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에서 2026 (7월 현재까지) 최고의 K-pop으로 KiiiKiii의 '404 (New Era)'를 선정했는데,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설마 그 오류 코드? error를 era로 받아적은 거야?'라며 적잖이 당황스러우면서도 노래와 춤이 묘하게 끌려서 좋은 곡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ㅡ 정말 아무 이유없이 ㅡ 이 곡의 악보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 곡이 정말 재미있는 곡이구나 무릎을 탁 쳤다. 참고로 이 노래는 정말 보기 드문 E♭ 단음계(조표로 ♭이 6개나 붙은...) 곡이다.
1.
이 노래는 404를 각 마디의 첫 가사로 삼는 랩 스타일의 코러스, '나 잡아봐라 off the Wi-Fi'의 음률을 가진 가사로 시작하는 벌스, Bye! 라는 소리와 함께 다소 몽환적(?)인 목소리로 부르는 프리코러스로 구분된다. 그런데 코러스의 가사 대부분은 D♭음으로만 처리되어 있고, era era와 같은 부분에서 종지가 B♭이다. 이것으로 봐서는 이 노래가 E♭자연 단음계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리코러스에 들어가면 난데없이 C음이 나타난다. 이 음은 E♭ 단음계에서 나올 수 없는 음인데, E♭ 을 근음으로 하는 음계 중 C를 포함하면서 최소한의 가정을 통해 뽑아낼 수 있는 결론은 프리코러스의 음계는 다름아닌 "E♭ 도리안 모드 (dorian mode)"이다. 도리안 모드는 단음계에 가까운 것 같지만 약간 몽환적이면서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데, 랩으로 404 new era, era를 힘차게 외치는 코러스에 들어가기 전의 감정을 고양시켜놓고 폭발시키기에 딱 알맞은, 프리코러스로 딱 적절한 음계일 수도 있겠다.
즉 E♭ 자연단음계와 도리안 모드를 오가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데, 자연단음계 부분이 강렬한 랩과 춤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어서 슬프고 구성지다는 생각은 전혀 안든다. 그 결과 노래 전반에 걸쳐서 불안하면서도 힘차고 감각적인 느낌이 계속 이어진다. (이것이 Z세대의 모습인가?)
2.
벌스와 프리코러스, 코러스 모두 코드 진행은
| E♭m7 C♭m7 B♭m7 | B♭m7 C♭m7 E♭m7 |
의 반복이다. 그나마도 브릿지는
| E♭m7 | B♭m7 |
니까 사실상 똑같은 것이다. 똑같은 게 반복되면 원래 지루한 법이다. 그런데 단조로울 것 같은 이 대칭적인 반복은 곡 내내 전혀 지루하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C♭m7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E♭ 자연단음계와 도리안 모드에서 7도까지 쌓아올려 만든 다이어토닉 세븐스 코드 (diatonic seventh chord)에서 C♭m7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난데 없는 코드를 어떻게든 전통적인 화성 분석에 끼워 맞추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단, 이런 접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의 작품으로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재즈와 R&B, 네오 소울에서도 자주 사용된다는 병행 화성(parallel harmony)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동일한 코드의 모양을 유지한 채 음장만 위나 아래로 평행 이동하는 것인데 C♭m7은 이웃한 B♭m7와 반음 차이일 뿐이다. 즉 일종의 크로매틱 플레닝(chromatic planing)에 해당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화성학의 규칙에 따르면 위반이다. 하지만 현대 음악이 왜 고루한(?) 옛 전통을 따라야만 하는가? 의외로 이런 병행 화성은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놀랍게도 영문 위키백과에서는 이 병행 화성이 하우스(house) 음악 장르에서 빈번히 사용된다고 하는데, KiiiKiii의 '404 (New Era)'이 하우스 장르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러니 이런 병행 화성이 곡 전반에 걸쳐 뚜렷하게 반복되고, 너무 지루해질 것 같기 전인 3분 30초가 지나가기도 전에 곡이 끝나 버리면서 좋은 인상만 남게 된다.
3.
여담인데, 빌보드가 선정한 2026년 (현재까지) 최고의 K-pop 2위는 Hearts2Hearts의 'Rude!'이다. 놀랍게도 이 곡 역시 하우스 장르이면서 B 도리안 모드 기반의 곡이다. 이 정도면 올해 상반기 K-pop 업계에 하우스 붐이 일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