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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은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단원고등학생 수백명을 포함한 약 3백명의 승객들이 목숨을 잃었던 세월호 사고의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당시 저녁 약속을 위해 밖으로 나오던 나는 역 근처에서 노란 리본을 나눠주며 촛불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과 연대하지 못함을 마음 한 구석에서 미안하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 벌써 1년이 지났구나. 그 가슴 아픈 사건, 생각만 해도 먹먹해지던 그 사건이 벌어진 지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세월호 사건은 시사해주는 바가 무척 많은 사건이다. 물론 대한민국에 세월호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고도 많다. 그리고 언급하기가 민망하고 죄스러울 정도로 더욱 끔찍한 인재들도 많다. 하지만 SNS가 고도로 발달한 이 시점에서, 한창 할 일이 많을 아이들이 대거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배를 버리고 홀로 목숨을 부지하려고 했던 선장 등의 어이없는 치졸한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넋을 나가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이와 가장 비슷한 '단장'의 느낌을 받아본 적은 십수년 전 씨랜드 화재사건이었다.) 그 뿐인가. 세월호 사고의 간접적인 원인들과 처리를 둘러싼 정부 및 민간 단체의 불협화음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단순 선박 사고'가 아닌 '총체적 난국에 처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로 여기게 되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바뀌었는가. 세월호 관련된 법이 통과했고 최근 가라앉은 선체를 인양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졌는지 정부 부처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9명의 실종자의 시신이 저 차가운 바닷속에서 숨쉬고 있을 것이지만, 시신 수습 소식이 뜸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태도도 비교적 차분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고가 남긴 트라우마는 여전히 대단해서 세월호 사고로 인해 참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을 가지며 살게 되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살아 남은 사람대로, 죽은 사람의 가족은 죽은 사람의 가족대로, 또 세월호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죄책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대통령과 정부 수반, 구호 민간 단체, 그리고 로마의 교황이 치유하기에도 참 어려운 깊은 상처였다. 해경이 해체되고 안전청이 안전처로 승격되는가 하면 전국 각지의 안전에 대한 시설과 교육이 재점검되었다. 보상과 지원 문제도 논의되었다. 하지만 이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 못한 듯 하다. 더욱이 이 사건이 가져다 주는 우울감과 정치적 연관성은 반작용을 낳아 세월호 사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점차 등장하였다. 유가족들의 바람은 아니었겠지만 어느새 세월호는 반정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이 사건을 두고 정말 정치적인 사람들이 다투는 희대의 촌극이 벌어지게 되었다.
나는 이 사고를 어떤 시선으로 보아야 할지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이 사고는 분명히 선박 침몰 사고이다. 많은 승객들이 수장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울분 역시 차가운 진도 해역의 바닷물에 잠겨야 했다. 하지만 단순 선박 사고로 보기에도 참 어려운 것이 이 사고를 둘러싼 일들은 무척 괴이하다 싶을 정도였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씨랜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심지어 가장 최근 마우나리조트 붕괴로 부산외대 대학생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에도 정치권을 탓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초점은 부실 시공,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허술한 법 체계, 그리고 미개한 시민 의식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는 어떤가. 세월호 사고는 팽목항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보다 국회와 광화문 광장, 그리고 우리 주변의 여느 장소에서 더 많이 울려펴졌다. 근래에 이런 분위기를 연출한 재해 혹은 사고가 있었느냔 말이다.
그러다가 3월 사순절 기간에 교회에 방문하신 한 신부님의 신앙 강연에서 아주 중요한 힌트를 얻었다. 그분은 세월호 사건을 뭉친 근육통이라고 일컬으셨다. 지금 대한민국의 혈류가 한 데 꽉 뭉쳐 잘 돌아가지 않는데 그것이 바로 진도에 있는 팽목항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수많은 유가족들의 슬픔과 오열, 그리고 일반 국민들이 절감한 우울감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풀어줘야만 대한민국이 잘 돌아갈텐데 이것이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옳다꾸나 무릎을 탁 쳤다. 세월호 사건은 정말이지 우리의 역량이 꽉 묶여 버린 근육통과도 같다. 물론 이와 같이 근육통이 이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삼풍 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천안함 사고와 연평도 포격 사건, 윤일병 사건 등등 우리는 언제나 늘 근육통과 이에 따르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때로는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주사도 맞았으며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근육통에 대해서 '아프다'라고 외치며 엉엉 울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엄숙한 사회 분위기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이에 대해 자세히 논하기에는 우리 시민들이 쥘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한정되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윗사람들이 내리는 처방과 복약 지도를 따라 행동하는 것에서 그치곤 했다. 이 근육통 이후에 체질 개선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책은 무엇이었는지 우리들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 뿐인가, 사람들은 고작 근육통 하나로 아파하며 징징거리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다. 비록 많은 재해와 사고가 있었더라도 이것은 '견뎌내야 할' 종류의 아픔이었으며 심지어 '어차피 반복되는 늘상 있는' 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근육통은 달랐다. 사람들은 이제 아프다, 괴롭다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간 쌓여 있던 울분이 한꺼번에 터지는 듯한 인상이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실로 고압적이라고 여길만큼 유족들과 이들을 위로하는 국민들의 분노와 아우성은 거셌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근육통이 나타나는 원인과 배경, 그리고 향후 진찰과 처방에 대해서 매우 조목조목 따지며 분개했다. 예전같으면 대충 파스 붙이고 일터에 나갔어야 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과 회복을 요구한 것이다. 뭐랄까. 직원 복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던 회사에 노동자의 권리와 휴식권을 주장했을 때 사용자가 느낀 당혹감이랄까. 그런 것들이 이 사고 이후 정부와 부처 및 산업 관계자들에게서 느껴졌다. 사람들은 이제 이 근육통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절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외친 지 1년이 지난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둘러싼 진보측의 주장과 보수측의 주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진영 모두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이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이 사고를 달리 해석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들 역시 마음 속 깊이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탄식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일개 촌부도 그렇게 느낄진대 하물며 한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도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제 이런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도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보측이 옳다, 대통령이 잘못헀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나라는 너무나도 급격하게 바뀌었고, 그 변화에 순식간에 적응해야 하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었기 때문에 이 사고의 처리와 인식을 두고 소위 아노미 현상 비슷한 것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기실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근육통은 우리 모두의 역량을 쏟아부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단순한 근육통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근원에 더 심각한 신체적 결함과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근육통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겨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들은 예전의 그것들이 아니다. 지금은 건국된지 72년이나 지났고 그 동안 우리들은 무수한 사건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바뀌어 왔다. 모든 것이 이런 변화에 부응하여 빠르게 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럼에도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썪게 될 것이고 도태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사고는 2014년에 일어난 한 선박 사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체질 변화를 감내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금석과 같은 아주 중요한 시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부디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