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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4

Fine Art 4

유화와 화학

유화 기법의 특성
Oil Painting Techniques


목차

  1. 덧칠
  2. 글레이징
  3. 임파스토
  4. 참고 사이트 및 출처

덧칠

사람들에게 유화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누구든지 덧칠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언급할 것이다. 물감을 의도치 않은 번짐의 우려 없이 안전하게 덧칠할 수 있는 것은 유화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자면, 3편에서 이미 살펴보았듯 먼저 칠한 물감이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하여 가교되면 물감을 구성하는 기름의 분자량이 급증하게 되는데 이렇게 거대해진 분자량의 고체 물질은 대체로 용매에 다시 분산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덧칠이 가능해진다. 딱딱하게 굳었으니 잘 안 풀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덧칠이 가능해지면 그림을 수정하기에 용이하지만, 그 때문에 이와 같은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스페인의 사라고사(Zaragosa)에 있는 한 마을의 성당에 있던 벽화 《엣체 호모(Ecce Homo》의 덧칠로 인한 훼손 사례.

예를 들어 팔레트에 짜 놓은 수채화 물감을 생각해보자. 팔레트에 수채화 물감을 짜 놓으면 처음에는 약간 점성이 있는 액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전색제(展色劑, vehicle)인 물과 아라비아 고무(gum arabic)가 다량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물이 모두 증발하면서 수채화 물감은 딱딱하게 굳어 버리게 된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다 ㅡ 붓에 물을 묻혀 딱딱하게 굳은 물감을 몇몇 쓱쓱 문지르면 물감이 풀려나오면서 채색할 수 있는 액체 상태가 되기 떄문이다.

하지만 유화 물감에서는 이런 현상을 발견할 수 없다. 유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수채화 물감과는 달리 유화 물감을 팔레트에 미리 짜놓지 않고 그림을 그릴 때에만 비로소 짜내어 바로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화 물감을 팔레트 위에 짜놓고 장시간 두었다 치자. 그러면 가교가 진행되면서 유화 물감은 딱딱하게 굳는다. 당신은 이 물감을 다시 풀어내기 위해 아마인유를 조금 부어 붓에 묻힌 뒤 딱딱학 굳은 유화 물감 위로 쓱쓱 문질러댄다. 어랍쇼? 물감이 안 풀린다?

1편에서 언급했지만 용매와 분산매가 용질 혹은 분산질을 고르게 퍼뜨릴 수 있는 이유는 용매-용질 혹은 분산매-분산질 사이의 상호 작용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잠깐, 문장이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용매와 용질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즉 용매라는 것은 용매와 분산매, 용질이라는 것은 용질과 분산질을 모두 아울러서 표현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펴봤던 것은 용매-용질의 상호 작용이 용매끼리 혹은 용질끼리의 상호 작용보다 우수할 경우 용질은 기꺼이 용매에 퍼져나가길 선호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제 건조된 물감에 아마인유를 들이붓는 과정을 화학적으로 살펴보자. 건조된 물감은 비록 가교되어 있지만 구성 성분은 아마인유와 하등 다를 것이 없고, 단지 아마인유 분자들이 이써(ether) 결합으로 모두 촘촘히 연결되어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아마인유-아마인유의 화학적 상호 작용과 가교된 아마인유-아마인유 사이의 화학적 상호 작용 사이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아마인유는 아마인유와 동일한 물질이기 때문에 잘 섞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고찰이 여기에 이르면 가교된 아마인유 역시 아마인유에 잘 섞여야 마땅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완벽히 건조된 물감은 아마인유에 잘 풀려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 모순적인 상황의 해답은 1편의 각주 5번에 있었다. 어떤 혼합 반응이 자발적(spontaneous)인지 아닌지는 용매와 용질 간의 화학적 상호 작용, 곧 엔탈피(enthalpy, ΔH)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사실 이는 깁스 자유 에너지(Gibbs free energy, ΔG)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열역학(熱力學, thermodynamics)에서는 깁스 자유 에너지가 음수(ΔG<0)일 때 해당 화학 반응이 자발적이라고 이해하는데, 이 때문에 어떤 혼합 반응이 열을 외부로 방사하는 발열 반응(ΔH<0)인 경우 대체로 자발적인 반응일 것이라고 예측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모든 발열 반응이라고 해서 깁스 자유 에너지가 음수인 것은 아니다. 깁스 자유 에너지는 ΔG = ΔH - TΔS 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 엔탈피 외에 이상한 항이 하나 더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T는 온도를 의미하고 ΔS는 저 유명한 엔트로피(entropy)를 말한다.

열역학에서 다루는 에너지 관련 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4개가 있는데 바로 내부 에너지(internal energy, E), 헬름홀츠 자유 에너지(Helmholtz free energy, F), 깁스 자유 에너지(Gibbs free energy, G), 엔탈피(enthalpy, H)가 있다. F는 등온(等溫)과정, H는 정압(定壓)과정, G는 등온 및 정압 과정에서의 내부 에너지 변화라고 이해할 수 있다.

깁스 자유 에너지 측면에서 아마인유의 혼합을 설명 해보자. 아마인유와 아마인유는 왜 섞일 수 있는 것일까? 이건 마치 왼손에 든 물컵의 물과 오른손에 든 물컵의 물은 어떻게 섞일 수 있는지 묻는 무식한(?) 질문일 수 있지만 나름 의미가 있는 질문이다. 우선 왼쪽의 아마인유를 아마인유1이라고 하고 오른쪽의 아마인유를 아마인유2라고 하자. 아마인유1끼리의 상호 작용과 아마인유2끼리의 상호 작용은 아마인유1과 2 사이의 상호 작용과 정확히 동일하다. 왜냐하면 둘 다 똑같은 아마인유니까 말이다. 따라서 아마인유1과 2가 섞인다고 해서 전체 계의 상호 작용 차이는 일어나지 않게 된다. 열역학적으로 표현하면 아마인유1과 2의 혼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엔탈피 변화는 없다(ΔH=0).

그런데 엔트로피 문제가 끼어든다. 아마인유1과 2가 섞이게 되면 전체 계의 입자 개수가 폭증하게 된다. 독일의 유명한 물리학자인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통계역학적인 처리를 통해 엔트로피의 절대적 값을 정의할 수 있음을 보였는데 그 식은 S = kBln W 이다. 여기서 W는 해당 계에서 가능한 모든 미시적 상태(microstate)의 수인데 쉽게 생각한다면 입자의 개수가 커질수록 미시적 상태가 급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마치 레고 블록 여남은 개를 어질러 놓은 상황과 수백 개를 어질러 놓은 상황이 있다고 할 때 어느 쪽에서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당연히 엔트로피가 높은 후자일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두 물질을 혼합할 때에는 엔트로피가 급증하므로(ΔS>0) 결과적으로 깁스 자유 에너지는 음수(ΔG<0)가 되고, 이로 인해 동일한 두 물질의 혼합 과정은 자발적인 반응이 된다.

자, 이제 가교된 아마인유와 액체 상태인 아마인유를 혼합할 때를 생각해 보자. 가교된 아마인유와 액체 아마인유 역시 동일한 아마인유이므로 이 과정에서도 엔탈피 변화는 거의 무시할 정도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ΔH~0). 그래서 엔트로피쪽으로 건너가서 살펴보는데, 여기서 다른 점이 발생한다. 가교된 아마인유는 거대하게 연결된 하나의 집단 네트워크이며 상온이 유리전이온도(琉璃轉移溫道, glass transition temperature)보다 낮은 온도이므로 유동성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가교된 아마인유는 아무리 주변에서 액체 아마인유들이 같이 놀자도 꾀어대도 꿈쩍도 안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액체 아마인유 분자들은 가교된 아마인유가 있으나 없으나 미시적 상태의 개수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엔트로피 변화는 이전 경우보다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고 이 경우에는 거의 0에 가까운 수준일 것이다(ΔS~0). 그 결과 깁스 자유 에너지 변화는 거의 0에 가깝게 될텐데 이는 평형(equilibrium) 상태임을 의미하며 자발적으로 혼합이 일어나지 않음을 암시한다.1

고분자의 혼합에 관련해서는 폴 플로리(Paul Flory)와 모리스 허긴스(Maurice Huggins)가 독자적으로 발견한 소위 플로리-허긴스 용액 이론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해당 내용은 학부 수준의 고분자화학 과목에서 반드시 가르치는 내용 중 하나이다.

따라서 유화에서는 마른 물감 위에 다른 물감을 안전하게 덧칠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먼저 칠한 물감이 완전하게 건조되어야만 다른 물감이 덧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건조 상태가 완벽하지 않다면 덧칠한 물감이 아래 칠해진 물감과 섞이게 될 것이고 이것은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내게 된다. 물론 저명한 화가들은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다른 물감을 덧칠하는 것을 하나의 또다른 기법(!)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표현을 구사해내는 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소위 웻온웻(wet-on-wet) 혹은 알라 프리마(alla prima) 기법이다.

프란스 할스(Frans Hals)가 그린 야스페르 샤드(Jasper Schade)의 초상화. 웻온웻 기법이 잘 나타난 수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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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이징

유화에는 다양한 기법이 있지만 나를 굉장히 흥미롭게 만들었던 기법은 바로 글레이징(glazing)이라는, 즉 그림 표면에 광택(光澤, gloss)이 나는 듯한 효과를 주면서 보다 깊이 있는 색깔을 구현하는 기법이었다. 이러한 기법은 수채화에서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한 표현 방식이었기에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글레이징 기법은 이미 건조된 물감층 위에 투명한 물감층을 덧바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왜 투명한 물감층을 바르는 것이 광택과 연결되는 지에 대해 이해하려면 광학(光學) 지식이 조금 필요하다. 빛이 어떤 물질에 도달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