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음성에 기반한 복잡한 언어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꼽히기도 한다. 언어(言語)라는 큰 무기를 통해 자연의 위협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서들은 자신들의 발원지인 아프리카를 떠나 자신들이 살아갈 터전을 찾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초목이 무성한 곳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지역, 광활한 사막과 고원, 그리고 망망대해를 지나 지구 전역에 사람 사는 마을들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자연 경계를 통해 만들어진 구획 내에서 인접한 마을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고, 점차 그 문화권에서만 효율적으로 통하는 음성 언어들이 각기 개발되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입말로 정착하게 되었다. 비록 『구약성서』에서는 이와 같은 언어의 분화를 바벨 탑 사건에 비유하여 굉장히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만, 지역마다 기후와 지형이 다른만큼 사람들의 발음, 문법, 말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뒤이어 발명된 문자(文字)는 인류 문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현자(賢者)들의 불완전한 기억력에 의존하는 구전(口傳)을 통해서만 가르칠 수 있었던 지식은 이제 문자라는 형태로 기록된 매체를 통해 반영구적으로 보존되고 변함없이 전수될 수 있었다. 물론 문자 역시 언어만큼이나 문화권의 특징과 사용 재료의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형태로 개발되었다. 에를 들어, 수메르 문명은 점토판에 꾹꾹 눌러 남긴 쐐기 문자를, 이집트 문명은 파피루스와 벽에 그림으로 그려낸 신성 문자(hieroglyph)를, 황하 문명은 거북이 등껍질에 새긴 갑골문(甲骨文)을 발명해냈다. 이들은 문자 하나가 하나의 개념을 담고 있는 표어문자(表語文字)로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기록해야 할 정보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었을 테니 제한적인 정보를 구성하는 개별 개념을 하나의 문자와 대응시킴으로써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문자를 통해 기록해야 하는 정보의 양과 질은 전에 없이 높아져야 했고, 인류는 더 이상 표어문자 체계로만 그 모든 기록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문자와 개념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는 대신, 사람들은 문자에 음성을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표어문자를 쓰던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자신들이 쓰던 문자에 음성적 요소를 결합시켜 사용하곤 했다. 예를 들어 갑골문을 기원으로 하는 중국의 한자(漢子)는 표어문자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문자가 가진 음성적 요소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형성(形聲)의 원리를 통해 수많은 문자들을 창안해 내었다. 하지만, 중근동 지역 사람들 대부분은 표어문자 체계를 버리고, 문자가 개념이 아닌 음성을 담는 그릇으로 쓰이는 표음문자(表音文字)를 채택하게 되었다. 표음문자의 시초 중 하나는 페니키아 문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그리스에 수입되면서 그리스 문자가, 이것이 에트루리아인을 통해 로마에 전달되면서 라틴 문자가 탄생하였다. 


단, 페니키아 문자와 그리스/라틴 문자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자음(子音)만 있었다는 것이고, 후자에는 모음(母音)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훗날 자음만 있는 문자는 중근동 지역에서 여럿 사용되다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 무함마드(محمد)를 따르는 무슬림의 언어인 아랍어를 적는데 쓰인 아랍 문자에 모두 휩쓸렸고, 언어학자들은 아랍어의 첫 네 문자인 아(ا), 브(ن), 자(ج), 드(د)를 따서 자음만 있는 문자를 아브자드(abjad)라고 불렀다. 한편 자음과 모음을 같이 가진 문자는 시조격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첫 두 문자인 알파(α)와 베타(β)를 따서 알파벳(alphabet)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문자에 모음을 추가하는 다른 방식도 있었다. 고대 에티오피아와 인도 사람들은 모음을 지시하는 문자를 새로 만들 것이 아니라 자음 주변에 특수한 기호를 붙이는 것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자음 문자 자체가 모음을 가진 하나의 발음을 표현하되, 다른 모음으로 발음하고 싶을 때 기타 부호를 붙임으로서 다르게 읽을 것을 지시할 수 있는 표음문자를 아부기다(abugida)라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암하라어를 표현하는 그으즈 문자의 첫 네 문자인 아(አ), 부(ቡ), 기(ጊ), 다(ዳ)를 딴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약 7,000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표어문자이든 표음문자이든 꽤나 많은 문자 체계가 지구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다소 충격적이게도(?) 현재 사용되는 문자 체계는 150여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서로 다른 수많은 언어들이 동일한 문자 체계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한글이 거의 99.9%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 쓰이기에 한국어 화자들에게는 다소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럽 사람들에게는 이게 별 희한한 일이 아니다. 유럽에는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면 문자 체계는 유로화에 차레대로 쓰여 있는대로 라틴 문자, 그리스 문자, 그리고 키릴 문자 뿐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문자 체계의 수가 언어의 수보다 현저히 적다는 것은 모든 언어 문화권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기에 적합한 문자를 개발할 필요는 없었으며, 만일 주변부에서 유용한 문자 체계를 접하면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표음문자 체계가 보편적으로 자리잡으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음성은 개념에 대한 이해와 관점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문자라 할지라도 그것이 뇌를 통해 떠올려야 하는 개념이 아니라 입을 통해 발음하는 소리라면 거부감 없이 빌려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수용 과정이 자발적이었는지 강제적이었는지는 각 문화권의 역사에 따라 다르긴 했으나, 대개 패권(覇權)을 행사하는 문화권의 문자 체계가 주변 문화권으로 확산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 패권국의 문자 체계가 그대로 수입되거나 기존 문자 체계를 교체하는 경우 


유럽에서는 라틴어가 교회의 언어로서 오랫동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라틴어는 교회와 지식인층의 언어였을 뿐, 평민들은 교회 라틴어와는 다른 세속 언어를 사용했고, 그 언어 체계는 라틴어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즉, 라틴어에 쓰인 라틴 문자만으로는 세속 언어를 표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교회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문자의 사용과 기록 매체의 생산 및 공유가 일반층에까지 확대되면서 각 나라는 오랜 기간 익숙하게 사용했던 라틴 문자 체계를 계승하되, 라틴어에는 없는 모국어의 음운(音韻)을 표현하기 위해 천 년 이상 사용된 라틴 문자에 변형을 가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라틴어의 직계 후손인 로망스어군(Romance languages)에 속하는 스페인어의 경우, 자주 등장하는 유성 경구개 비음(鼻音) [ɲ]을 표기하기 위해 n 위에 물결표(~)를 붙인 ñ을 사용했고, 역시 같은 로망스어군의 하나인 루마니아어의 경우, 치경 파찰음(破擦音) [ts]을 표기하기 위해 t 밑에 쉼표(,)를 붙인 ț을 사용했다. 즉, 이들 언어 표기에 쓰인 문자는 일종의 라틴어 확장판이었다. 


로망스어군이 아닌 언어의 경우, 과거에는 라틴 문자가 아닌 다른 문자로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했음이 분명하지만 라틴어의 영향력 아래 라틴 문자로 표기 체계를 바꾼 경우가 무척 많다. 이 경우에는 보다 적극적인 문자의 변형이 일어나는데, 슬라브어군에 속하는 체코어에서는 같은 치경 파찰음 [ts]을 표기하기 위해 c 위에 캐런(ˇ, caron)를 붙인 č를 사용했고, 서(西)게르만어군인 독일어에서는 전설 원순 중고모음 [ø]을 표기하기 위해 o 위에 트레마(tréma)라고도 불리는 점 두개(..)를 붙인 ö를 사용한다. 북(北)게르만어군인 덴마크어에서는 전설 비원순 중저모음 [ɛ]을 표기하기 위해 아예 a와 e를 합쳐 ae라는 문자를 새로 만들어 쓴다. 


근대 이후에 라틴 문자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경우에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인데,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의 주도 하에 아랍 문자에서 라틴 문자로 바뀌는 문자 개혁을 경험한 튀르키예어에서는 후설 비원순 고모음에는 꼭대기에 점이 없는 ı를, 전설 비원순 고모음에는 꼭대기에 점이 있는 i를 구별해서 쓴다. 카자흐어의 경우 소련의 지배 하에 놓이면서 키릴 문자를 받아들였고, 자신들의 유성 구개수 마찰음(摩擦音)을 표기하기 위해서 키릴 문자 г에 하이픈(-)을 그은 ғ를 사용해왔는데, 최근 라틴 문자로 개혁하기로 하면서 이 발음 표기를 위해 g 위에 브레베(˘, breve)를 붙인 ğ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왕조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었던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국가로 분류되지만 한자 문화권에 속하며, 13세기경부터는 한자를 바탕으로 베트남어를 표기하는 쯔놈(字喃)을 고안하여 프랑스 식민 치하에 놓이기 전까지 사용해왔다. 기존 한자 체계에 베트남어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한자의 제작 원리를 이용해서 추가한 것이 쯔놈이었기에, 쯔놈은 일종의 한자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금(金)나라를 세운 여진과 서하(西夏)를 세운 탕구트족 역시 한자를 기반으로 한 자신들의 여진 문자와 서하 문자를 개발하여 사용하였으므로 이 예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쯔놈과 여진 문자, 서하 문자는 현재 사용되지 않는 과거의 문자 체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편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였던 이란 지역의 페르시아어는 최종적으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게 되면서 아랍 문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아랍 문자를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의 언어 체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몇 가지 변형을 시도하였다. 무성 양순 파열음(破裂音) [p]과 치경 파찰음 [ts], 유성 후치경 마찰음 [ʒ]을 나타내기 위해 점 세 개를 찍어 페(پ), 체(چ), 제(ژ)라는 문자를 만들었고, 무성 연구개 파열음 [k]과 유성 연구개 파열음 [g]은 커프(ک)와 거프(گ)를 씀으로서 기존 아랍 문자의 커프(ك)와는 생김새를 달리하였다. 그런데 이 페르시아어의 영향력은 아랍 세계 밖에서 굉장했는데, 아랍인들을 내몰고 성지(聖地)를 차지한 튀르크계 사람들이나 힌두교도들의 땅이었던 북인도를 다스리게 된 몽골계 사람들은 모두 궁정의 공식 언어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페르시아화된 상류층 문화로 인해 이들이 사용하던 문자 체계 역시 아랍 문자가 확장판 버전인 페르시아 문자 체계를 받아들였는데, 현재 파키스탄의 공용어로 사용되는 우르두어는 페르시아 문자에는 없는 북인도 언어의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 추가 확장을 시도했다. 특히 북인도 언어에 있는 권설음(捲舌音)을 표기하기 위해 기존 문자에 토에(ط)를 붙여 테(ٹ), 덜(ڈ), 레(ڑ)를 추가했다. 


이상의 다양한 예에서처럼 패권국의 문자가 이식되거나 기존 문자 체계를 바꾸는 경우, 패권국의 문자가 표현해줄 수 없는 음운을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문자의 변형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2. 기존의 문자가 패권국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을 때 


아무리 주변에 강한 패권국이 있다 하더라도 기존의 문자 체계가 대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대개 이는 그 국가가 다른 패권국이거나, 혹은 다른 패권국의 문자에 이미 깊이 영향을 받아 고쳐지기 힘든 경우에 해당한다. 


3. 패권국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자가 창안되거나 과거의 문자가 부활하는 경우 


드물게는 새롭게 창안된 문자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경우가 있다. 먼 곳도 아닌 바로 한국어의 한글이 아주 대표적인 예인데, 우리나라는 수천 년간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 중국과 국경을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1443년에 창제되어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한글)은 600여년 동안 살아남았고, 심지어 한자의 혼용(混用)과 병서(竝書)까지 배격한 끝에 21세기 현재 한국어를 기술하는 유일한 문자 체계가 되었다. 그런데 한글의 경우, 한반도 왕조들이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얼마간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치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용하는 중국어와 일본어의 발음을 반영하는 표기가 남아 있지 않다. 물론 세종대왕은 한자어의 발음을 교정하겠노라고 『동국정운(東國正韻)』을 편찬하여 훈민정음에 추가적인 변형을 가하고 부호를 추가하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그러한 시도가 한국어 표기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한자어의 한국어 독음은 이미 중국어 독음과는 멀어질 대로 멀어졌고, 발음조차 상이하다. 또한 일본어는 한국어에 화제한어(和製漢語)와 일본식 표현을 남기는 수준의 영향만 끼쳤을 뿐, 일본어의 음운이 한국어 표기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인도의 주요 공용어인 힌디어와는 무척 다르다. 무굴 제국 후기 힌두교도들은 문화 운동을 벌여 당시 무굴 제국에서 널리 쓰이던 우르두어 표기를 페르시아 문자가 아닌 인도의 고전 문자인 데바나가리(देवनागरी) 문자로 표기하였고, 기존의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아 쓰이던 우르두어 어휘를 고전 산스크리트어 기반 어휘로 대체하는 일종의 언어 개혁을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무굴 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 아대륙을 통치하고자 했던 영국의 지원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기존 우르두어와는 유사하지만 다른 외형을 가진 힌디어가 탄생했다. 힌디어의 탄생이 데바나가리 문자가 인도 사회에 전면적으로 다시 등장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다시 등장한 데바나가리 문자로는 당시 북인도에서 사용하던 언어를 표현하기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 북인도는 이미 11세기 초반부터 이슬람 왕조의 침입을 받으면서 서서히 페르시아화되었기 때문에, 수백년 간 페르시아어가 영향을 미치면서 페르시아어의 발음 요소들이 오랫동안 쓰였던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발음 요소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인도에서 쓰인 데바나가리 문자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북인도 언어의 고유한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 페르시아 문자에 부호를 첨가한 우르두어와는 달리, 힌디어에서는 북인도 언어에 스며든 페르시아어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 힌디어 문자에 부호를 추가한다. 이게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국어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 빌린 외국 문자에 부호를 추가한다.'와 '고유한 외국어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 자국 문자에 부호를 추가한다.'는 것은 정반대의 변화이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어에 있는 유성 구개수 마찰음 [q]과 무성 순치 마찰음 [f]을 표현하기 위해 커(क)와 퍼(फ) 왼쪽 아래에 누크타(नुक़्ता)라고 불리는 점을 찍어 क़와 फ़를 만들었다. 게다가 몇몇 발음 표기는 근현대 인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영 제국의 통치 역시 반영하고 있다. 영어에 쓰이는 후설 원순 저모음 [ɒ]은 인도의 모음 체계로 명확하게 표기하기에는 좀 애매했던지 장음 아(आ)에 반달 부호를 붙인 ऑ를 창안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한글에서는 이러한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어에 있는 권설음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문자 표기법이 도입된 적은 없었고, 일본어의 탁음인 ざ행에 대응되는 유성 치경 마찰음 [z]을 표현하기 위해 문자에 변형이 일어난 적도 없었다. 세계 공용어로서 한국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영어 발음의 적극적인 표현을 위해 이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반치음(ㅿ)이나 연서 표기(ㅸ, ㆄ 등) 및 ㅅ계 합용병서(ㅺ, ㅼ, ㅽ 등)를 부활시키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여전히 이것은 일부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여전히 우리는 현행 한국어 정서법의 테두리 내에서 외래어를 표기하는데 익숙하다. 


한글과 데바나가리에 이러한 차이가 생긴 이유는 언어 생활에 외국어가 끼친 영향의 정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반도의 사람들을 통치한 것은 역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인이었다. 비록 중국의 몇몇 왕조가 한반도에 내습(來襲)하여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있었으나 이들이 거주민들의 언어 생활까지 바꿀 정도의 강력한 행정력을 펼친 적은 없었다. 한반도의 통치 계층이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경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의 일제 강점기 시절이 유일했는데, 그 기간 중에 한국어 교육이 전면 금지되고 일본어가 강요된 것은 일제가 황국 신민화 정책을 펼친 1930년대 중후반부터였으며, 그나마도 일제의 패망으로 한국어는 그 지위를 곧 회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어 표기에 쓰이는 한글에는 외래어 표기를 위한 특별한 확장 표기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인도는 오랜 기간 이슬람 왕조의 통치를 받으면서 상층 언어인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받은 우르두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고, 이후 대영 제국의 지배는 70년간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영 제국과 영어의 영향력은 일제와 일본어의 영향력에 비하기 민망할 정도로 세계적이고 더 거대했다. 그 결과 힌디어 표기에 쓰이는 데바나가리 문자에는 힌디어에 영향을 준 페르시아어와 그 페르시아어에 영향을 준 아랍어, 그리고 영어의 영향력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문자의 변형을 받아들인 것이다. 


4. 일본어의 가타카나 


그런데 위의 예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변형이 일어난 경우를 일본어의 가타카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언어들과는 달리 일본어에는 고유어를 표기하기 위한 히라가나(ひらがな)와 외래어 표기에 쓰이는 가타카나(カタカナ)라는 두 가지 표기법이 공존한다. 그런데 일본어 고유 발음의 변화는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는 반면 일본의 외래 문화 접촉 경험은 그에 비하면 굉장히 급격하고도 빠르게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만큼 히라가나의 변형은 굉장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가타카나의 변형은 기존 일본어 음운론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외국의 새로운 음운을 표현한다는 미명하에 변형에 좀 더 개방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언어의 경우 외국어 표기를 위해 문자에 변형을 가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전체 문자의 확장이 불가피한데, 일본어의 경우 애초에 두 문자 체계이고 한 문자 체계는 보존한 채 특정 목적을 가진 다른 문자 체계만 확장하는 것이니 부담이 덜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지금은 더 이상 쓰이지 않지만 유성 순치 마찰음 [v]는 기존 가나로는 표현할 수 없었으나 ウ에 탁점을 찍은 뒤 ア행 문자를 작은 글자인 스테가나(捨て仮名)로 붙여 표현하는 방법이 고안되기도 했다. 사실 ア행 문자를 스테가나로 적는 것 자체가 히라가나에서는 생소한 표기이다보니 일종의 변형 혹은 확장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ti]나 [di]와 같은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 ティ나 ディ로 표기하는 것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 


일본은 1945년 패망 이후 미 군정의 영향에 놓였던 때를 제외하면 통치 계층이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는 일본인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그나마 미 군정의 통치는 만세일계(萬世一係)라고 하는 일본의 천황 체제를 유지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일본 문화의 말살이나 대체를 기획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외국어를 표현하기 위한 방편을 모색하기 위해 자신들의 문자 체계 중 하나의 표기법을 기꺼이 확장한 것이다. 일본어에 가타카나로 표기되는 외래어가 별다른 번역 없이 일본어에서 활발하게 사용된다는 점은 이러한 가타카나 표기법 확장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5. 결론


이를 통해 문자 체계의 변형과 확장은 그 문자가 표기하는 언어, 그리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모국어 화자들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배경 지식으로 활용한다면 외국어를 익힐 때 드는 여러가지 의문들, 예를 들면 왜 이런 방식의 표기가 필요한 것인지, 왜 이런 표기는 이런 발음을 지시하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