨리 성수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의 의사가 긴급 후송된 성수를 보고 이렇게 탄식했다. '이럴수가, 내 아들 성수가 사고를 당하다니!' 과연 병원의 의사는 성수와 무슨 관계일까?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에는 '아니, 성수는 아버지가 두 명이나 있었나?'하고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답은 간단했다. 당시에는 소아과나 산부인과 외에 여자 의사가 별로 없었던 때였으므로 바로 답을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정답은 '의사는 성수의 어머니이다.' 사실 우리의 논리적인 사고를 가로막았던 것은 직업과 성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선입견 내지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그 아이들도 무의식 중에 버스기사 = 아저씨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가 영어를 처음 배웠을 때만 해도 소방수는 fireman이었고 우편배달부는 postman이었으며, 승무원은 stewardess였다. 그러나 이제는 fire fighter, post officer, 그리고 flight attendent라는 다소 중성적인, 그러나 객관적인 단어로 바뀌었다. 물론 아직 우리는 불길을 헤치는 소방수 아저씨, 자전거를 타고 오지에 편지를 배달하는 아저씨, 상냥한 어조로 기내식을 권하는 아가씨 혹은 아주머니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하듯 '금녀' 혹은 '금남'의 영역에서 성실하게 맡은 책무를 수행하는 분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만나고 있지 않은가. 분명 50년 뒤에는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기사 아주머니, 문 좀 열어주세요.'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