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uorF's Laboratory

go to the main page

웹사이트 소개

Introduction of the website

fluorF 소개

Introduction of fluorF

새로운 소식

News

하루 이야기

Daily essay

Articles

사진첩

Album

방명록

Guestbook

facebook_fluorF twitter_fluorF google+_fluorF linkedin_fluorF pinterest_fluorF

Articles

과학 1-3

Science 1-3

과학으로 세상 꼬집기
Critiques to the Pseudoscience World

천연 비타민의 유혹
The Lure of Natural Vitamins


목차

  1. 식약처의 행정규칙 개정
  2. 비타민의 역사
  3. 비타민의 합성
  4. 생기론의 철학
  5. 화학의 발전과 생기론의 해체
  6. 천연 화합물과 합성 화합물의 모호한 경계
  7. 합성 비타민의 억울함 풀어주기
  8. 참고 사이트 및 출처

식약처의 행정규칙 개정

예전에 모 기업의 제품 브랜드인 '브이푸드' 광고에 탤런트 고현정 씨가 나온 적이 있었다. 이 광고는 신비주의 전략을 활용한, 순전히 이미지로만 밀어붙인 광고였는데 광고 중에 우아하게 등장하는 고현정 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나 고현정, 비타민은 천연 원료가 아니면 절대 안먹는다. 비타민은 몸이 먹는 푸드니까.

굳이 영양소를 일컬어 '푸드'라는 외래어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브랜드명인 '브이푸드'를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고현정 씨는 MBC 창사특집드라마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에 미실 궁주로 분해 열연을 펼쳤는데, 이 드라마의 제목이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이며 진정한 주인공 배우는 이요원이 아닌 고현정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녀가 보여준 기품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미지는 사람들을 휘어잡았고, 여기에 홀린(?) 많은 사람들이 '브이푸드'라는 이름을 가진 이 회사 비타민 제품을 찾게 되었다. 주문이 폭주하였고 그 결과 이 회사는 출시 50일만에 매출 100억원이라는 경이적인 업적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1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광고에 사용된 '천연'이라는 이름과 관련된 논란으로 잡음이 있었지만2 회사 입장에서는 제품 하나로 역대급 대박을 냈으니 손해볼 것 없는 장사였다.

브이푸드 전속광고모델이었던 고현정3

그런데 이 잡음에 대해서 조금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광고가 나올 당시 과거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행정 규칙인 「식품등의 표시기준」 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었다.

"천연"의 표시는 오직 '인공(조합)향·합성착색료·합성보존료 또는 어떠한 인공이나 수확후 첨가되는 합성성분이 제품내에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고, 비식용부분의 제거나 최소한의 물리적 공정 이외의 공정을 거치지 아니한 식품 또는 법 제7조의 규정에 의한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에 고시된 천연첨가물의 경우에는 표시가 가능하다.4

즉, 천연이란 말을 광고에 함부로 마구 붙일 수 없게 만드는 매우 까다로운 기준이었다. 당시 기준에 따라 천연 원료로 만든 제품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물건을 판매하려면 천연 재료를 잘 다듬은 다음에 생으로 파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위 기준은 2016년 6월 15일 사라지게 되었다. 식약처5가 고시한 행정규칙 개정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합성·천연의 구분 없이 31개 용도로 분류하여 품목별 용도로 명시하는 식품첨가물의 분류체계 개편 추진에 따라 “천연”의 표시 규정에서 천연첨가물 삭제6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잘 몰랐겠지만 상품 및 광고 표시에서 '천연'이라는 단어 자체가 식품첨가물 표시에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표현으로 지정된 것이 바로 최근의 일이었던 것이다. 천연(天然)이란 말은 참 듣기도 좋고 건강함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긍정적인 단어인데 어째서 식약처에서는 이 단어의 사용을 사실상 배제시켜 버린 것일까? 여기에는 꽤나 복잡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이번 편에서는 천연비타민을 둘러싼 '천연'이라는 표현을 화학적으로 파헤쳐보고 여기에 숨겨진 사람들의 비과학적인 맹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목차로 돌아가기...

비타민의 역사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고 했으니 우선 적(?)에 해당하는 비타민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초등학교 수업 시간 때부터 우리는 5대 영양소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거의 반사적으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을 읊어 왔다. 이 다섯 가지 영양소 중 가장 늦게 발견된 것이 바로 비타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은 생화학적인 지식이 없어도 순전히 외형으로 인식 및 분류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곡류는 탄수화물, 고기는 단백질, 기름은 지방, 그 외의 것들 중에 유기물이 아닌 것들은 전부 무기물. 그러나 비타민은 오직 생화학이 어느 정도 발전된 이후 화합물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증대된 후에야 비로소 인식이 가능했다. 사람들이 분자 구조를 꿰뚫어보는 '원자(原子)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비타민이라는 존재를 화학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외형만으로는 인식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비타민의 등장을 배울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각기병(脚氣病, beriberi)이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의하면 스리랑카의 언어인 싱할라어로 '약하다' 혹은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첩어(疊語)로 만든 단어가 이 증상의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도정된 백미(白米)를 주식으로 삼던 동아시아에서 많이 발병했던 병이라고 하는데, 19세기가 될 때까지 이 깔끔하게 도정된 고급진 쌀이 문제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 이에 대해 연구한 사람은 일본 제국 해군이자 최종직급이 군의총감(軍醫總監)에 이르렀던 의학박사 다카기 가네히로(高木兼寛)였다고 한다. 몇 개월이나 바다에서 장거리 운항을 해야 하는 일본 해군이 앓고 있던 골치 아픈 문제는 바로 각기병으로 인한 군인들의 사망이었는데, 다카기 가네히로는 병사들, 특히 부식비는 따로 빼돌린 채 백미만 먹어 허기만 달래는 하급 병사들의 식단에 각기병을 불러들이는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전함 한 척에는 늘 그래왔듯 백미 위주의 식단을 제공하는 한편, 다른 한 척에는 서양의 방식을 따라 고기와 생선, 잡곡 등으로 구성된 식단을 제공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전함에 탑승한 병사들 사이의 각기병 유병률과 사망률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음식에 있는 무언가가 영향을 주는 것이 확실했는데, 당시 다카기 박사와 일본 해군은 고기를 비롯한 서양 음식의 단백질에 병을 예방하는 성분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각기병 증상에 관한 삽화7

각기병에 대한 연구는 서양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이 비타민의 발견에 대한 공로로 192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네덜란드 병리학자인 크리스티안 에이크만(Christiaan Eijkman)과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데릭 홉킨스(Frederick Hopkins)이다. 에이크만의 연구는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실험실에서 기르던 닭들은 남는 군량미를 사료로 해서 키우고 있었는데 각기병과 같은 증세를 보였다. 그런데 새로운 요리사가 철저한 군인 정신을 가진 분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군량미를 군 외부의 민간인 아니 '민간계(鷄)'에게 넘겨주는 것에 반대했고, 결국 하는 수없이 에이크만 연구실에서는 사료로 먹일 쌀을 다른 곳에서 구입하여 닭들에게 제공해야 했다. 그런데 글쎄 병든 닭들의 각기병 증세가 며칠만에 사라진 것이다! 이 기막힌 상황을 흥미롭게 생각한 에이크만은 실험군 닭에는 도정을 덜 한 현미를 먹이고 대조군 닭에는 도정을 많이 한 백미를 먹였는데, 확인해보니 대조군에 비해 실험군 닭의 각기병 유병률이 현저하게 감소하더란다. 에이크만은 도대체 어떤 성분이 이런 변화를 야기하는 것인지 잘 몰랐지만 일단 현미에 '항(抗)각기병 인자'가 있어 아마 이것이 각기병을 유발하는 미지의 박테리아의 활성을 저해한다고 예측했다. 한편 프레데릭 홉킨스는 이러한 인자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 물 이외의 다른 요소라는 것을 간파했으며, 이 영양 보조 인자(accessory food factor)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록 적은 양임에도 생물체 기능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미지의 요소를 처음으로 분리해낸 사람은 일본의 화학자인 스즈키 우메타로(鈴木梅太郎)였으나 일본 국내 연구 논문집에 실리는 바람에 그 결과가 서구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애석하게도 그 사이에 서구권 과학에 훨씬 가까이 있었던 폴란드의 생화학자 카지미르 풍크(Kazimierz Funk)가 동일한 물질의 분리를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드디어 비타민의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풍크는 이 물질을 처음으로 비타민(vitamine)으로 명명했는데,8 앞의 비타(vita-)는 '필수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고, 뒤의 아민(amine)은 비공유 전자쌍을 가진 질소 원자를 포함하는 유기화합물 명칭인 아민에서 따왔다. 당시 풍크가 분리한 이 물질이 아민 계열의 화합물인 티아민(thiamine)이었기 때문이다.

티아민의 화학 구조식

비타민 B1이라고 통상적으로 불리게 된 티아민이 발견된 이후 비슷한 생리학적 기능을 담당하는 비타민 찾기에 모든 생화학자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보물이 발견되는 시간이 단축되듯 가히 1920년대를 비타민 연구 풍년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단기간 내에 많은 비타민들이 발견되었다 [비타민 A(1913), 비타민 C(1920), 비타민 D(1920), 비타민 B2(1920), 비타민 E(1922), 비타민 B12(1926), 비타민 K(1929)]. 그제서야 사람들은 사람들은 평소대로 잘 먹고 지냈는데도 왜 몇몇 특정한 병이 생기는 지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병은 세균이나 박테리아 혹은 다른 위해 요소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생물체가 필요로 하는 어떠한 필수 요소, 즉 새로 알려진 비타민이라는 존재의 체내 결핍으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였던 것이다.

비타민 A가 부족할 때 생기는 야맹증(夜盲症), 비타민 C가 부족할 때 생기는 괴혈병(壞血病)을 생각해보자. 과거에는 비타민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이런 증상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통적인 관습이나 경험에서 우러나온 처방에 의존해야 했다. 이것들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먹으면 병이 안 생긴다'는 뭔가 미신같은 그런 처방이었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야맹증 치료를 위해 양의 간을 먹었다고 하며, 선원들의 괴혈병 예방을 위해 제임스 린드(James Lind)의 제안을 받아들인 영국 해군은 선원들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레몬 주스를 마시게 했다. 당시 사람들은 양의 간이나 레몬 주스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제임스 린드는 레몬 주스 외에 신선한 채소나 절임 채소들도 괴혈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레몬 주스와 채소 사이에 어떤 영양학적 공통점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비타민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이러한 처방은 (비록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것같은 느낌이지만) 합리적이고 옳은 것으로 판명되어 우연한 발견이나 전통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이러한 역사를 지켜 본 사람들은 갖가지 결핍증을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해 꾸준히 일정량의 비타민을 섭취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비타민을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나? 불행히도 인류가 체내에서 합성해낼 수 있는 비타민은 오직 비타민 D 뿐인데 이것도 햇빛에 포함된 자외선이 피부에 쬐어질 때에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비타민 D를 보충하겠노라고 햇볕 아래 앉아 일광욕만 하다가는 자외선에 온 몸이 데어 오히려 큰 부작용으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비타민은 대체로 음식을 섭취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따라서 특정 비타민이 많이 들어가 있는 식물이나 동물을 제때 확보하여 먹는 것이 건강을 위한 이로운 행동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정량의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 서로 다른 음식을 매 끼니마다 어느 정도 이상 먹어야 한다는 것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음식은 빨리 상하지 않는가? 기껏 야맹증 치료한다고 (그럴 일은 현재에 없겠지만) 양의 간을 수북하게 쌓아두었다가 다 먹지도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하는 비극이 발생한다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그 아까운 비타민 A는 누가 보상해주나? 따라서 점차 늘어나는 비타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간편하게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동식물로부터 다량의 비타민을 추출하여 고농도의 알약 형태로 만들어 판매하는 제약 회사가 생겨났다.

자기야, 비타민 D 맛나지?9

그런데 그 많은 동식물들을 가공 처리해서 일일이 농축하고 유효 성분을 추출한 뒤 분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매우 길고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동식물 내에 존재하는 비타민의 양은 미량인지라 판매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얻어내려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원료를 가공해야 하는데 이 또한 벅찬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기껏 비타민을 힘들게 얻어 판매했더니 원료를 가공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드는 바람에 이윤이 남지 않는 일이 되면 누가 비타민 제조 사업에 뛰어들겠는가?

▲ 목차로 돌아가기...

비타민의 합성

화학자들은 세상에 있는 물질 혹은 없는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과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합성(合成, synthesis)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화학자들은 비교적 값싼 선구 물질(precursor)로부터 몇 단계의 화학 반응을 진행하면 기존에 알려진 천연물과 동일한 화학 구조를 가지는 분자를 합성해낼 수 있는 경로를 연구해 왔으며 이를 전합성(全合成, total synthesis)이라고 부른다. 전합성 연구는 화학적으로는 매우 의미있는 연구이며 화학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연구 분야에 해당된다. 그러나 비타민 제조라는 측면에서 산업적으로 전합성을 바라보면 이것은 당최 이윤을 낼 수 없는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비타민 B12 전합성의 경우 하버드 대학의 유기화학자 로버트 우드워드(Robert Woodward)와 취리히 연방공대의 알베르트 에센모저(Albert Eschenmoser)에 의해 연구되었는데,10,11 유기화학 전합성의 고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합성법의 수많은 과정을 공업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참 어려운 노릇이다. 수십 개의 중간 과정을 거치면서 정제 및 분리 과정을 거치다보면 처음에 100 g 의 원료에서 시작한 실험은 수 g 이하의 비타민 결과물로 종결될 지도 모르는데, 거기에 더해 다단계의 화학 공정들이 요구되고 있으니 어느 누구도 이런 낮은 생산성을 가지고 비타민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로버트 우드워드의 사진. 현대 유기화학 합성에 가장 필요한 분석도구인 핵자기공명분광법(nuclear magnetic resonance spectroscopy)이 개발되기도 전에 수많은 천연물 합성을 보고하였고, 이 분야에서는 거의 우상처럼 여겨지는 전합성 연구의 대가이다.12

이에 고안된 것이 바로 '미생물 공업'이다. 사람들은 그 수많은 화학 과정들에 인간의 노동력을 '갈아 넣는' 것을 피하는 대신 미생물들을 고용하여 그들의 노동력 혹은 삶을 착취하는 법을 선택했다. 어차피 미생물들의 삶은 끊임없는 섭취와 번식의 연속이니까 '우리는 네게 편안한 보금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해줄테니 너는 비타민 부산물이나 많이 생산해줘.'라고 달래면서 미생물들을 거대한 반응로에 감금시켜놓는 것이다. 사실 거창하게 말해서 미생물 공업이지, 김치와 젓갈을 담글 때나 치즈를 만들 때 활용하는 발효와 동일한 것으로 단지 그 규모가 가내수공업 정도에서 대형 공장 정도로 확대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혹시 미생물에게도 미생물권이 있으니 감금 및 착취하는 행위는 사용자(?)로서 너무하는 처사가 아니냐고 항변할 생물권 운동가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정작 미생물들은 왜 먹을 것 푸짐히 있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냐면서 오히려 화를 내며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비타민 합성을 위한 미생물 공업의 공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미생물의 먹이가 될 음식들을 살균 처리하여 반응로에 대기시킨다. 미생물들은 영문도 모른채 공장에 끌려들어왔다가 반응로 안으로 투하되는 순간 지천에 깔린 먹거리를 보고 인간에게 감사해 한다. 미생물에 의한 발효 과정이 진행되면서 이산화탄소와 같은 다량의 기체가 발생하는데 공정 중에 반응로에 들이차는 기체는 적절하게 제거된다. 발효 과정이 완료되면 거대한 반응로 내에는 미생물과 그들이 먹고 나서 만들어낸 수많은 부산물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게 된다. 이제 사람이 할 일은 이 거대한 혼합물 가운데서 비타민을 선택적으로 분리해내는 것이다. 적절한 용매를 사용하여 액체 상태로 용해되어 있는 비타민을 침전 및 결정화시키고, 불순물을 제거한 뒤, 원심 분리와 건조 과정을 통해 액체는 모두 제거하면 리보플라빈 분말을 얻을 수 있다. 말은 엄청 간단하게 써 놓았지만 이러한 공정을 확립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한 화학공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예를 들어 비타민 B2라고 불리는 리보플라빈(riboflavin)을 합성하는 공정의 경우 다양한 미생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알려져 있는데 Ashbya Gossypii라는 진균류, Candida Famata 라는 효모, 그리고 Bacillus Subtilis 라는 고초균을 이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미생물의 생산성이 워낙 좋아서 한 배치(batch)당 수 톤 이상의 리보플라빈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유전자 교정된 미생물의 생산성은 이보다 훨씬 높다고 하니 그야말로 미생물 공업의 수익성은 기대 이상이다.

리보플라빈 합성에 사용되는 진균류인 Ashbya Gossypii의 현미경 사진13

미생물 공업에 화학적 합성법을 가미하는 경우도 있다. 비타민 C라고 불리는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의 경우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Tadeusz Reichstein)이라는 폴란드 태생의 스위스 화학자와 취리히 연방 공대(Eidgenö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Zürich)의 동료 연구자들에 의해 포도당으로부터 비타민 C를 합성하는 방법이 이미 1933년에 개발된 바 있다. 먼저 녹말을 효소로 분해하여 포도당을 얻는다. 여기서 1편 소이 캔들 이야기에서 잠깐 언급된 바 있는 화학 과정이 추가되는데 바로 니켈 금속 촉매 하에서 수소화(hydrogenation)를 진행하는 것이다. 포도당에 존재하는 알데하이드(aldehyde)기가 환원되면 알코올의 수산화(hydroxide)기가 되는 것은 고등학생들도 아는 기본적인 화학 지식이다. 수소화 된 포도당은 솔비톨(sorbitol)이 되며 이제 여기에 초산균(acetobacter)을 투입하여 발효를 진행시키면 솔보즈(sorbose)가 된다. 솔보즈의 수산화기는 과망간산 포타슘(KMnO4) 하에서 산화되어 카복실(carboxyl) 기가 되는데, 솔보즈는 총 다섯 개의 수산화기를 가지고 있기 떄문에 만일 그냥 산화 과정을 진행시키면 모든 수산화기가 제각각 산화 반응을 진행하게 되므로 원하는 케토굴론산(ketogulonic acid)이 아닌 온갖 잡다한 생성물이 등장하게 된다. 다행히도 산화시켜야 하는 하나의 수산화기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수산화기는 인접한 탄소 원자에 결합된 수산화기이므로 두 개의 1,2-다이올로 취급할 수 있으며, 아세톤을 도입하면 이들이 효과적으로 1,2-다이올과 결합하여 아세탈(acetal)을 만들어 비활성화 시켜버린다. 따라서 산화 반응을 유도하기 전 이들 네 개의 수산화기를 아세톤을 써서두 개의 아세탈로 묶어 보호시켜 버리면 원하는 하나의 수산화기만 산화 반응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솔보즈를 카복실산으로 변환시킨 뒤 산을 가하면 아세탈은 다시 풀리게 되어 케토굴론산이 되고, 다이올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었던 기체 아세톤은 반응 용기에서 쉽게 이탈되어 제거 가능해진다. 이제 최종적으로 케토굴론산에 탈수 과정을 적용시키면 물 분자가 빠져나가면서 산소 원자를 포함하는 오각형의 이종고리화합물(heterocyclic compound)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아스코르브산이다!

라이히슈타인 과정을 나타낸 화학식. 참고로 솔보즈(3)를 백금 촉매 하에서 산화시키면 아세톤을 이용한 보호 및 탈보호 과정 없이 바로 케토굴론산(5)을 만들 수 있다.14

이러한 화학자 및 화학공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동식물에서만 얻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 비타민을 공장에서 대량 합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수많은 비타민 제제가 시판될 수 있었고 건강보조제 시장이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비타민 대량 합성의 성공은 비단 제약 회사의 이익 창출에만 기여한 것이 아니다. 바로 공공 보건의 측면에서 비타민 대량 합성은 굉장한 성과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먹는 식품 재료에 합성된 비타민을 일부 첨가하여 판매하는 것이 법적으로 제도화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비타민 B3 라고 불리는 나이아신(niacin)의 결핍증인 펠라그라(pellagra)병인데 대공황 시기 미국에서는 환자가 3백만에 이르고 1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9 당시 미국에서는 이 병이 전염병인 줄 알았지만 조셉 골드버거(Joseph Goldberger)의 노력으로 이 병의 원인이 당시 곤궁해진 미국 시민들의 부실한 식단인 것으로 판명되었고, 1937~1938년에 걸친 연구 끝에 결핍증의 원인이 되는 영양소가 나이아신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에 1940년에 이르러서 미국 식품영양위원회에서는 시중에 판매되는 밀가루에 나이아신을 첨가할 것을 권고하였고,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은 이와 관련된 기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식재료에 부족한 비타민이나 무기질을 첨가 포함시키는 것을 'fortification'이라고 불렀는데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요새화를 의미했으니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대공황 시기가 끝나자 사람들의 식단이 예전처럼 다소 풍족해지면서 펠라그라 환자 수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이어 제 2차 세계 대전이 들이닥쳤고, 병력 보충을 위한 신체 건장한 군인의 모병이 장려됨에 따라 펠라그라와 관련된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유럽과 태평양으로 군대를 보내기 위해서 젊은이를 모집했더니 다들 비실거리거나 혹 펠라그라 병을 앓고 있다면 도대체 어쩌겠는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다시 말해 대공황 시기에는 '병으로 죽지 않기 위해' 영양 상태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전쟁 시기에는 '패전으로 죽지 않기 위해' 영양 상태를 증진시켜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물론 아무리 미국인들의 영양 상태가 안 좋아봐야 미국인들의 체격은 당시 태평양에서 상대하던 일본인들의 체격에 비하면 월등히 좋았겠지만, 효과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서 이들의 영양 문제는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에 당시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는 1941년 5월에 '국방을 위한 전국영양학회(National Nutrition Conference for Defense)'를 개최하여 이를 논의했다. 학회의 최종 권고안은 일반 시민들이 섭취하는 모든 밀가루와 빵에 FDA가 정한 기준에 따라 비타민과 무기질을 첨가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태평양 전쟁으로 화가 잔뜩 나 있던 미국인들은 이와 같은 결정을 존중하였고, 1942년 중반까지 전국의 제빵 공장의 75%가 생산하는 빵에 영양소를 첨가하는 것에 자발적으로 동참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이듬해인 1943년에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하게 들리는 전쟁 영양 조례(War Food Order)가 통과되어 미 연방 내의 주에서 거래되는 모든 밀가루에는 여러 비타민과 무기질 영양소가 의무적으로 첨가되었다.15 그 결과 194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 내에서 펠라그라 병은 사실상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전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든 이 비타민 결핍증은 미국으로 온 피난민 사이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역사속 질병이 되었다.16

1941년 5월 26일~28일에 열린 국방을 위한 전국영양학회 프로시딩 북. 태평양 건너 한반도에서는 당시 극단으로 치닫던 병참기지화 및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17

이러한 모범을 따라 전세계적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주요 식재료에 일정량의 비타민이나 무기질을 첨가하는 것이 널리 확산되었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에서는 이와 관련된 규정을 작성하여 권고하고 있으며 각국은 이를 기초로 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영양소 첨가를 규제 및 감독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필리핀의 경우 국민들의 부족한 철분 섭취를 보충하기 위해 밀과 쌀에 황산철(ferrous sulfate, FeSO4)을 미량 첨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의 경우 밀가루에 철분 뿐 아니라 아연 및 각종 비타민 B를 첨가를 의무화하였다. (각국의 영양소 첨가 정책과 관련된 것은 http://ffinetwork.org/ 에서 확인 가능하다.)

따라서 합성 비타민의 제조는 인류가 비타민 결핍증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값싸고 편하게 비타민을 공급받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게 해 주었다. 실제로 각종 재난으로 인해 정상적인 영양 공급이 어려워진 난민들에게 공급되는 구호 물품 중에 비타민 제제는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는데, 만일 합성 비타민의 제조가 불가능했다면 어려움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수도 있다.

▲ 목차로 돌아가기...

생기론의 철학

이러한 비타민 합성의 근간에는 바로 유기화학(有機化學, organic chemistry)이 자리잡고 있다. 유기화학 지식의 축적 없이는 동식물 선구 물질로부터 비타민을 합성해내기는 커녕, 미생물로부터 합성된 비타민을 분리 및 정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비타민 합성뿐 아니라 세상 대부분의 화학물질의 개발 및 활용은 모두 유기화학이 내려준 은총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가만, 아까서부터 유기화학, 유기화학 그런는데 대체 유기화학이 뭔데? 유기십이(6 × 2 = 12) 아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유기화학이란 다음과 같다.

유기 화합물을 연구하는 학문. 화학의 한 분야이다

아니 그렇다면 유기 화합물은 대체 뭔데? 국어대사전은 친절히 다음과 같이 또 알려주신다.

탄소의 산화물이나 금속의 탄산염 따위를 제외한 모든 탄소 화합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동식물의 생명력에 의해서만 생성될 수 있다고 알려졌으나, 1828년 뵐러가 무기 화합물에서 요소(尿素)를 합성한 뒤로 무기 화합물과의 구별이 없어졌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선 첫번째, 유기 화합물이란 일산화탄소나 이산화탄소와 같은 탄소의 산화물이나 탄산 칼슘과 같은 탄산염을 제외한 모든 탄소 화합물을 말한다. 따라서 유기 화합물은 탄소 화합물의 부분 집합에 속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굳이 이런 부분 집합을 두는 이유가 다음 문장에 소개되어 있는데, 이전까지 사람들은 동식물의 생명력, 영어로는 vitality 여부에 의해 유기 화합물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고 믿어왔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력은 게임에서 등장하는 hit point, 즉 HP가 아니다. 옥스포드 사전에서는 생명력을 뜻하는 영단어 vitality의 뜻풀이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1. 강건하고 활동적인 상태 혹은 에너지.
  2.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능력

유기 화합물의 정의에서 등장하는 생명력은 바로 2번 뜻풀이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신(神)이 신의 능력으로 생물을 창조해낸 것처럼 예전 사람들은 ― 혹은 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도 여전히 ― 오직 생물만이 생명력으로 유기 화합물을 합성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화학자들이 다양한 물질을 합성할 수 있다 하더라도 생체에서 생산해내거나 혹은 생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질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합성 실력이 부족하거나 적절한 합성 메커니즘을 몰라서가 아니라 단지 과학을 초월하는 생명력이라는 존재를 인간이 다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해 왔다. 당시 화학자들은 다양한 무기물들을 다뤄 왔고, 또 유기물들도 다뤘지만 두 영역 사이에는 화학을 통해 넘나들 수 없는 4차원 이상의 벽이 있다고 믿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생기론(生氣論, vitalism)이라고 한다.

생기론의 배경이 무엇일까?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이 '회의적인 화학자(The Sceptical Chymist)'라는 책을 쓰고 프랑스의 세금징수원이자 천재적인 과학자였던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가 근대적인 의미의 화학 원소를 정의하는 시점 전, 곧 근대 화학이 발전하기 이전 생기론이 서구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게 만든 원흉(?)은 바로 다름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영혼론(Περὶ Ψυχῆς, de anima)』에서 논하길, 생명이라는 것은 사유, 인식, 움직임, 그리고 성장의 총체로서 정의되는 것으로 그와 같은 모든 생명 활동을 야기하는 것으로써 생물의 영혼이 생명력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고 하였다. 즉, 생물이 생명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영혼에서 생성되는 생명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명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생체의 그 모든 물질들은 결국 생명력의 소산 중 일부에 해당되는 것이고, 따라서 생명력 없이는 해당 물질들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당연한 결론이 될 것이다.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아퀴노(Aquino)의 토마소(Tommaso)18를 위시한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의 사상과 공고하게 결합되면서 서구 사회에서 생명력에 대한 믿음은 거의 교조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 흉상19

이러한 생기론에 파문을 던진 사람은 중세 시대가 끝난 이후에 프랑스에 등장한 걸출한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였다. 르네 데카르트는 자연을 자연과학 법칙에 따라 작동되는 정교한 기계에 비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가 묘사한 자연에는 생물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단지 복잡도가 엄청나게 높아서 그럴 뿐, 생명체 역시 결국 자동 기계(automaton)처럼 작동되는 존재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기계론(機械論, mechanism)적 관점은 생물이 어떠한 목적성을 가진 채 생명력을 생산하면서 생명 활동을 지속한다는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파괴를 의미했다. 기계처럼 생명 활동 역시 다양한 과학 법칙을 통해 이해되고 또 조절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사상에 찬동하게 된다면, 오직 자연 과학의 법칙만이 자연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므로 그 가운데 생명력이라고 불리는 비과학적인 존재란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초상화20

생물체마저 기계로 환원시키는 기계론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주장이었는데, 이러한 새로운 사상의 등장에 따라 생물학자들과 화학자들이 양분(兩分)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생기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사람들은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인용하며 생명 현상을 설명했는데 대표적인 학자가 독일의 생물학자인 한스 드리슈(Hans Driesch)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용어인 엔텔레케이아(ἐντελέχεια)를 차용하여 발생학을 설명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자연과학 범주를 넘어가는 것인지라 생략하지만, 간단하게 들여다보자면 이런 식이다: 과연 어떻게 불완전한 배아 세포의 분열로부터 각기 완전한 생물체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인지되지 않는, 어떤 목적성을 가진 고유한 생명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화학에서도 이러한 생기론을 믿는 저명한 학자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근대 화학의 발전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스웨덴의 화학자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Jöns Jakob Berzelius)는 유기 화합물이 만들어지는 화학 반응과 무기 화합물이 만들어지는 화학 반응은 복잡성에 차이가 있으며 그 복잡성의 원인이 바로 생명력이라고 인식했다. 리비히 증류기로도 유명한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는 생명력이 독자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조건에서 발현되어 인식 가능해지는 힘이라고 주장했다. 이름을 들으면 우유부터 퍼뜩 떠오르는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훗날 리비히와 발효와 관련된 문제로 서로 대립하긴 했지만, 그도 생기론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현대 자연 과학자들은 생기론을 배격한다. 왜냐하면 생명력이라는 존재가 반증 불가능(unfalsifiable)한 비과학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21 또한 과거에 생명력을 이용하여 설명했던 그 모든 화학적, 생물학적 반응이 그간 축적된 과학적 지식을 통하여 설명과 반박이 가능해지면서 자연과학에서 생명력이 차지하는 입지는 크게 좁아지다 못해 퇴출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수백년, 아니 수천년의 오랜 기간동안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 속에 자리 잡아 왔던 생명력이라는 개념은 과학적 지식을 습득하기 이전에 주변 자연 현상을 손쉽게 설명하거나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복잡해지고 늘어나는 과학적 지식을 따라 가지 못하는 과학 비전공자들에게는 여전히 설득력 있는 철학적 개념이었다.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도 이 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누군라도 드리슈와 같은 생기론자의 저서를 읽게 되면, 생물체가 단순히 기계로 간주될 수 있다는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으로는 생물학의 기본적인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 목차로 돌아가기...

화학의 발전과 생기론의 해체

그렇다면 이 생기론은 어떤 과정을 통해 해체되었을까? 유기 화합물의 국어대사전 정의 마지막 부분이 이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물론 생기론의 해체가 프리드리히 뵐러(Friedrich Wöhler)의 실험 하나만으로 순식간에 붕괴된 것은 아니다. 게다가 흑체 복사 에너지의 양자화(量子化, quantization)를 처음으로 제안한 막스 플랑크(Max Planck)처럼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발견을 한 연구자들이 늘 그러했듯, 뵐러 역시 실험 결론을 얻은 직후부터 생기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든지 기계론을 찬성하는 명확한 입장을 내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생기론자들이 주장한 '유기 화합물은 오직 살아 있는 생명체로부터 만들어진다.'라는 명제가 충분히 반박 가능해졌기 때문에 뵐러의 실험은 기계론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얻게 되는 계기로서 과학사적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편에서는 뵐러의 실험에 관한 한 총설(總說, review)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22

뵐러의 초상화23

뵐러는 1824년에 사이아노젠(cyanogen, C2N2)과 암모니아(ammonia, NH3)를 반응시켰더니 하얀 결정 물질이 만들어졌다고 보고했는데 예상대로라면 이것은 시안산암모늄이어야 했지만 생성물은 그것이 아니라고 보고했었다. 그리고 1828년에는 암모니아와 시안산(cyanic acid, HNCO)를 가열시켜 반응시켰더니 동일한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했는데, 갖가지 분석법을 동원해서 확인해보니 이것이 암모늄 염도 아니고 시안산 염도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뵐러가 멘붕에 빠진 것은 당연지사. 질소와 산소, 수소, 탄소로 구성된 이 물질은 당연히 (NH4+)(OCN-) 이어야하는데 도대체 무엇인가? 당시 생기론의 입장에서 뵐러가 사용한 반응물은 모두 무기 화합물이므로 생성되는 물질은 당연히 무기 화합물이어야 했으며, 당연히 무기 화합물의 분석법이 유효하게 적용되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뵐러는 자신이 얻은 이 화합물이 더 이상 무기 화합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내 생각에 뵐러도 '내가 참 실험이 안 되니 별 미친 생각을 다 하지'하고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시험삼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실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 대담한 가정을 한 사람들이 품는 마음 중 하나가 '설마 그러겠어?'니까. 뵐러도 그런 심정이었는지 만들어진 하얀 결정 물질에다가 쿨하게 질산을 반응시켜 보았다. 그랬더니 요소에 질산을 반응시켰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요소가 질산을 만나면 강한 폭발성의 질산 요소가 합성되기 때문에 이 반응은 요소, 혹은 요소와 같은 종류의 물질이 아니고서는 당시로서는 관찰하기 힘든 반응이었을 것이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뵐러는 소변으로부터 순수한 요소를 분리해낸 뒤 같은 실험을 진행했고, 당시까지 얻었던 그 모든 분석 결과들을 토대로 자기가 만들어낸 물질이 (충격적이게도) 화학식은 시안산암모늄과 동일하지만 구조가 전혀 다른 유기 화합물인 요소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생기론자들의 입장이 우세한 당시 상황에 이런 결론을 마구 떠버렸다가는 매장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뵐러는 논문에 한 줄로 짤막하게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한다.

무기 물질로부터 소위 동물 물질이라고도 불리는 유기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한 예이다.

실제로 뵐러는 이 실험 결과를 가지고 생기론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스승이자 생기론자의 대가였던 베르셀리우스는 그가 중요하고 아름다운 발견을 했다고 격찬하면서도 그것을 화학식은 동일하지만 다른 물질인 구조이성질체(構造異性質體, structural isomerism)의 발견 정도로 그 의의를 한정하였고, 그 대신 베릴륨(Be)과 이트륨(Y)에 대한 연구를 더 진행하라고 독려하는 이른바 물타기(!)를 시도했다. 생기론의 대가였던 그는 뵐러의 획기적인 발견에도 불구하고 생기론에 대해 여전히 지지를 보내고 있었고, 심지어 1847년에 쓴 저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아 있는 생물 내의 원소들은 죽어 있는 생물 내의 원소들과 완전히 다른 법칙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리비히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생기론을 여전히 믿고 있었다.

열에 의해 지배를 받는 화학적인 힘은 더 단순한 원자단의 형태와 성질을 결정하는 반면, 생명력은 더 높은 수준의 원자들, 곧 유기 화합물 원자들의 형태와 성질을 결정한다.

당시 생기론 지지자들은 뵐러의 실험 이후 생명력에 대한 존재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유기물(organic body)와 유기화된 화합물(organized body)을 구분하는 희한한 꼼수(?)를 동원했다. 예를 들면, 식물이 설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설탕에 생명이 있느냐? 그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간이 설탕을 합성해낸다고 하더라도 생명이 있는 유기 화합물을 만든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동물들이 요소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요소 자체에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설탕이나 요소와 같은 '유기물'은 '유기화된 화합물'의 생성과 변화를 논할 때 사용하는 생명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이른바 '하급 유기 화합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의 억지 주장 혹은 누더기 덧대는 듯한 임시방편적 가정의 등장은 토머스 쿤(Thomas Kuhn)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논했듯, 대개 패러다임(paradigm)의 전환이 일어나기 직전 이전의 정상과학(定常科學, normal science)이 갖가지 변칙 현상(變則現象, anomaly)에 대응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른바 쿤 사이클(Kuhn Cycle)이라 불리는 정상과학의 성립과 발전 및 패러다임의 변화 주기24

그리고 그 이후의 결과는? 모두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수많은 유기 화합물들이 전세계의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데 성공했고, 이러한 연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분야가 바로 전합성이라고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즉, 생기론은 기계론에 패러다임을 넘겨주고 과거의 과학 체계로서 현대 과학 무대에서 쓸쓸히 퇴장하였다.

▲ 목차로 돌아가기...

천연 화합물과 합성 화합물의 모호한 경계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옮겨가야 한다: 과연 뵐러가 시안산암모늄이라고 믿고 얻어낸 요소가 소변에서 분리해 낸 요소와 동일할 것인가? 여기에는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겠지만, 당장 생기론을 옹호하던 200여년전의 사람들도 두 요소는 서로 동일한 것이라고 인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학 분자의 성질은 오직 화학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의 종류와 그 원자들의 결합 구조, 그리고 결합 방향에 기인하니까. 다른 요소는 전혀 없다. 우주의 기운이 담겨 있거나 부족한 분자? 생명력이 가득 넘치거나 조금 덜한 분자? 그런 것은 이 세상에 전혀 없다. 그렇다면 동일한 원자 개수와 결합 구조로 결합되어 있는 분자는 입체이성질체(立體異性質體, stereoisomer)가 아닌 이상 당연히 똑같은 분자로 취급되는 것이 합당하고 또 지극히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 시간에 배운 내용을 가지고 간단하게 설명 가능하다. 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삼각형을 작도하라고 시켰다.

  1. 한 변의 길이가 1, 다른 한변의 길이가 2, 마지막 다른 한 변의 길이가 √3
  2. 한 변의 길이가 1, 다른 한변의 길이가 2, 그 사이에 끼인 각의 각도가 60도
  3. 한 변의 길이가 2, 왼쪽 끼인 각의 각도가 60도, 오른쪽 끼인 각의 각도가 30도

결과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다시피 세 삼각형 다 직각삼각형 되는데 완전히 동일한 삼각형이 된다. 이른바 합동(合同)이다. 삼각형을 작도하는 접근 방식은 제각각이었지만 결과물은 동일하다. 이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결과지상주의적 논의가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결과물(삼각형)과 결과물을 얻어내는 과정(작도) 사이에는 어떠한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즉, 1번의 방법으로 작도한 삼각형과 2번의 방법으로 작도한 삼각형은 똑같은 삼각형인데 작도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해서 1번은 SSS 삼각형, 2번은 SAS 삼각형, 뭐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전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저 그들은 동일한 직각삼각형일 뿐이다.

초등학교 때 배운 삼각형의 합동 조건25

이것은 유기 화합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뵐러는 암모니아와 시안산을 이용하여 요소를 만든 반면 우리 신체는 소변에 포함되는 요소를 주로 간에서 합성해내는데 이와 관련된 생체 반응을 요소 회로 혹은 오르니틴 회로(Ornithine cycle)라고 부른다. 생물학 교과서마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오르니틴 회로는 단백질 소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체에 유독한 부산물인 암모니아를 처리하기 위해서 ATP를 활용하면서 이를 요소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니 1820년대 뵐러의 인체 밖 요소 합성과 인체 내 요소 합성 방식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요소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나? 지성적인 사람들의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가 될 것이다. 두 분자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실험실 요소'와 '인체 요소'로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하며, 나아가 '합성 요소'와 '천연 요소'로 구분 짓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오르니틴 회로26

자, 이제 앞에서 줄기차게 언급했던 비타민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비타민은 요소보다 몇 곱절 복잡한 구조를 가진 유기 화합물이다. 우리는 비타민을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 하나는 비타민을 미생물이나 혹은 화학적인 합성법을 가미하여 공장에서 만드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생물들이 자연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자, 이제 독자에게 묻겠다. 미생물들이 소화하여 만들어 낸 비타민 B2와 우유에 들어 있는 비타민 B2는 다른 것인가? 공장에서 만든 비타민 C와 귤이 만들어 열매 안에 저장해 놓은 비타민 C는 서로 다른 것인가? 정답은 당연히 '아니올시다'라는 것이 나와 지극히 일반적인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것이다. 공장에서 합성한 비타민과 자연적으로 동식물에서 섭취하는 비타민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의 종류와 개수, 결합 양상 그 모든 것들이 동일한 그야말로 합동인 분자다.

그러므로 '합성 화합물'과 '천연 화합물'을 구분 짓는 것은 화합물의 출처를 밝히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화합물의 특성을 밝히는 데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무의미한 구분법이다. 합성 화합물 '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효과가 A라면, 천연 화합물 '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효과 역시 A이다. 왜냐하면 그 둘은 완전히 동일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생명력이란 게 여기서 작용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오직 유기 화학 이론만이 이 모든 화학 분자들의 성질을 관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 천연 비타민과 합성 비타민 구분으로 장난놀음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엄중한 반격의 화살을 날릴 시간이 되었다. 참고로 나는 더 이상 천연 비타민과 합성 비타민이라는 엄연히 거짓된 틀린 이름으로 비타민을 구분하고 싶지 않으나 편의상 이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겠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대로 천연 비타민은 100% 천연물로부터 얻은 비타민이고, 합성 비타민은 100% 화학 합성 과정을 통해 얻은 비타민이라고 하자.

▲ 목차로 돌아가기...

합성 비타민의 억울함 풀어주기

합성 비타민보다 우월하다는 천연 비타민의 놀라운 효능을 맹신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주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먹어서는 안 될 원료로부터 비타민을 만든다.
  2. 비타민 합성 과정에서 유해한 화학 약품들이 사용된다.
  3. 합성된 비타민은 천연 비타민과 다른 화학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주장들은 단 한 마디로 반박 가능하다. '넌 화학을 잘 모르는구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음식물쓰레기나 식용 개구리로부터 비타민을 합성한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물론 내 입으로 들어갈 음식의 출처가 그런 구역질나는 것이라면 먹기에 망설여지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우리가 실제로 먹는 것은 이들을 화학적으로 처리, 합성 및 정제한 비타민이지 그 음식물쓰레기나 식용 개구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물리적 변화는 물질의 거시적 형태가 바뀌는 것으로 거대한 설탕 덩어리를 빻아서 고운 설탕 가루로 만드는 것이 한 예이다. 설탕 덩어리나 설탕 가루나 설탕인 것은 매한가지이다. 이에 반해 화학적 변화는 분자의 구조가 변하는 것이므로 물질 자체가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종이를 태워버리면 재만 남는데 화학적 변화의 결과로 생성된 재는 종이와 화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물질이다. 따라서 설사 먹을 수 없는 원료일지라도 화학적 변화들을 거치게 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될 수 있는 것은 신기한 마법이 아니라 엄연하고도 단순한 과학적 진리이다. 즉, 중간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원료는 이런 끔찍한 물질이니 여기서부터 만들어진 최종 결과물도 정말 소름돋겠죠?'라고 겁박하는 것이다. 식재료에 귀천이 대물림되는 카스트 제도나 골품 제도라도 있다는 뜻인가?

게다가 그 식재료의 원료는 보통 화학적으로 단일한 물질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체 일부는 여러 개의 화합물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혼합물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혈액만 해도 다양한 성분들이 녹아 있는 혈장과 녹지 않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의 난장판이다. 많은 경우, 혼합물 원료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원료만을 활용하기 위해 특정 성분만 녹여낸 뒤 ― 화학적 용어로 추출(抽出, extraction)이라고 부른다. ― 이를 분리하고 정제하는 과정이 뒤따르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설사 독약이 포함되어 있는 혼합물 원료였을지라도 여러 차례의 추출 및 분리 과정을 반복하면 인체에 무해한 성분민을 뽑아내어 복용 가능한 물질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모래가 섞인 소금을 국에 집어 넣으면 국을 아예 망치게 되지지만, 이것을 먼저 물에 녹인 다음에 천으로 모래를 걸러낸 뒤 끓여서 얻은 흰 가루를 국에 넣으면 아무 문제가 없듯이.

한편, 비타민 합성 과정에서 유해한 화학 약품들이 사용된다는 점은 화학 공정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유기 용매들은 건강에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화학 실험실의 유기 용매 저장고에 들어가면 웬 갈색병마다 느낌표, 해골, 발암 표시가 빼곡한 것이 눈으로만 봐도 건강이 나빠질 것만 같다. 유기 용매만 건강에 안 좋고 다른 무기 물질들은 건강에 좋은가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특히 강산이나 강염기 물질들은 절대로 몸에 닿게 하면 안 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따라서 이런 물질들이 그대로 우리 몸에 들어오게 되면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분명하다.

화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인 이 표시들이 덕지덕지 붙은 시약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화학 처리 공정에서 이런 용매들 및 화학 약품들을 제대로 정제 및 회수하지 못했다면 진즉 전세계 인구 중 절반 이상은 온전히 건강한 삶을 영위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도로 개발된 화학 공정들은 식품의 화학 처리 과정에 사용되는 시약들을 엄격하게 통제, 관리 및 회수하고 있으며 법으로 정해진 양 이상이 검출되지 않도록 정교하게 진행된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추출, 분리, 정제'를 하찮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원하는 성분만을 선택적으로 얻어 제품화한 것이기 때문에, 화학적으로 검증된 정제 과정을 거친 화합물은 실은 왠만한 천연 재료보다 더 안전하고 인체에 무해하다. 따라서 처리 과정에서 끔찍한 물질이 사용되었다고 최종적으로 제조된 물질마저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식의 주장은 더러움의 속성이 유해한 시약으로부터 최종 합성물로 전염된다는 비과학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가끔 의 일부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을 주곤 한다.27

어떤 남자의 성기에서 고름이 흘러 나오면, 그 나온 것은 부정한 것이다. 이렇게 고름이 흘러 나옴으로써 부정하게 되는 경우에는, 고름이 계속 나오고 있든지 나오고 있지 않든지, 그는 부정하다. 그렇게 고름을 흘리는 사람이 누웠던 자리와 앉았던 곳도 부정하다. 그 사람의 잠자리에 닿은 사람은 옷을 빨아 입고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는 저녁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그렇게 고름을 흘리는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 앉은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도 저녁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그렇게 고름을 흘리는 사람의 몸에 닿은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도 저녁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고름을 흘리는 사람이 뱉은 침이 정한 사람에게 튀면 그는 옷을 빨아 입고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도 저녁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고름을 흘리는 사람이 타고 다니던 것은 다 부정하다. 그가 깔고 앉았던 것에 닿은 사람도 누구든지 저녁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그런 물건을 가지고 다닌 사람은 옷을 빨아 입고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도 저녁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누구든지 고름을 흘리는 사람이 씻지 않은 손으로 건드렸으면 그는 옷을 빨아 입고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도 저녁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고름을 흘리는 사람의 몸이 닿은 오지그릇은 깨뜨려야 하고, 나무그릇은 물로 씻어야 한다.

세균이나 박테리아와는 실재(實在)하는 병의 원인이지만, '더러움의 속성'이라는 관념은 생명력 개념과 매한가지인, 실재하지 않는 비과학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식재료들을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공정을 통해 기준치 이하 수준으로 제거가 된다면, 그 결과물이 섭취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합성 비타민의 화학 구조가 천연 비타민과 다르다는 주장은 애써 재론하지 않겠다. 앞 장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화학적으로 합성한 비타민과 천연 비타민의 화학 구조는 100% 동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으로 합성 비타민에 대해서, 혹은 화학 합성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 던지겠다. 천연 비타민이 무엇인가?

아니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 지금까지 합성 비타민을 소개하면서 천연 비타민과 다르지 않다고 줄기차게 얘기하더니 갑자기 천연 비타민이 무엇이냐고 묻다니? 비타민은 생체 기능을 조절하는 어떤 화학분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했으니, 천연 비타민은 천연 상태에서 만들어진 비타민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동식물에서 합성 혹은 저장되어 있는 비타민을 뜻한다.

그렇다면 동식물에서 이 천연 비타민만을 뽑아 내어 만든 비타민 제제는 천연 비타민 제제인가? 무슨 말장난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게도 이렇게 만든 비타민 제제는 더 이상 천연 비타민 제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천연 비타민만을 뽑아 내는 과정은 천연과는 거리가 먼 화학 공정이기 때문이다. 맨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떠한 화학 공정이라도 도입되면 더 이상 '천연'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비타민 제제는 '천연 재료로부터 얻은 비타민 제제'일수는 있을지언정 '천연 비타민 제제'는 아닌 것이다.

결국 우리가 흔히 천연 비타민이라고 언급하는 천연재료로부터 만든 비타민과 합성 비타민의 차이는 사실상 원재료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처 생각 못했겠지만 합성 비타민의 원재료 역시 천연물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로부터 합성 비타민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상에 있는 물질'을 먹고 사는 미생물들을 활용하는 미생물 공정상 합성 비타민의 시작 물질은 자연히 천연 재료여야만 한다. 예를 들어 비타민 C를 생각해보자. 천연재료로 만든 비타민의 원료는 대개 비타민 C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과일과 채소들일 것이다. 합성 비타민 C의 시작 물질은 녹말인데 이 녹말은 실험실 시약장 어디서 꺼내와야 하는 화학 물질이 아니라 논밭에 나가면 부지기수로 얻을 수 있는 자연 물질이다. 공정에도, 원재료에도 별반 차이가 없다면 도대체 천연 비타민과 합성 비타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바로 천연 비타민 제제, 합성 비타민 제제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비타민으로 구성된 약일뿐이며 단지 원재료가 다양할 수 있다는 것 뿐이다. 귤에서 얻은 비타민 C나 녹말로부터 얻은 비타민 C나 천연, 합성의 구분 없이 그냥 비타민 C라는 것이다.

네, 저는 그 헛된 차이를 알아서 합성 비타민을 먹겠습니다.28

좀 더 대담하게 이야기하자면, '천연'이라는 단어는 비타민의 실제 속성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단지 홍보를 위한 광고성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속아 천연 비타민 제조업체에 쓸데없이 돈을 갖다 바치고 있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본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귤에서 비타민 C를 얻는 것보다 녹말로부터 얻는 것이 더욱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실제로 비타민 제제는 그렇게 값비싼 제품이 아니다. 그러나 소위 '천연 비타민' 운운하는 제품들은 시중에 유통되는 비타민보다 훨씬 비싼데, 이것은 애초에 그 비타민 제품에서 광고하는 그러한 식물로부터 비타민을 추출하여 정제하는 것이 굉장히 비경제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한가지 함정이 더 있는데, 시중에 돌아다니는 '천연 비타민'의 비타민 성분이 100% 천연물로부터 추출된 성분일 가능성은 애초에 매우 낮다. 잠깐 머리를 굴려서 산수를 해보자. 귤 100 g 당 비타민 C가 대략 40 mg 정도 있다고 한다. 만약 비타민 C 1 g이 포함된 알약을 만든다고 한다면 알약 하나당 2.5 kg 의 귤이 필요한데 대략 2~3만원이 들 것이다. 도매업자에게서 대량 구매를 해서 귤을 싸게 공급받는다고 해도 귤껍질 까야지, 속껍질은 모두 벗겨내고 알맹이만 뽑아내야지, 비타민 C만 뽑아내야지, 결국 추출 및 정제 과정에서 드는 인건비와 시설 투자비를 고려해보면 결국 알약 하나당 원가가 수천원 이상 하게 된다. 누가 정신 나갔다고 비타민 정 하나에 원가를 수천원 이상 잡아먹는 생산을 진행하겠는가? 여기에 묘안이 하나 있다. 바로 섞는 것이다! 귤에서 얻은 천연 비타민을 1% 정도 미하고 99%는 합성 비타민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러면 원가는 확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천연 비타민이라고 광고하냐고? 명시적으로 천연 비타민이라고만 말 안 하면 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100% 국산 제주 한라봉으로부터 얻은 천연 비타민 C 함유
천연 아세로라 추출 비타민 C 성분 포함

어느 문구도 100% 천연 원료로부터만 만들어 낸 비타민 C 제품이라는 얘기를 하지는 않으나 광고 문구를 본 사람들이 '오, 저런 과일로부터부터 비타민 C를 만들어 파는구나.'라고 생각할 만하지 않겠는가?

이제 이 시점에서 식약처가 '천연', '합성'의 구분을 폐지한 배경이 드러난다. 과거에는 천연물에서 얻은 물질이 합성물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에 '천연'이라는 명칭에 프리미엄을 두었다. 따라서 아무 제품이나 이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엄격한 기준을 두어 실제로 천연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에만 이 명칭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실제로는 기존의 '천연'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음에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은근히 '천연' 비스무레한 표현들을 직간접적으로 오남용하는 경우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제품의 성분 측면에서 살펴보면 천연 성분이라고 해서 합성 성분보다 우월하거나 무해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기존의 천연 첨가물 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졌을 것이다. 결국 천연이라는 명칭에 그간 주어졌던 프리미엄이 폐기되어 천연, 합성의 명칭 없이 분류 체계에 해당하는 항목을 기재하는 것으로 법이 바뀐 것이다. 이를 비타민에 적용시킨다면 '천연 비타민'이니 '합성 비타민'이니 하는 이름은 무의미해지고 단지 '비타민'이라는 성분명만으로도 족하게 된 것이다.

네, 효능의 차이는 없습니다!29

이제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이 세상에 천연 비타민, 합성 비타민과 같은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글과는 상관이 없지만 한 가지 분명히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이미 풍족해질대로 풍족해진 식생활이 자리 잡은 대한민국에서 왜 우리는 그리도 천연, 합성을 따져가며 비타민을 챙겨 먹어야 했을까? 여전히 무언가가 결핍된 것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언론과 건강보조식품 제조사의 압박과 회유 때문인 것일까? 채소와 과일을 멀리하는 풍요 속 빈곤의 식생활을 영위하고 있어서일까? 비타민을 비롯하여 몸에 좋은 보조식품을 찾아 이것저것 재고 따지기 전에 매끼 식사의 영양 균형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목차로 돌아가기...

참고 사이트 및 출처

▲ 목차로 돌아가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