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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2-25

Religion 2-25

동서교회 대분열 25
History of Schism between the East and West Churches 25

동방 총대주교들의 편지
Encyclical of Eastern Patriarchs


목차

  1. 교황 비오 9세의 서신
  2. 동방 총대주교들의 답신
  3. 여전한 분투: 교황 레오 13세와 안티모스 7세의 주장
  4. 참고 사이트 및 출처

교황 비오 9세의 서신

세계사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나 가장 힘들고 우울했던 시기인 20세기 초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앞서 교황 비오 9세(Pius IX: 1846-18)의 이야기를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교황 비오 9세 치세 중에는 서방 교회의 수장인 로마 교황과 동방 교회의 (형식적) 수장인 콘스탄티누폴리스 세계총대주교간의 공식적인 서신 교환이 있었다. 서방 교회 측의 편지와 동방 교회 측의 답신을 발췌 번역한 것을 다른 설명 없이 그대로 읽는 것만으로도 양 교회 사이에 어떠한 신학적 간극이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오 9세는 교황좌 등극과 더불어 '인 수프레마 페트리 아포스톨리 세데(In suprema Petri apostoli sede, 지극히 높은 사도 베드로좌에)'라는 제목의 사도 서간(litterae apostolicae)을 동방 교회에 발송했다. 이 내용을 부분적으로 살펴 보자.

신령한 뜻에 따라 지극히 높은 사도 베드로좌에 맡겨진바, 그리고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온 교회를 향한 사명을 짊어진 우리는, 로마 주교좌가 성립된 때로부터 전례의 형식이 어떠하든간에 동방의 그리스도인들과 주변의 국가들에 쉬지 않고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 우리에게도 특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동방 지역은 하느님의 독생자가 나타나신 곳으로 인류를 위해 사람으로 나신 곳이며 또한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인류 구원의 사역을 일으키셨던 곳입니다. 또한 동방 지역은 빛과 평화의 복음이 우리 구세주 자신과 그의 제자들을 통해 처음으로 전파된 곳이며, 창건자 사도들의 명성을 통해 저명해진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진 곳이기도 합니다. 수 세기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룩함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걸출한 주교들과 순교자들,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들 동방 교인들로부터 교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중략) 그러나 또다른 동방의 영광은 수많은 주교들이 모였던 공의회의 기억이며 특별히 로마 사제의 주관하에 개최되었던 첫번째 세계공의회, 곧 보편된 믿음이 시대의 창조자들을 통해 보존되고 엄숙한 판단을 통해 확인된 회의가 그러합니다. 결과적으로 아주 최근까지 비록 슬프게도 수많은 동방 그리스도인들이 보편 교회의 연합을 이루기에는 성좌(聖座)와의 상통으로부터 멀어져있고, 동방 교회의 땅이 그리스도교가 아닌 이방 종교를 믿는 이방인들의 통치를 받고 있으나, 거룩한 은혜의 도음을 받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재앙과 고난 속에서도 올바른 믿음과 보편적인 통일성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결론을 주장해왔던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우리는 특히 보편된 진리의 고백 안에서 그들의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아무 것도 아끼지 않으셨던 총대주교들과 수좌주교들, 대주교들과 주교들을 치하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으로 그들의 고통은 광풍이 휘몰아치는 어려운 시기 이후 황량함 속에서도 수많은 무리들을 보편된 통일성으로 면면히 이어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중략) 당신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전할 좋은 기회가 있어 시돈(Sidon)의 대주교를 오스만 제국 궁정에 투르크 술탄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대사로 보냅니다... (중략) 우리가 명한 바에 따라 대주교는 콘스탄티누폴리스에서 만나게 될 존경하는 동방 교인들의 주교와 수좌주교들을 통해 당신들을 향한 우리의 깊은 사랑에 대해 더욱 확고하게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돌아오기 전에 시간과 상황이 허락한다면 우리를 대신하여 여러 전례들을 행하는 동방 지역의 보편 교회들을 순방할 것이며 그곳에서 만나게 될 많은 성직자들과 교인들에게 그들의 염려에 대한 위로의 말과 애정을 증거해 줄 것입니다.

대주교는 당신들의 보편 사역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는 증표로서 편지를 전달해 줄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 편지를 통해 우리들은 당신들과 당신들 땅에 존재하는 보편적 믿음이 이 편지의 내용을 가치있게 평가해주는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증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몇몇 문제들은 불운했던 과거의 결과물일 뿐일진대 동방 교인들 사이에서 성립된 교회 위계 질서 속에서 불분명하게 남아있거나 혹은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려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사도적 권위를 통해 모든 문제들이 처리되어 거룩한 법령과 교부들의 전통을 충실히 따라 정리될 수 있도록 기쁨으로 이 일에 헌신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전례가 비록 라틴 형식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지만 귀중하게 여기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입니다. 우리 선배들은 오랜 기원, 사도들과 교부들이 사용하고 저작을 남기는 데 사용했던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경건함을 성장시키고 신령한 성사를 향한 공경심을 강하게 하기에 적합한 장엄한 형식을 들어 항상 동방 교회의 전례를 높이 평가해 왔습니다.

동방 전례의 보존을 위해 로마 교황이 내린 다양한 칙령들과 헌장들은 사도좌가 동방 전례를 이처럼 귀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증거해주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선배이신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 1740-1758)의 사도 서간들과 더불어 1735년 7월 26일에 내린 칙령 '알라타이 순트(Allatae sunt)'를 보면 아실 것입니다. 서방 지역에 있는 동방 사제들은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양식을 따라 라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다양한 지역, 특별히 로마에는 동방 사제들을 위한 성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동방 전례와 연계된 수도원이 모자르지도 않고, 동방 교인들을 위해 지어진 집과 교육을 위한 기관이 부족하지도 않기에 젊은이들을 거룩한 예술과 학문으로 양육하여 교회 직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성직자로 훈련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1 최근 몇 해간 닥친 재난으로 인해 이러한 교육 기관들이 파괴되었으나 몇몇은 아직도 건재하며 번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신들을 향한 사도좌의 애정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베네딕토 14세의 초상화 2
(중략) 동방과 그 근경의 모든 땅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의 이름의 영광을 안고 사시는, 그러나 그럼에도 거룩한 로마 교회와 상통하지 않으시는 분들, 특히 이 지역의 교인들에 대한 영적 책임이 있으신 교회 지도자들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과거 연합을 통해 보편 교회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던 당신들의 교회의 상태를 상기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분열로 인해 어떤 결과를 보게 되었는지, 곧 서방 교회뿐 아니라 당신들 교회 사이에서 교리 혹은 교계 질서의 연합을 그르친 결과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된 사도적인 교회 안에서의 믿음을 고백했던 신경의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전 세계 각지에 연합한 채로 있는 수많은 교회에 권위를 가진 로마 교회와의 상통을 받아들이지 않은채로 당신들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분열 속에서 보편된 거룩한 사도적 교회의 일치를 확신할 수 있는지 궁구해 보십시오. 교회를 보편되게 하는 통합의 특성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성 요한이 쓴 복음서에 쓰여 있는 기도의 내용을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성부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3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게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4

따라서 인류 구원을 진행하신 분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음부의 세력이 뻗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세우신 하나인 교회의 기초를 사도들의 왕자인 베드로 위에 두셨으니 예수님은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고, 그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셔서 그가 다른 형제들에게 같은 믿음 안에서 힘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5 또한 예수님께서는 그의 양떼를 먹이라고 명하셨으니 이는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진짜 양떼로 이루어진 전체 교회를 다스리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특권은 베드로의 계승자인 로마의 주교들에게 비슷하게 속한 것인데, 베드로가 죽은 때로부터 종말의 시간까지 있어야 살아남아야 할 교회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그 교회의 기초를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받았던 폴리카르포스(Πολύκαρπος)의 제자인 성 이레나이우스(Irenaeus) ㅡ 동방 사람들이나 서방 사람들이나 공히 고대 그리스도교의 주요한 빛이라고 여겼던 리옹(Lyon)의 주교입니다. ㅡ 는 사도들로부터 전수받은 교의를 증명하기 위해 당시의 이단들을 공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교회들이 사도적인 기원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 불필요하고 단지 교리를 제멋대로 창조하는 사람들에 대적하기에는 로마 교회의 교의를 세우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모든 교회, 즉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신자들은 탁월한 권위로 말미암아 이 교회와 일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 안에는 그들을 통해 전해오는 사도적 전승이 항상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6라고 하였습니다.

성인 이레나이우스의 이콘 7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당신들 모두 당신들의 선조들에 의해 보존된 교의를 지키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방 지역의 고대 주교들과 그리스도인들, 곧 서방 교인들과 매한가지로 로마 교황의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주장한 그들의 수많은 기념비적인 사역들을 따르십시오. 고대 동방 사람들이 이 주제에 관해 (앞에서 인용한 이레나이우스의 증거 외에도) 우리에게 남겨 준 중요한 많은 문서들 중에서 우리는 알렉산드레이아의 주교인 아타나시오스 1세(Αθανάσιος Α': 328-339, 346-373)와 관련된 4세기의 일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아타나시오스는 그의 거룩한 인성 뿐 아니라 교리와 사목에 관한 열정으로도 명성이 높습니다. 그는 동방의 주교들로부터 부당하게 단죄받았는데 특히 투로스(τύρος)에서 열린 회의로 인해 교회에서 추방당했습니다.8 그는 부당한 이유로 주교조를 잃은 다른 동방 주교들과 매한가지로 로마로 오셨습니다. 로마의 주교 ㅡ 교황 율리오 1세 (Iulius I: 337-352) ㅡ 는 각 사람들의 진상을 다 조사하고나서 그들이 모두 니카이아 공의회에서 추인된 고백에 충실한 사람들이며 자신과 완벽히 일치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그들과의 상통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교좌의 위엄으로부터 모든 성직이 자신의 관할 하에 있음을 들어 모든 주교들을 해당 교구에 적법한 사람임을 승인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동방 주교들에게 서신을 보내어 이들 성직자들에 대한 바르지 못한 판단으로 인해 교회의 평화를 어지럽혔다고 질책하셨습니다. 또한 5세기 초에 아타나시오스만큼이나 저명했던 콘스탄티누폴리스의 주교 요안네스 크리소스토모스(Ιωάννης ο Χρυσοστομος)는 칼케돈(Χαλκηδών)에서 열린 한 공의회에서 주권자의 불공평으로 인해 단죄받았는데 서신과 사절단을 보냄으로써 우리 사도좌에 호소하셨고 교황 성 인노첸시오 1세(Innocentius I: 401-417)에 의해 잘못이 없음이 선언된 바 있습니다.9

451년에 있었던 칼케돈 공의회 역시 로마 교황의 권위에 대해서 당신들의 선조들이 경하했던 또다른 주요한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참석한 600명의 주교들 거의 대부분은 동방에서 온 주교들이었는데, 2번째 회기에 대교황 레오 1세 (Leo I: 440-461)의 서신이 낭독될 때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치길 "베드로가 레오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다"라고 하였습니다.10 그리고 회의는 교황의 특사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공의회 교부들은 성 레오에게 전달한 공의회 결과 문서에서 마치 머리가 팔다리를 움직이듯이 교황이 그들의 특사를 통해 모여 있던 주교들에게 명령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중략) 하지만 모든 이 증거들을 다 인용하기에는 너무나도 길어서 아주 중요한 진실만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심지어 사도 시대에까지 어떻게 코린토스(Κόρινθος)의 신자들이 교회 내에 생긴 불화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 지를 상기하는 것 정도로 그쳐야 겠습니다. 코린토스 사람들은 베드로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로마 교회의 주교가 된 성 클레멘스 1세 (Clemens I: 88-97)에게 호소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내 알력에 대한 주제로 글을 써 포르투나토스(φορτουνάτος)로 하여금 편지를 전달하게 하였습니다. 클레멘스는 사건의 진상을 면밀히 파악하신다음 클라우디우스 에페부스(Claudius Ephebus)와 발레리우스 비토(Valerius Vito)와 함께 사절단을 꾸려 포르투나투스(Fortunatus)에게 코린토스 사람들에게 전하는 거룩한 로마 교회의 제사장으로부터의 편지를 가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코린토스와 온 동방 지역의 사람들은 그것을 이후 수 세기동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낭독시켜왔습니다.11

교황 클레멘스의 초상화 12
우리는 당신들께 권고하노니 지체 없이 돌아와 베드로의 성좌와의 상통에 참여할 것을 간청합니다. 베드로의 성좌에는 참된 교회 혹은 그리스도의 기초가 놓여져 있는데 이는 당신들의 선조들의 전통으로나 다른 고대 교부들의 전통뿐 아니라 복음서의 내용과 우리가 당신께 인용해 드린 글에 나와있듯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 확립된 것입니다... (중략) 결과적으로 그 어떤 이유도 참된 교회로 돌아와 성좌와 상통하지 않는 것을 변명해줄 수 없습니다... (중략) 과중한 규정을 통해 당신들을 화나게 만들지 않고 우리는 자애로은 친절과 가장 부드러운 사랑으로서 당신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린 단지 엄격하게 필수적인 것들만을 요구하는 것이니 1) 돌이켜 연합하고; 2) 보편 교회가 주장하고 가르치는 바른 믿음을 고백하는 것에 일치할 것이며; 3) 전체 교회가 그러하듯이 지극히 높은 베드로좌와 상통하십시오. 당신들의 거룩한 전례에 대해서는 오직 보편된 믿음과 일치에 반하는 것들만이 수정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당신들의 고대 동방 전례들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덧붙여 성직에 관하여는 가톨릭 교회 연합으로 돌아오는 모든 동방 성직자들의 경우 우리 선조들이 종종 그러했던 것을 따라 그들의 서열과 권위를 동방 가톨릭 성직자들처럼 인정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가톨릭 믿음의 행위를 유지하고 전하게 할 것입니다… (중략)

오! 만일 우리에게 이와 같은 위로가 주어진다면, 동방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다시 세워진 가톨릭 연합을 보게 될 것이며 이 연합을 통하여 불경건한 자들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믿음이 더욱 강하여지는 새 바람이 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슴 절절한 기도와 탄원을 통해 은총의 하느님, 곧 우리를 구속하신 그의 독생자를 통해 내려주신 빛의 아버지께 구하기를 쉬지 않을 것이며 복되신 동정녀 곧 하느님의 어머니, 그리고 거룩한 사도들과 순교자들, 교부들의 보호가 그들의 설교와 피, 공덕과 저작들을 통하여 동방 세계를 통해 보존되고 널리 퍼진 그리스도의 참된 종교 위에 있기를 기원합니다. 당신들이 보편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과 우리의 형제와 아들들로 축복하기를 강렬히 열망하고 또 이 기쁨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될 날을 사모하면서 우리는 동방 세계에 전파된 보편 믿음을 향유하시는 모든 총대주교들과 수좌주교들, 대주교들, 주교들, 모든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에게 다시한 번 우리의 사랑과 유연함을 확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이들에게 사도적인 축복을 선사합니다.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에서 1848년 1월 6일, 재위 2년에. 교황 비오 9세.

이 서신은 분명히 동방 교회와의 일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사도 베드로의 후계를 자처하는 로마 교회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바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특히 일치를 위해 서방 교회에서도 어떤 것들을 양보하거나 포기하겠다 정도는 아니어도 타협의 여지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을 법했는데 이 서신 전체에는 그런 말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동방 교회 사람들이 잘못해서 보편 교회로부터 이탈했다는 뉘앙스가 진하게 풍겨나오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당신들 역사도 오래 되었고, 전례도 무척 아름답고,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는 것을 우리 선배들조차 다 알고 있소. 하지만 우리가 당신들의 상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품으로 돌아 오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니까 걱정할 필요없소.' 라는 것이었다. 동방 교회의 성직자들이 이 편지를 보고 로마의 주교를 괘씸하게 여기며 (자신들 입장에서 보기에) 참람한 주장에 분노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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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총대주교들의 답신

이에 동방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은 함께 모여 이 서신에 대한 답장을 준비하고 결국 회칙을 돌리게 되었다. 이 회칙은 서방 교회에 보내는 역대 동방 교회 서신들 중 가장 급이 높은 사람들이 연명한 아주 권위 있는 문서로 회칙에 서명한 사람들의 이름과 직위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회칙인지를 알 수 있다. 주교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세계총대주교 안티모스 6세의 사진 13

동방 교회 성직자들의 회칙은 비오 9세의 편지보다 훨씬 길며 총 23개의 내용으로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다. 전부 다 살펴보기에는 어렵지만 각 항목별로 주요한 주장을 발췌 번역해서 옮긴다.

1. 거룩하고 세계적이고 신령한 구원의 복음은 원래의 단순함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그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함 안에서 신봉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이를 위해 성부 하느님의 가슴으로부터 오신 바 되어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우리 구주로부터 그의 거룩한 사도들에게 계시된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눈과 귀로 이를 목격한 사도들이 명확한 음색을 내는 나팔처럼 태양 아래 모든 것들을 향해 외친 복음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소리는 모든 세상에 울려 퍼졌고 그들의 말은 세상 끝까지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지구 각 곳의 보편 교회의 많은 영광스런 교부들이 사도들의 목소리를 듣고 성직자 회의를 통해서나 혹은 개인적인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세상 어디에나 이 구원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인류 구원의 원수인 죄악의 왕자는 에덴 동산에서 그러했듯이 교활하게도 유익한 도움을 준다는 구실로 꾀어 사람으로 하여금 신의 명령을 거역한 범법자로 만들어 버렸으며 심지어 하느님의 교회인 영적 에덴에서조차 때때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정교 신앙의 교리에 해로운 이단의 약물을 섞었습니다. 그리하여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던 순진무구한 사람들에게 독약을 건네주어 들은 바를 더욱더 굳게 간직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아비로부터 들은 바를 청종치 않게 하였으니 이는 복음서에서 말한 바와 같으며 고대 박사들의 의견과 같은데, 곧 설파되고 쓰여진 주님의 말씀과 그가 세우신 교회가 보여주는 영원한 증거가 세상 영혼의 구원에 부족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마치 우리가 의복 패션을 바꾸듯이 자꾸 참신한 것을 개발해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여 결국 변조된 복음 교의까지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이리하여 수많은 이단의 괴수들이 일어나게 되어 심지어 초대 교회 시절서부터 보편 교회는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고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령의 칼을 받아 쥐고서 싸울 것을 명령 받았습니다.14(하략)

3. (상략) 절망적인 사고와 사람의 기교는 일곱 세계 공의회의 저주의 번개 아래 쓰러졌으며 소멸될 것이로되 그 가르침은 천년을 이어 갈 것이니 그것은 보편된 사도적인 교회의 정교 신앙은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해 영원 무궁토록 견뎌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틀림 없이 하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에 의거한 확증입니다.15(하략)

4. 세상 많은 곳에 널리 퍼진 이단 세력들 중에서 우리 주님을 곤경에 빠뜨린 것은 과거에는 아레이오스(Άρειος)주의였으나 현재는 교황 제도입니다. 이것 역시 아레이오스주의가 그러했듯이 소멸할 것이로되 비록 지금은 번영하고 있지만 견디지 못하고 결국 쓰러져 사라지고 말 것이며 천국으로부터 큰 소리가 있어 가로되 '쫓겨났다'라고 할 것입니다.16

5.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하셨다."라고 하는 새로운 교리는 우리 주님께서 성령이 아버지께로부터 오신다고 선포하신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며 일곱 세계 공의회에 의해 증거된 보편 교회의 신앙 고백과도 위배됩니다. (15개의 하위 조항 생략)

6. 많은 교리 창조자들을 하나로 연합시킨 이 이단 사상은 7세기 중엽에 처음 은밀하게 나타나 다양한 모양새로 가장하여 유럽 각 지역에 고대 정교 신앙에 앞선 믿음이 될 때까지 4~5 세기 동안 부주의한 사목자들과 권력자들의 동조를 통해 퍼져나갔습니다. 거룩한 교부들, 곧 위대한 아타나시오스와 위대한 바실레이오스(Βασίλειος)와 더불어 일곱 세계 공의회의 때까지 그들이 나타내었던 동감과 친교가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의 교의를 훼손되지 않은 채로 보존해왔으나 서서히 퍼져나간 이 사상은 세상을 통해 정교 신앙을 부르짖었던 스페인의 정교회 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정교회까지도 이단적인 것으로 물들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마의 선망을 따라 성령에 관한 바르고 참된 신앙을 준수하려는 교리 창조자들과 주님 말씀대로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자들의 신성모독과 성사를 존경하는 다른 이들, 곧 세상을 구하는 세례와 성찬례, 그리고 성직자들을 존경하는 자들이 굉장하게 불어나 옛 로마에까지 확산되었고 교회 내에서의 특별한 구별을 마치 훈장과 표처럼 여김에 따라 교황 제도를 불쑥 내놓게 되었습다. 소위 교황이라는 이름을 내건 로마의 주교들 몇몇 은 교리의 창조를 힐난하고 세상을 향해 비난하는 문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레오 3세(Leo III)는 은판 위에 새김으로써,17 요한 8세(Ioannes VIII: 872-882)는 8차 세계 공의회 때 거룩한 포티오스 1세(Φώτιος Α': 858-867, 877-886)에게 편지를 보냄으로써 그러했습니다.18 그러나 그들의 후계인 로마의 교황 대부분은 반동적인 주교회의 특권을 부여받아 하느님의 교회를 압제하였고, 세속적인 이권을 구하였으며, 보편 교회 안의 군주제를 마음에 품고서 성령의 선물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또한 마음대로 고대의 예배 형태를 바꾸었고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교회의 통치 구조로부터 자신들의 독자적인 구조를 분리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은 무법한 계획대로 다른 네 총대주교좌를 정교 신앙으로부터 배반하게끔 하려는 수고를 멈추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가톨릭 교회가 사람의 변덕과 명령에 복종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7. (상략) 그러나 우리는 오류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 끈질긴 서방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숭고하신 교부 바실레이오스의 진리의 말씀은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서방의 주교들, 특히 교황에 대하여 사모사타(Σαμόσατα)의 에우세비오스(Εὐσέβιος)에게 말씀하신 바 "그들은 진리를 모를 뿐더러 배우려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진리를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적하기에 바쁠 뿐 아니라 이단적인 생각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따라서 한두번 우정어린 충고 이후에는 그들을 떨쳐 버려 피하고 그저 타락한 생각에 몰두하도록 내버려둔 것입니다.19 우리 교부 그레고리오스(Γρηγόριος)는 아레이오스주의를 따르는 자들에 대해서 "하느님과 멀어져 있는 것에 대하여는 전쟁이 평화보다 낫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영적인 상통이 없었던 것이며 자기들 손으로 자신들과 정교 신앙 사이에 깊은 구덩이를 팠던 것입니다.

8. 그러나 교황 제도는 이런 사항에 대해서 하느님의 평화로운 교회를 쉼없이 골치 아프게 만들어온 것 뿐 아니라 타락한 마음을 가진 소위 선교사들을 세계 각지로 보내어 온 땅과 바다로 하여금 개종을 시도했으니 곧 정교 신앙을 가진 자들을 속이고, 우리 주님의 교의를 더럽히고, 거룩한 신경에 문구를 첨가함으로써 불순하게 하고,20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례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잔의 성찬례를 무효하게 만들었고,21 중세의 교사들과 로마의 주교들은 권력의 욕망을 좇아 수많은 괴물같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황주의자들은 오늘날까지 쉬지도 않고 습성을 좇아 교부들의 바른 신앙으로부터 이탈한 자신들에게 매일 살아있는 책망을 베푸는 정교 신앙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로 서방 세계에 관영한 이단 사상을 공박했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하략)

9. 근자의 교황들은 개인적인 공격은 삼가고 대신 선교사들만이 이러한 행동을 벌여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1847년에 교황이 되었다고 선언한 로마의 주교 비오 9세는 올해 1월 6일에 동방 교인들에게 발송하는 12장으로 구성된 그리스어로 쓰여진 회칙을 발행하였고, 그의 사절들은 이 문서를 마치 전염병처럼 우리 정교 신앙 공동체에 퍼뜨렸습니다. 그는 회칙을 통해 다른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옮겨온 자들이 교황 제도를 옹호했고 그를 존경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주장을 정교 신앙 공동체에 확대하였습니다. 우리의 거룩한 교부들의 이름을 인용하면서 그는 공공연히 교부들과 그들의 계승자 및 선조들이 마치 "교황은 의심될 수 없는 보편 교회의 중재자이기 때문에 교황의 명령과 칙서에 어떠한 의문도 없이 순복했다"라는 식으로 기술하여 그들을 중상모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을 우리 교부들의 모범으로 보이신 것을 따르지 않은 불충한 자들로, 또한 거룩한 믿음과 영적인 아들들의 영혼 구원에 부주의한 자들로 비방했습니다. 자랑하는 대로 성 베드로의 주교좌에 앉아서 그리스도의 보편 교회를 자기 소유로 탈취해놓고서는 온갖 모순을 기반으로 만든 신학적 가르침을 택해서 "참된 교회와 내 거룩한 사도좌와의 상통으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식으로 순진한 사람들을 정교 신앙에서 배교하게끔 속이고 있습니다.

10.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지혜에 따라 경건하게 양육되고 교육받은 그리스도의 형제 및 자녀들 각각은 현 로마 주교의 말을 과연 분열을 일으켰던 그의 선배들의 말과 행동들과 마찬가지로 평화와 유익의 말이 아닌 스스로를 크고 훌륭하게 보이게 하려는 속임수와 사기의 말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교 신앙을 믿는 자들은 결코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22

11. (상략) 교황은 자신의 주교좌를 사도들의 고백을 기초로 하여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도좌로부터 자신의 위엄을 확립하고 그 권위로부터 자신의 고백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로마의 주교좌는 단지 전통에 의해 성 베드로의 주교좌로 존중받아왔던 것일 뿐 이것은 성서에 쓰여있는 바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측면에서는 안티오키아의 교회가 더욱 대단한 것인데 위대한 바실레이오스가 증거하기를 안티오키아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교회"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2차 세계 공의회에서는 서방 공의회[여기에는 고귀하고 신심 깊으신 분들 곧 다마소 1세(Damasus I: 366-384),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브리토(Britto),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등이 참석했습니다.]에 말하길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처음으로 쓰였던, 가장 오래되고 진실로 사도적인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라고 표현했습니다.23 그러니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교좌로서 축복받은 안티오키아의 사도적인 교회에 대한 성서와 공의회의 선포가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복되신 베드로 역시 복음서의 진리 앞에서 판단받았으며 성서가 말하는 바대로 잘못을 저질렀고 제대로 서지도 못했습니다. 단지 그렇게 크게 보이는 베드로의 주교좌를 차지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랑스러워하는 자들에 대해 우리가 무슨 의견을 가지겠습니까? (중략) 그리하여 교황 성하께서도 빛과 서방의 선생들처럼 존경하는 우리의 거룩한 교부들께서는 이들을 우리에게 속한 것이라 간주하시고 우리에게 권고하시고 가르치시기를 거룩한 교좌가 정교 신앙을 판단하게 하지 말고 오직 성서와 공의회의 법령들, 그리고 설교해 온 신앙 고백과 연속적인 가르침의 정교 신앙성을 근거로 하여 교좌와 교좌에 앉은 자들을 판단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교부들께서는 로마의 교황이었던 호노리오 1세(Honorius: 625-638)와 알렉산드리아의 교황 디오스코로스(Διόσκουρος Α': 444-451), 콘스탄티누폴리스의 총대주교였던 마케도니오스 1세(Μακεδόνιος Α΄: 342-346, 351-360) 와 네스토리오스(Νεστόριος: 428-431),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였던 페트로스 2세(Πέτρος Β΄: 471-488) 등 그밖의 주교들을 판단하고 단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24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진대,25 어째서 거룩한 교좌에는 교리의 창조와 이단이 들어서지 않겠습니까? (하략)

12. 교황 성하는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사탄이 그의 제자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했기 때문에 기도하신 것이지만 특별히 베드로에게 기도하신 것은 주로 그가 우쭐대는 말을 늘어놓고 남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을 허용하는 것은 다만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나약한 것입니다. (중략) 교황은 이단적인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여 이에 동조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교사와 교부들로부터 정식으로 인준받았던 가르침들에 반하는 행동들을 취했으며 이를 통해 우리 모두의 선생되시는 분으로부터 받은 형재애의 봉인을 해제하고 인장을 깨뜨렸던 것입니다. 이 형제애는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의 영혼 가운데, 특히 지도자들 사이에서 권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략) 성하께서는 연합이 지체 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감히 그렇게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서두름 없이 성숙한 숙고를 말할 뿐이고, 만일 필요하다면 이 시대에 서방 각 나라에서 잘 알려진 더 현명하고 신실하시며 진리를 사랑하는 신중한 주교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박사들에 하나님의 선한 섭리에 따라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13. (상략)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고대 로마 교회가 정교 신앙의 표본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찬사로서 역사학자 소조메노스(Σωζομενός)가 쓴 문구를 특별히 덧붙이려고 합니다. 교황 성하께서 간과하셨나본데 그는 로마 교회가 한 때 정교 신앙을 보호할 수 있게 한 방법을 매우 높이 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서방에 있는 교회들은 어디에서나 순수한 교부들의 교리의 지침을 따르고 있어 이러한 일에 대해서 논쟁과 불화로부터 해방되었다." 교부들의 교리를 충실히 따라 성서와 공의회의 법칙대로 걸어간다면, 교부들이나 우리들이나 교계 구조에 주어지는 정식 특권을 부정하지 않을진대, 현재 니카이아와 콘스탄티누폴리스에서 열린 교부들의 모임에서 결정된 복되신 삼위일체에 관한 교의를 서방 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른 다섯 공의회들은 조금이라도 신경의 내용을 불순한 자들은 마치 그것들을 파괴한 것처럼 영원한 저주가 있으리라고 고백하고 결의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세례의 사도적인 법칙을 찾아볼 수도 없고 성스러운 물건들의 혼령을 축복할 때 쓰는 기원문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서방 교회에서는 성찬례를 위한 컵과 신령한 음료를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데다가 (이 어찌 신성모독적입니까!) 언제나 가톨릭적 믿음과 정교 신앙의 분명한 표본이셨던 우리 교부들 뿐만 아니라 서방의 고대 교부들까지도 전혀 모를 수많은 것들을 찾아볼 수 있으니 이것은 모두 교황 성하께서 진실을 왜곡하고 가르치신 결과입니다… (중략) 도대체 누가 사도좌의 위엄에 그렇게 용감하고 자신감이 넘친단 말인지, 만일 우리의 교부되시는 성 이레나이우스께서 다시 살아 돌아오신다면 한 때 교부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다고 하여 칭찬하셨던 서방 교회가 그리스도교의 필수적이고도 보편적인 고대 원시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보시고 나서 새롭게 만들어진 교리들과 스스로 모순 없다고 하는 그 모든 서방 교회의 헌장들에 대해 가장 먼저 반대하실 것입니다… (중략) 교황 성하께서 로마 교회의 수위권에 대한 증거로 인용하셨던 성 이레나이우스는 사실 성 베드로가 서품을 받은 것도 아닌바 로마 교회가 주인인 것도 아니고 항소할 만한 위치인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셨으며 로마 교회의 위엄은 보편 교회의 형제들 중에서 가지는 특권 정도라는 것과 로마 도시 자체가 가지는 훌륭함과 특권으로 말미암아 교황에게 영예가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4차 세계 공의회에서는 3차 세계 공의회 때 적법하게 세워진 교계 서열 ㅡ 법령들에 따르면 서방 교회가 교황의 치리를 받는 것은 관습일 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ㅡ 을 보존하여 선언하기를 "그 도시가 황제의 도시이기 때문에 교부들이 특혜를 베푼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선언에는 교황이 성 베드로의 사도성을 특별히 독점한다는 표현이 없으며 로마 주교가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는 것과 범 세계적인 사목에 대한 언급 역시 없습니다.26 그런 대단한 특권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것은 로마 교황의 수위권이라는 것의 근거가 "내 양을 먹이라" 혹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단지 오랜 관습일 뿐이며 로마라는 도시가 제국의 도시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님으로부터도 또 교부들로부터 온 것이 아닐진대 교황 성하를 향한 이 대단한 모순이 교황의 특혜에 대한 다른 생각들을 지지해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14. 또한 성하께서는 코린토스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면서 분열된 그들이 로마의 교황이었던 클레멘스에게 글을 써 문제에 대한 대답을 구했고, 교황의 결정을 교회에서 늘 낭독시켰다고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일에 관한 이야기가 하느님의 집 안에서 가지는 교황의 권위를 긍정시키기에는 아무래도 미약합니다. 로마는 제국 한 주(州)의 중심 도시이자 주요 도시이며 황제가 사는 곳입니다. 따라서 코린토스 사람들은 역사상 늘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이라면 늘 로마에서 얻어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지금도 그렇듯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는 항상 싸우는 편의 반대편은 로마 쪽으로 붙곤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들은 생각치 못했던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에게 문의했는데 이것은 콘스탄티누폴리스가 제국의 중심 교좌이기 때문이며 공의회에서 베풀어지는 특권 때문이었습니다.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을 형제 교회들의 협조를 통해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방편이지만 만일 그렇지 못했던 경우에는 이미 확립된 시스템을 통해 그 지방 전역에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고백의 형제애적 일치는 하느님의 교회의 노예 상태로서의 순종에 의해 구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언급하셨던 로마 주교 율리오와 인노첸시오가 성 아타나시오와 성 요안네스 크리소스토모스에게 보였던 형제애 및 특권의 사용이 바로 우리의 대답이 될 수 있게습니다만 그들의 계승자들은 거룩한 신경을 불순하게 함으로써 보상받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중략) 코린토스 사람들의 경우 당시 총대주교좌가 세 개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이며 로마는 그 중에서 코린토스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구하기 가장 적절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특별한 것이 아니므로 자유로운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교황이 가지는 독재 권력을 증명해 주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15.하지만 교황 성하께서는 이제 4차 세계 공의회에서 교황 레오 1세의 서신이 낭독될 때 주교들이 "베드로께서 레오를 통해 말씀하신다!" 라고 외쳤던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하지만 교황께서는 성직자들이 어떤 조사 이후에야 그렇게 교황 레오를 외치며 찬미했다는 것을 간과하셔는 안됩니다. 아무래도 교황께서는 간결하게 하다보니 아주 중요한 점, 곧 세계 공의회가 교황 뿐 아니라 교황이 자체적으로 주최한 회의들보다도 훨씬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잊으셨나 봅니다만, 이제 저희가 거기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드릴 것입니다. 칼케돈에는 600명 이상의 성직자들이 모였고 200여명의 가장 현명한 성직자들이 위촉되어 레오 서신의 글과 내용을 조사하였습니다. 조사만 한 것이 아니고 그 글이 정교 신앙에 합당한 것인지 위배되는 것인지를 조사해서 판단하고 자신의 서명을 남겼습니다. 200명 위원의 판단과 조사는 공의회 중 4번째 회기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는데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났습니다. 시리아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 막시모스(Μάξιμος: 449-455)는 "제국의 도시 거룩한 로마 대주교 레오의 서신은 니카이아의 318명이 내린 결론, 새로운 로마인 콘스탄티누폴리스에서 150명이 내린 결론, 그리고 거룩한 주교 키릴로스가 주도하여 에페소스에서 추인된 신앙 고백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동의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키로스(Κύρος)의 주교 테오도레토스(Θεοδώρητος)는 "거룩한 대주교 우리 주 레오의 서신은 거룩하고 복된 성직자들에 의해 니카이아에서 정립된 신앙 고백과, 150명에 의해 콘스탄티누폴리스에서 추인된 믿음의 상징과, 그리고 복된 키릴로스의 서신과도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것을 받아들이며 말씀하신 서신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서신은 동일합니다.", "서신은 일치합니다.", "서신은 맞는 말입니다."와 같은 평가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렇듯 과거 공의회의 내용과 비교하는 매우 심도 있는 조사가 있어 그 의미의 옳음이 분명히 판단되고 나서야 그들이 그렇게 주저하지 않고 교황을 우쭐거리게 한 그런 탄성을 내지른 것이지 그것이 단순히 교황의 편지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만일 교황께서 공의회에 참석하신 우리들의 선임자와 성직자들이 칭찬하셨던 전임 교황의 경건을 자랑하는 것 대신 거룩한 일곱 세계 공의회와 일치되는 말씀을 하셨더라면 아마도 교황 당신의 선함을 선포하심과 동시에 당신의 정교 신앙으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영광 받았을텐데 말입니다. 따라서 교황께서는 부디 알아주시기를 심지어 지금이라도 200명의 성직자들이 조사를 통해 과거 공의회의 내용과 일치한다고 밝힐 수 있을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죄인같은 우리들조차 오늘날 교황을 가리켜 단지 "베드로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라고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영예롭게 "보편 교회의 눈물을 닦아주신 저 거룩한 손에 입맞출 지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16. (상략) 하지만 우리는 마치 성 바실레이오스가 밀라노(Milano)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에게 "고대 성직자들의 발자취를 다시 따릅시다."라고 얘기했던 것과 같은 그런 위로의 말씀을 교황께서 해 주시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방 교인들에게 전해진 교황의 회칙을 읽었을 때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으며 교황 성하에 대한 깊은 영혼의 슬픔을 느꼈습니다… (중략) 교황과 그 가신들이 심지어 주님의 만찬에까지 새로운 교리의 독을 퍼뜨리시면서 "분열된 이후로 우리 안에 기어들어 온 그 모든 것들을 제하여 버립시다"라고 말씀하시니 교황 성하께서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교황께서 정교회에서 불거진 문제라고 당연하게 인식하시는 그것이 바로 교황 제도의 성립 이후로 로마 교회에서 바로 불거진 것입니다. 곧 모든 성사를 갈아치워버리고, 학구적인 기묘함으로 교리를 더럽히고, 전례와 성사와 교의와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것들에 의존하심이니 그럼에도 과연 우리의 '복된 옛날'을 존경하신다고 거들먹거리면서 이 모든 것들을 사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먹고 사는 사도적이고 보편적인 음식에 대한 무지는 결국 또다른 훈계조의 선언을 낳았으니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신바 "당신들 사이에서는 교의와 성스러운 의무의 일치가 불가능합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모순적으로 당신들 집에서나 겪는 그 불운을 우리 탓으로 돌린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 교황 레오 9세(Leo IX: 1002-4054)가 복된 미하일 1세 (Μιχαήλ Α΄: 1043-1059)에게 서신을 보내어 자신의 영예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한 채 보편 교회의 신경을 변조한 것은 그리스인이라고 헐뜯은 것처럼 말입니다.27 만일 성하께서 교회의 고고학과 역사를 기억하시고 교부들의 교의와 프랑스 및 스페인의 전통적인 전례, 그리고 고대 로마 교회의 성사를 떠올리신다면 교황 제도가 서방 세계에 가져다 준 얼마나 많은 괴수의 딸들이 교회 안에 도사리고 있는지 크게 놀라실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들 정교회는 비록 권력과 성스러운 의무들은 없다할지라도 더렵혀지지 않은 신부처럼 보편 교회의 속성을 모두 보존하고 있으니 일곱 공의회와 성령의 일곱 봉인으로 보존된 신앙고백의 일치와 진리에 대한 복종을 통해 공통된 우리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애정이라는 단일한 끈을 통해 묶여 있습니다. 또한 서방 교회가 우리 교부들이 가졌던 불변의 보편 정교 신앙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새로운 교리들을 소개한 현대의 교황주의적 교의와 성사들이 모두 인간의 창작물로서 배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중략) 수위권에 관해서는 우리는 따로 논설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나 다만 바실레이오스의 몇 마디와 결국 동일할 것일지니 바로 "나는 그들의 머리가 되시는 그 분(=주님)께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

17. (상략) 고백되어야 할 것은 비록 비오 9세가 지혜와 경건함으로 탁월한 사람이며 가톨릭 교회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교를 연합하려고 하는 열정이 가득한 사람일지라도 이러한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한다면 결국은 어려움과 고난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배교자의 교회로부터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된 사도적 교회로 돌이키려는 열망을 가지게 되어 우리 모두가 교회의 각 지체가 될 때까지 그들로부터 나오는 모든 조언과 교부들로부터 전수된 우리의 순수한 신앙 고백을 흩뜨리려는 공식적인 권면들은 의심스러운 것들과 피해야 할 것들로서, 그리고 불경건한 것과 영혼을 파괴시킬 만한 것들로서 교회 회의를 통해 모두 단죄받습니다. 그리고 가장 첫머리에 우리는 로마의 주교인 교황 비오 9세가 보낸 '동방 교인들에 보내는 회칙'을 둘 것이며 그렇게 하여 모든 조언과 권면이 보편 교회 안에 있어야 함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18. (상략) 형제들이여, 부디 와서 우리의 목을 부여 잡고 입맞추며 우리로 하여금 눈물로써 교황이 우리를 훈계하는 것을 듣고, 강한 확신을 가지고 교황을 위로하게 하여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에서 우리를 끊어내지 않게 하고, 그 누구도 우리를 복음의 교의로부터 잘못 인도하지 않게 하고, 우리의 앞선 성직자들이 걸어갔던 안전한 신앙의 길로부터 미혹되지 않게 하소서. 어떤 누구라도 그들을 속일 수 없었으며 그분들은 열정을 다하여 이따끔씩 연합의 목적을 위해 분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의 선생으로부터 "잘 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런 종이다"라는 말을 듣고 우리 믿음의 목적인 성령께서 우리에게 사목하도록 맡기신 수많은 사람들과 우리 영혼의 구원을 이루도록 합시다.

19. 당신을 위해 우리가 인용한, 그리고 세상 어디에나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정교 신앙 공동체에게 전하는 사도적이 명령과 권면의 말씀은 사제들과 수도원장들, 부제들과 수도사들, 즉 모든 성직자들과 성도들에게 향한 것이며 지배자나 피지배자,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 부모들이나 자식들, 교사들이나 학생,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 주인이나 종 모두에게 전하는 것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각자에게 조언해 주기 위한 것으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라고 권면한 것입니다.28

20. 형제들이여,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사람의 것도 아니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곧 거룩한 사도들이 설파했던 것으로 거룩한 세계 공의회가 결정하고 위대하고 현명하신 세상의 교사들이 다음 세대로 전수해 주신, 순교자들이 피를 흘리면서까지 증거하신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신앙 고백은 오래 전에 온전한 형태로 봉인되어 있었던 것으로 가감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변개 또한 불가능합니다. 그리하여 누군가가 감히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거나 조언하거나 혹은 생각만 하더라도 그것은 성서와 세계 공의회를 부정함으로써 성령을 모독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믿음을 부정한 것이며 영원한 저주에 빠지는 것에 동의한 것입니다… (중략) 따라서 이단 사상에서든 혹은 분열에 의한 것이든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이미 받은 말씀 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다면 시편 말씀에 쓰여 있듯 교황이든, 총대주교든, 성직자든, 혹은 평신도든 어느 누구라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하략)

21. 사도들이 그들의 계승자를 임명함으로써 시작된 우리 교부들과 선임자들의 계승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하나의 끊어지지 않은 사슬을 만들었고 , 손에 손을 맞잡고서 그리스도가 문이 되시는 신령한 구역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은 모든 정교회 성도들이 양육되는 신비로운 에덴 동산의 비옥한 목초지이며 이것은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도하고 황무한 곳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오류가 없고 진정한 성서의 유산을 가지고 있으니 곧 진실되고 완전한 구약성서 판본과 신령한 기원 그 자체의 신약성서입니다.29 거룩한 성사, 특히 우리의 성체성혈성사는 참으로 영광스럽고 가슴 뛰는 전례이며 사도들로부터 전수받은 것입니다.30 어떤 나라도, 어떤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더라도 야고보, 바실레이오스, 크리소스토모스의 전례 앞에서 자신들의 전례를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위엄에 가득 찬 세계 공의회는 곧 우리들의 지혜의 집을 떠받치는 일곱 기둥이며 우리 안에 서 있습니다. 견해 측면에서나 교계 구조 측면에서나 제의의 단순성 측면에서나 주요 사목자들과 명예로운 장로들, 그리고 수도회 모두가 초대 그리스도교 본래의 순수한 위엄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중략) 오늘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기독교 세계 모두는 ㅡ 서방 세계나 로마를 빼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로마의 초기 교황들의 행적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ㅡ 우리의 거룩한 교부들과 성직자들에 따라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양떼를 치는 목자들 가운데에서 사악한 궤변과 이단적인 사상에 물들어 슬프게도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이 열방의 정교 신앙을 더럽히고 말았으니, 오호라! 이것은 진실된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며 성 바울이 예측했던 것입니다.

22.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들의 영적인 자녀들이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정교 신앙에, 그리고 그분의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된 사도적 교회에 부어 주신 호의와 은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중략) 신랑이 신부를 죄의 멍에에서 구원하고 자신을 위한 영원한 신부로 치장하실 때 그의 거짓 없는 손으로 감싼 신부의 예복 위로 우리 손을 함께 맞잡읍시다… (하략)

23. 이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우리의 목자 되신,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그리고 졸지도 자지도 않으시는 평화의 하느님이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평화와 기쁨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1848년 5월. 인딕티온(Ινδικτιών) 6번째 해.31

동방 주교들의 답신에는 세계 공의회와 교부, 정교 신앙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순환 논리를 내세우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동방 교회의 이러한 입장은 과거 종교 개혁가들의 질문에 답한 총대주교 예레미아스 2세(Ιερεμίας Β΄: 1572-1579, 1580-1584, 1587-1595)의 편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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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분투: 교황 레오 13세와 안티모스 7세의 주장

결국 활력에 넘치던 비오 9세가 시작한 동서 교회의 대화는 단번에 끝장나고 말았다. 동서 교회는 수백년동안 이어진 수사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반복했는데 이번에도 서방 교회는 로마 교황의 수위권을, 동방 교회는 세계 공의회와 교부의 가르침을 들어 상대방에게 과오를 씻고 상통의 길로 들어서라고 훈계하고 있었다.

당시 동방 교회는 이전보다 사정이 나아졌다. 오스만 제국의 힘이 약화되면서 1821년 그리스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결국 서구 열강들과 러시아의 간섭을 통해 그리스 국민들은 1832년 자신들만의 독립된 왕국의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세르비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부여 받았다. 이들 지역에는 자발적으로 국가 정교회가 생겨나게 되었고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는 세르비아와 그리스에 자치권을 허용하였다. 비록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좌의 입지는 좁아지고 해당 지역에 대한 권한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어찌되었던 동방의 기독교는 더 이상 박해받지 않을 수 있는 통치 체제 하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달라진 대내외 상황 속에서 당시 동방 교회의 주교들이 서신 교환을 통해 서방 세계에 대한 강력한 어조를 담은 답신을 보낼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단, 이 문서에서 동방 정교회 최대 세력인 러시아 정교회의 참여가 없었다는 사실은 몇 가지를 시사해 주는데 첫번째로 애초에 비오 9세의 편지에는 러시아에 관한 표현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러시아 정교회를 그렇게 중시하지 않았거나 혹은 흔히 생각하는 동방 교회의 범주 안에 넣지 않았다는 점, 두번째로 동방 교회들 고대 총대주교좌에 들어가지 않는 러시아 교회는 서열이 낮은 교회로 인식했다는 점, 세번째로 표트르 1세(Пётр I)의 개혁으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모스크바의 신성종무원(Святейший Правительствующий Синод)의 당시 대외 종교적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문서를 받아든 비오 9세의 반응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분명히 불쾌하고 씁쓸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추가적인 조치를 따로 취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볼 때 교황으로서의 체면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동방 교회와 협력하는 것은 포기한 듯 하다. 이후 비오 9세는 31편에서 소개한 것처럼 원죄 없는 성모 마리아의 잉태 교리와 교황 무류설을 선포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전통을 더욱 폭넓고 새롭게 계승함과 동시에 동방 교회와의 간극을 더욱 크게 벌리게 되었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시도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교황 레오 13세(Leo XIII: 1878-1903)는 1894년에 회칙 '프라이클라라 그라툴라치오니스 푸블리카이(Praeclara Gratulationis Publicae)'을 내린다. 전임 비오 9세의 노력을 이어받아 동방 교회를 존중하는 듯한, 그러나 동시에 로마 주교의 수위권을 재천명하는 서한을 보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세상의 구원이 시작된 동방 지역에 애정어린 눈길을 보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뜨거운 이 열망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믿음과 영광스런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동방 교회가 자신들이 버려두었던 무리 가운데로 돌아오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바라고 희망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두 교회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그리고 몇몇 사항을 제외하고는 보편된 믿음을 간직한 채로 서로에게 전적으로 일치되어 있음을, 그리고 동방의 가르침과 전례, 그리고 풍습으로부터 우리가 빌려온 증거와 이유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더욱 희망합니다.

가장 큰 논제는 로마 사제의 수위권입니다. 하지만 과거 수위권의 사례들을 살펴 보시면 과거 교부들도 그것을 옹호했던 것으로 오랜 전통이 증거하는 바를 살펴보면 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게 하신 말씀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을 보시면 이것은 누가 봐도 로마의 교황을 더러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초기 로마 주교는 대부분 동방에서 오신 분들로 선택되었는데 그 중에는 아나클레토(Anacletus, 76-88), 에바리스토(Evaristus, 97-105), 아니체토(Anicetus, 155-166),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 175-189), 조시모(Zosimus, 417-418), 아가토(678-681)가 있습니다.32 그리고 이분들 중 많은 분들이 지혜와 거룩함으로 교회를 치리하신 뒤에 순교하심으로써 그들의 사목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불행한 분열이 언제, 왜, 무엇으로 인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께서 묶으셨던 것을 분리하려고 하기 전에 사도좌의 이름은 온 기독교 세계 열방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으니 곧 동방과 서방이 매한가지였으며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로마의 사제이자 사도 베드로의 적법한 후계자요, 지상에 그리스도의 대리자에게 복종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 불화의 시작을 논한다면 포티오스 1세(Φώτιος Α': 858-867, 877-886)가 자신과 관련된 일로 인해 로마로 자신들의 변호인들을 보내기를 조심스러워했던 것에 비해 교황 니콜라오 1세(Nicholaus I: 858-867)는 어떠한 작은 반대조차 없이 그의 특사를 영원한 도시로부터 콘스탄티누폴리스로 보내 "총대주교 이그나티오스의 사건을 성심껏 상세히 조사하고 온전하고 명확한 보고서를 사도좌로 가져오도록" 하였습니다.33 이 모든 협상의 역사가 결국 로마 교좌의 수위권의 명백한 확증이 되었고 또한 분열의 시작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리옹(Lyons)에서 열린 두 번째 공의회와 피렌체(Firenze)에서 열린 공의회를 통해 라틴인들과 그리스인들이 만장일치로 로마 교황의 지상권을 교의로서 동의하고 선언하였습니다.34

(중략)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은 보편 교회로부터 분리된 그리스 교회 및 동방 전례를 행하는 교회들 당신들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진중하게 사랑을 담아 당신들의 선조에게 말씀하셨던 빗사리온(Βησσαρίων)의 말을 당신들 각자가 명상해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35 그는 말씀하시길 "우리를 일치시키시고 하나로 묶으셨으며 천국에서 이 땅에 내려 오시어 생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왜 형제들로부터 분리되었냐고 물으신다면 어떤 답변을 하느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후대 사람들의 눈에 우리들이 방어하는 행동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하략)"
(좌) 교황 레오 13세36 및 (우) 세계총대주교 안티모스 7세의 사진37

이에 당시 세계총대주교였던 안티모스 7세(Ανθιμος Ζ': 1895-1897)와 콘스탄티누폴리스 관구에 속해있던 주교들은 연명하여 이듬해인 1895년 8월에 이를 반박하는 답신을 보낸다. 총 25장에 달하는 훨씬 긴 답신의 내용은 과거 안티모스 6세의 답신과 거의 비슷해서 다시 번역하여 쓰기가 민망할 정도이지만 중요한 일부 내용과 새로운 주장만을 발췌하면 다음고 같다.

2. 그의 주교좌 희년을 맞이하여 1894년 6월에 모든 지도자들과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로마의 교황 레오 13세는 우리 정교회가 교황좌와 연합할 것을 촉구하고 있고 그러한 일치는 자신을 수위권을 가진 사제로서 모든 세계 교회의 가장 높은 영적이고도 현세적인 통치자로서 지상의 그리스도의 유일한 대표이자 각양 은혜를 내리는 자로서 인정할 때에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5. 하지만 어찌되었든 교회의 일치를 향한 염원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공통적인 원칙과 기반이 먼저 정해져야 할텐데, 복음의 가르침과 일곱 세계 공의회 말고는 안전한 원칙과 기반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략)

13. 일곱 세계 공의회의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되고 사도적인 교회는 독생자이자 하느님의 말씀이며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로 나신 분만이 홀로 순수하시며 원죄가 없으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교황의 교회는 40여년 전에 하느님의 어머니이자 평생 동정녀이신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관한 새로운 교의를 창조하였는데, 이것은 고대 교회에서도 알지 못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교황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번 강한 반발에 부딪혔던 사안입니다.)

14. 세계 공의회가 있던 9세기동안 동방 정교회는 로마 주교의 수위권에 대한 분에 넘치는 주장을 인정한 적이 결코 없었고 교회 사가들이 그저 증명하는 바대로 그에 복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의 독립적인 관계는 대 바실레이오스(Βασίλειος)가 사모사타(Σαμόσατα)의 주교였던 에우세비오스(Ευσέβιος )에게 쓴 편지에서도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중략) 그러므로 거룩한 성직자요 콘스탄티누폴리스의 권위가인 복된 포티오스는 9세기 중엽에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의 독립을 수호하시고 서방 교회의 교계 구조의 왜곡이 동방 정교회 세계에 들이닥칠 것을 예견하시어 처음에는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평화로운 방법으로 애쓰셨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주교였던 니콜라오 1세가 무법하게도 자신의 교구 범위를 넘어선 동방 지역의 교회에 간섭하여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를 자신 앞에 굴복시키려고 갖은 애를 썼으며 교회의 분열의 슬픈 지경에까지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교황 절대주의에 대한 주장의 첫 씨앗은 "가짜 클레멘트 저작"을 통해 해외에 뿌려졌는데 이 저작물은 거짓되고 조작된 황제의 칙령과 고대 로마 주교의 편지들을 한데 모아놓은 잡동사니에 불과한 것으로 실제 역사와 성립된 교계 구조와는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고대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주교에게 세계 교회 전체에 대해 제한되지 않은 권력을 갖게 했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15.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서신들을 통해 점차 문명화된 서방 교회 교인들도 이러한 교리 창조에 대해 항의하며 [15세기에 콘스탄츠(Konstanz)와 바젤(Basel)에서 그랬던 것처럼] 초창기의 교계 헌장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38 곧 하느님의 은혜로서 동방과 북부에 홀로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된 사도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회, 진리의 기둥이자 터요, 언제나 신실하게 남아 있고 남아 있을 정교회로 말입니다. 17세기에 학식 있는 프랑스 신학자들이 그러했고, 그리고 18세기에 독일의 주교들이 그러했으며, 그리고 과학과 비평의 현 세기인 1870년, 기독교인들의 양심이 한 몸으로부터 떨쳐 일어났으니 곧 독일의 복된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이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추인된 교황 무류설이라는 새 교의가 만들어지자 구 가톨릭이라는 이름의 갈라진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황제와 인연을 끊고 교황의 치리로부터 무척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결국 레오 13세의 시도 역시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화해하는 데 실패한 동서교회는 20세기에 참혹한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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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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