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라는 단어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갑자기 사람들 입에서 정말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가 되었다. 사실 이전까지 이 단어는 정치, 언론의 단어가 아니었고 음악가와 전기배선을 담당하는 기사의 단어였다.
이른바 '코드 인사'란 자기와 성향이 비슷하고 가치관과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을 관료로 선발하는 다소 '편향적인' 인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코드 인사는 역사상 늘 있어왔고 역사란 어제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듯 조선시대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코드 인사의 폐단을 막기 위해 삼사의 감시와 견제가 늘 있었고, 사실 조선은 왕의 나라라기 보다는 왕과 사대부 관료가 함께 이끌어가는 나라였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의정부에서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요즘은 대통령께서 이렇게 견제를 하도록 만들어진 언론을 벌레보듯 하시니 코드 인사가 판을 치고 있는 거지만... 생각해볼수록 역사는 어제나 오늘이나 같은 얘기의 반복이 다른 양상으로 일어나는 이야기의 흐름인 것 같다.)
기묘하게도 코드라는 말은 두 가지 이미지의 합성을 통해 지금과 같이 '코드 인사'라는 말에 쓰일 수 있게 되었다. 우선 C코드, Diminished코드 할 때 음악에서 말하는 '코드'는 어울림을 의미해서 서로 잘 어울리는 사이라는 걸 연상시킨다. 그리고 전기선 코드는 플러그-콘센트로 그 시선이 이어져 서로 죽이 잘 맞는다는 걸 연상시킨다.
국정의 운영도 이런 '코드'가 좌지우지하게 되었다고 국민과 언론이 개탄하는데 그게 어디 '나라'의 문제인가. 사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치국이 '코드'라면 이미 수신제가부터 '코드'아닐까나ㅡ. 곧 개인적인 사람과의 관계 또한 '코드'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이것은 어쩔 수 없다. 유유상종이라지 않는가. 코드가 잘 맞으면 서로 뭉치는 것이고 안 맞으면 소외되는 것이다.
그래도 절대적인 '선'을 상정해볼때 코드에 따른 사귐은 별로 바람직하게 다가오지는 안 되는 일. '벗은 가려 사귀어라'라는 말이 있는 반면에 발은 넓은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세상일까. 너무 가려 사귀는 게 티가 나면 여러 사람의 입에 두고두고 찧일 것이다. 진짜로 지혜있는 사람은 코드가 맞는 사람은 정말 친밀하게 대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최대한 호의를 베풀고 그 간극의 최소점을 찾아 행동하는 사람일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