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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2-8

Religion 2-8

동서교회 대분열 8
History of Schism between the East and West Churches 8

필리오케 논쟁
Filioque Controversy


목차

  1.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
  2. 교황령의 성립
  3. 샤를마뉴의 대관식
  4. 참고 사이트 및 출처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

다음은 381년 제1차 콘스탄티누폴리스 세계 공의회에서 채택된 신경(혹은 신조)으로 325년 니카이아에서 채택된 신조를 계승 및 발전시켰다 하여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이라고 한다.

우선 그리스어 및 국역(한국 정교회 번역) 버전이다.

Πιστεύομεν εἰς ἕνα θεὸν Πατέρα παντοκράτορα, ποιητὴν οὐρανοῦ καὶ γῆς, ὁρατῶν τε πάντων καὶ ἀοράτων.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 전능하시고,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나이다.

Καὶ εἰς ἕνα κύριον Ἰησοῦν Χριστόν,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τὸν μονογενῆ, τὸν ἐκ τοῦ Πατρὸς γεννηθέντα πρὸ πάντων τῶν αἰώνων,
그리고 또 오직 한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로부터 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φῶς ἐκ φωτός, θεὸν ἀληθινὸν ἐκ θεοῦ ἀληθινοῦ, γεννηθέντα οὐ ποιηθέντα, ὁμοούσιον τῷ Πατρί, δι' οὗ τὰ πάντα ἐγένετο,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시요, 참 하느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이시며, 만물이 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음을 믿나이다.

τὸν δι' ἡμᾶς τοὺς ἀνθρώπους καὶ διὰ τὴν ἡμετέραν σωτηρίαν κατελθόντα ἐκ τῶν οὐρανῶν καὶ σαρκωθέντα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ἐκ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καὶ Μαρίας τῆς παρθένου καὶ ἐνανθρωπήσαντα,
성신으로 또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으며,

σταυρωθέντα τε ὑπὲρ ἡμῶν ἐπὶ Ποντίου Πιλάτου, καὶ παθόντα καὶ ταφέντα,
본디오 빌라도 시대에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καὶ ἀναστάντα τῇ τρίτῃ ἡμέρα κατὰ τὰς γραφάς,
묻히심을 믿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καὶ ἀνελθόντα εἰς τοὺς οὐρανούς, καὶ καθεζόμενον ἐκ δεξιῶν τοῦ Πατρός,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καὶ πάλιν ἐρχόμενον μετὰ δόξης κρῖναι ζῶντας καὶ νεκρούς, οὗ τῆς βασιλείας οὐκ ἔσται τέλος.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라 믿나니,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Καὶ εἰς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τὸ κύριον, τὸ ζῳοποιόν,
그리고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τὸ ἐκ τοῦ πατρὸς ἐκπορευόμενον,
성령은 성부께서 좇아 나시며,

τὸ σὺν Πατρὶ καὶ Υἱῷ συμπροσκυνούμενον καὶ συνδοξαζόμενον,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τὸ λαλῆσαν διὰ τῶν προφητῶν.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Εἰς μίαν, ἁγίαν, καθολικὴν καὶ ἀποστολικὴν ἐκκλησίαν.
하나인,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ὁμολογοῦμεν ἓν βάπτισμα εἰς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
죄를 사하는 하나의 세례를 알고 믿나이다.

προσδοκοῦμεν ἀνάστασιν νεκρῶν,
죽은 이들의 부활과

καὶ ζωὴν τοῦ μέλλοντος αἰῶνος.
후세의 영생을 굳게 믿고 기다리나이다.

Ἀμήν.
아멘.

한편 아래는 라틴어 및 국역(한국 천주교 번역) 버전이다.

Credo in unum Deum,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Patrem omnipotentem,
전능하신 아버지,

Factorem cæli et terræ,
하늘과 땅과

Visibilium omnium et invisibílium.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Et in unum Dominum Iesum Christum,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Filium Dei Unigenitum,
하느님의 외아들,

Et ex Patre natum ante ómnia sæcula.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Deum de Deo, lumen de lumine, Deum verum de Deo vero,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Genitum, non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Per quem omnia facta sunt.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nostram salutem
또한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Descendit de cælis.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Ex Maria Virgine, et homo factus est.
등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Crucifixus etiam pro nobis sub Pontio Pilato;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Passus, et sepultus est,
수난하시고 묻히셨으며

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Et ascendit in cælum, sedet ad dexteram Patris.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계심을 믿나이다.

Et iterum venturus est cum gloria,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Iudicare vivos et mortuos,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Cuius regni non erit finis.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Et in Spiritum Sanctum, Dominum et vivificantem: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Qui ex Patre Filioque procedit.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Qui cum Patre et Filio simul adoratur et conglorificatur: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Qui locutus est per prophetas.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Et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siam.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Confiteor unum baptisma in remissionem peccatorum.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Et expecto resurrectionem mortuorum,
죽은 이들의 부활과

Et vitam venturi sæculi. Amen.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뉴욕에 있는 성 삼위일체 그리스 정교회 성당(Holy Trinity Greek Orthodox Cathedral) 건물 내부에 있는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 모자이크 1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은 동서방 교회에서 공히 사용하는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 문서로 개신교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으나 가톨릭, 정교회, 일부 개신교(성공회 등)에서 전례에 사용되고 있다. 비록 서방 교회에서는 사도들이 한 줄씩 써 완성했다는 설2과 함께 등장한 사도신경(Apostolic Creed)이 더 많이 쓰이게 되었지만 동서방을 박론하고 지금까지 늘 전통적으로 교회 의례에 쓰여왔던 것은 이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어 버전과 라틴어 버전을 자세히 읽어보면 두 개의 서로 다른 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째는 예수에 관한 신앙고백 중에 라틴어 버전에는 'Deum de Deo(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원래 이 구절은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의 근본이었던 325년 니카이아 신경의 그리스어 버전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어 버전은 381년 콘스탄티누폴리스 공의회에서 신경을 개정하면서 뒤에 나오는 '참 하느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느님'과 중복이 된다 하여 이 부분을 삭제하였고, 라틴어 버전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 때문에 차이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것은 필수적인 내용의 변개는 아니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가장 큰 논란은 바로 성령에 대한 신앙 고백에서 불거졌다. 그리스어 버전에서는 '성령은 성부께서 좇아 나시며'라고 표현하는데 반해 라틴어 버전에서는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 라틴어 버전에 'et Filioque(또한 성자에게서)'가 추가로 포함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Deum de Deo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이 문구는 애초에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신경을 번역할 때 등장한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 본래 니카이아 신경에도 없던 말이었다. 이 문구는 서방 교회에서 임의로 '삽입'한 것이었다! 신경의 차이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필리오케 논쟁(Filioque controversy)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논쟁은 동서교회 대분열에 크게 기여하고야 말았다. 대체 이 논쟁은 왜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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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오케 논쟁의 역사적 배경

우선 역사적인 면을 살펴보자. 필리오케가 신경에 처음 삽입된 것은 589년의 일로, 현재 스페인의 톨레도(Toledo)에서 열린 3차 주교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었다. 이베리아 반도 교회는 당시 아레이오스(Αρέιος)주의 신앙을 신봉하는 게르만족의 영향력 하에 있었기 때문에 니카이아 및 콘스탄티누폴리스 공의회에서 결정된 '아버지 하느님과 동일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정통 신앙을 강조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때문에 예수의 신성을 더욱 강조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성령의 이중 발출(發出, proceed)설이었다. 즉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에서는 성령이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해왔지만, 톨레도 주교회의서는 성령이 성부 뿐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발출한다고 고백함으로써 성부와 성자가 동일함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톨레도 뿐 아니라 다른 스페인 지역인 메리다(Mérida)와 브라가(Braga)에서 열린 주교 회의에서 각각 666년, 675년에 채택되었다. 비록 나중에 서고트 왕국이 아레이오스주의를 버리고 로마 가톨릭과 통교하게 되었지만 필리오케는 일종의 이베리아 반도 교회 전통이 되어 전례에 쓰이는 신경에 늘 첨가되었다.

톨레도는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으며, 고전적인 건축물들이 잘 보존된 스페인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3

필리오케 문구 삽입은 같은 게르만족 프랑크 왕국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전해졌으며 점차 서유럽 교회에서 일반화되었다. 결국 809년 프랑크 왕국의 수도였던 엑스라샤펠(Aix-la-chapelle) 4에서 열린 공의회에서는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에 필리오케를 삽입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흥미롭게도 정작 서방 교회의 수장인 당시 교황 레오 3세(Leo III: 795-816)는 이 결정을 반대했으며 실제로 로마 교회는 11세기 초까지 필리오케를 삽입하지 않은 신경을 고백해왔다. 이에 더 나아가 레오 3세는 필리오케가 삽입되지 않은 신경을 은판에 새겨 승 베드로 성당에 둠으로써 이와 관련된 논쟁을 매듭지으려 했다. 아마도 레오 3세는 필리오케를 삽입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으나, 세계 공의회를 통해 채택된 신경에 임의로 단어를 추가하거나 빼는 것은 불경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5

그러나 1014년에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고 만다. 이 해에 이탈리아 왕이자 독일 왕인 하인리히(Heinrich)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토 8세(Benedictus VIII: 1012-1024)의 축성을 받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2세로 등극하게 된다. 그런데 하인리히 2세는 자신의 영지와는 달리 로마에서는 필리오케를 삽입하지 않은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을 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이상히 여겼던 듯 하다. 이에 민첩한 베네딕토 8세는 필리오케를 삽입한 신경을 전례 중에 고백하게끔 하였고, 이로 인해 필리오케 문구를 삽입하는 관습은 이제 로마 교회에서도 받아들여지게 되었다.6

한편 동방교회가 필리오케 문구가 삽입이 된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예루살렘에 있던 수도사들로부터였다. 비록 예루살렘은 무슬림들의 손에 떨어졌지만 순례자들과 수도사들의 방문은 여전히 가능했으며, 기독교인들은 동방교회 서방교회 차별 없이 그곳에서 기독교 전례를 베풀며 예수의 탄생과 사역,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했다. 그런데 전례 중에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이 다르게 암송되고 있다는 것이 수도사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된 것이었다. 동방교회 수도사들은 서방교회 수도사들이 고백하는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에 생전 들어보지 못한 필리오케 문구가 첨가된 것을 듣고 놀랐고, 이내 문구의 삽입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동서교회가 다른 신경을 읊는다는 것을 이곳 성 사바스(Σάββας)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알게 되었다. 7

이 필리오케 논쟁은 9세기 이후 동서방 교회의 분열의 상징이 되고 만다. 이후의 글들에서도 숱하게 볼 수 있겠지만, 분열된 동서교회의 일치를 위한 노력은 번번히 필리오케 논쟁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13세기 이후 비잔티움 제국이 점차 쇠퇴하게 되자 서방으로부터 도움을 얻으려고 교회의 연합을 도모하는 노력이 몇 차례 진행되었다. 그 때마다 결의 내용에는 신경에 필리오케를 삽입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정작 동방 교회 성직자와 평신도 대부분은 이를 반대했다. 필리오케 문제는 콘스탄티누폴리스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되면서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이야기가 단절되어 버렸고, 제 3의 로마임을 자처한 모스크바(Москва)의 위정자들과 성직자들은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을 '이단과 타협하려던 콘스탄티누폴리스의 최후'로 여김으로써 서방교회와 필리오케 논쟁에서 양보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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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오케 논쟁의 신학적 배경

그렇다면 도대체 어떠한 신학적 관점의 차이가 필리오케 논쟁을 불러일으켰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특히 문제가 되는 성령에 대한 동서교회의 해석을 살펴보아야하는데,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서방 교회가 대적해야했던 이단 세력 중 가장 오랫동안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역시 예수의 신성을 부인했던 아레이오스의 가르침이었다. 치열하게 이들을 굴복시키고 정통 신앙을 확립하고자 했던 서방교회의 신앙은 점차 성육신한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의 신성을 확증하고 그가 성부 하느님과 동일시됨을 강조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지난 글들에서도 누차 언급했지만 동방교회가 단성론 논쟁에 휩싸였을 때 서방교회의 입장이 비교적 확고하고 단정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성부와 성자의 일치'에 대한 가르침이 테르툴리아누스(Tertulianus)로부터 확정적으로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성령에 대한 서방 교회의 인식 역시 이를 기반으로 하여 진전되었다.

서방의 삼위일체의 교리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체계화한 사람이 히포(Hippo)의 주교였던 저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였다. 그는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에서 세 위격의 하느님 본질의 통일성을 강조함으로써 아레이오스주의를 공박했다. 그의 저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자와 성부는 동일한 본질이시며, 참 하느님이시다. 성부뿐 아니라, 삼위일체가 불사이시다. 만물이 성부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온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시며, 참 하느님이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 교회의 최고 신학자로 칭송받는다. 8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 존재라는 주장에서 더 나아가 모든 근원이 되는 성부를 '사랑하는 자', 성부로부터 낳음을 받은(begotten) 성자를 사랑받는 자로 묘사하고, 그 둘 사이의 관계인 사랑이 곧 성령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구분으로써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다르되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여 흔히 군주신론(君主神論, Monarchianism)과 양태론(樣態論, Modalism)9이라 불리는 사벨리우스(Sabellius)의 주장 또한 극복하였다.

또한 그는 성령 역시 만물을 창조할 때 삼위 하느님이 함께 사역한 것처럼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된다고 서술했는데, 비슷한 주장은 픽타위움(Pictavium)10의 주교 힐라리우스(Hilarius), 밀라노(Milano)의 주교 암브로시우스(Ambrosius)에게서도 확인 가능하다.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본질을 갖고 계시므로 하느님의 영이 곧 그리스도의 영이고, 결국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하느님의 한 본질, 곧 통일성을 잘 드러내는 교리라는 주장이었다.

한편 동방 교회의 삼위일체론은 역시 수많은 이단과의 논쟁 속에서 구체화되었는데 유력했던 이단들 중 하나가 성령대항자(Πνευματομάχοι)들이었다. 이들은 성부와 성자의 동일 본질에 대해서는 인정했으나 성령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성령은 하느님께서 부리는 영의 하나일 뿐 하느님의 신성을 소유하지는 못했다고 보는 것이었다. 이들과의 논쟁에 가장 많이 기여한 사람은 알렉산드레이아(Αλεξάνδρεια)의 아타나시오스(Αθανάσιος), 그리고 소위 카파도키아(Καππαδοκία) 교부로 불리는 카이사레이아(Καισαρεία)의 바실레오스(Βασίλειος), 니사(Νύσσα)의 그레고리오스(Γρηγόριος), 그리고 나지안조스(Ναζιανζός)의 그레고리오스(Γρηγόριος)였다. 이들은 성령이 다른 위격에 종속되지 않은 또다른 위격의 하느님으로 사람들의 경배를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성령의 신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신성의 원천이 되시는 성부 하나님의 주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동방교회의 입장이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세 인격은 하나의 본질을 갖고 있는데, 그 세 인격의 일체성의 배경은 바로 성부이다.
왼쪽부터 카이사레이아의 바실리오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그리고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11

동방교회의 성부-성자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서방 교회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무리 성부와 성자가 한 본질임을 고백했어도 성부와 성자는 다른 위격을 가진 하느님이었고, 그 신성은 성부 하느님이 성자 하느님을 낳으심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알렉산드레이아 학파 철학자인 오리게네스(Ὀριγενες)와 같이 성자가 성부에게 완전히 종속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서방 교회와 같은 한 본질 안에서의 통일성을 강조한 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동방 교회의 삼위일체론은 세 위격의 구별을 강조하면서 그 역할이 제각기 다름을 이야기하였고, 그 모든 것이 성부로부터 비롯되었으나(성자는 낳음, 성령은 발출)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한다는 서방 교회의 주장은 동방 교회 성직자들로 하여금 성령이 가진 신성의 원천이 둘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렸고, 그들은 이러한 주장이 성부의 절대적 주권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고 보았다. 또한 성부와 성자의 일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상대적으로 성령의 의미와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이며 이는 역할이 다른 세 위격의 균형을 심각하게 붕괴시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동방 교회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있는 가르침 중 하나가 세계 공의회라는 입장이었는데 서방교회가 세계 공의회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신경을 변개했다는 점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기독교 분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 분파는 이 삼위일체 도식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자세한 묘사에는 차이가 있다. 13

필리오케라는 단어는 짧은 단어 하나에 불과했지만, 이것을 둘러싼 논쟁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전통 및 가르침이 그 오랜 시간동안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혹자는 이 단어 하나가 뭐가 그리 중요하기에 이런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냐고 반문하겠지만, 필리오케와 관련되 삼위일체론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로부터 구분할 때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교리이다. 가장 핵심적인 교리로 여겨진 삼위일체에 대한 작은 차이가 신자들을 큰 잘못으로 이끌 수 있었다고 생각한바 삼위일체를 향한 당대 신학자들의 접근은 어느 문제보다도 치열하고 더 세밀했던 것이다.

필리오케 논쟁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어 동서교회 일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몇 차례의 진보적인 일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특히 1874년과 1875년 본(Bonn)에서 열린 회의에서 구 가톨릭 교회(Old Catholic Church) 와 일부 성공회(Anglican Church) 신학자들은 니카이아-콘스탄티누폴리스 신경에서 필리오케를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선언하였다. 현재 필리오케와 관련된 입장은 다음과 같이 셋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성령은 오직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발출되었다: 다수의 동방 정교회 입장. 특히 20세기 정교회 신학자인 블라디미르 로스키(Владимир Лоский)는 이중발출설은 정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2.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되었다: 다수의 로마 가톨릭 및 개신교 입장. 서방교회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삼위일체론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중발출 교리는 중세시대의 신학자 안셀무스(Anselmus)에 의해 정련되었고 지금까지 교회의 가르침으로 내려오고 있다.
  3. 성령은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해 발출되었다: 중도적인 입장으로 일부 정교회 신학자들과 구 가톨릭 교회, 성공회, 및 일부 개신교 신학자들의 입장이다. 최초로 이와 비슷한 의견을 개진한 사람은 다마스키노스(Δαμασκηνός)의 요안니스(Ιωάννης)였으며, 제7차 세계 공의회를 주도했던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타라시오스(Ταράσιος: 784-806)의 입장이기도 했다. 이중발출의 단일기원설은 종종 교회일치를 위한 타협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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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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