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으뜸가는 보물이 화마(火魔)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그저 발만 동동 굴리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어제 새벽의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의 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이 무너졌다. 역사에 남을 만한 이 부끄러운 상처가 대한민국 국민들 마음 속에 남게 되었다.

1달간의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지 보름도 채 안 되어 듣게 된 이 기상천외한 소식. 외국의 문화재들을 원없이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온 내게 숭례문의 전소(全燒) 소식은 큰 충격이자 아픔이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 좋은 때를 골라 진짜 관광객의 마음으로 서울을 구경하겠노라고 결심했거늘. 화재 소식은 어머니의 꾸지람처럼, 패전(敗戰) 소식처럼, 쇼트트랙 금메달을 강탈당했다는 논란처럼 계속 가슴 속에 남아 어제 하루 동안 내 마음을 음울하게 만들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참으로 오래 된 건물, 보존이 잘 된 건물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도, 살라망까의 신/구 대성당도, 모두 오래되었지만 그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두 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첫번째로 스페인은 원래 관광대국이다. 관광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이미 상당한 혜안을 가진 스페인 사람들이 문화재를 소홀히 다룰 리가 없다. 두번째로 스페인의 건축물은 대부분 석조 건물로 왠만한 전쟁이나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없는 한 외양은 그대로 유지되는 편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한 해 관광객이 600만명이 다녀가는 나라로 경제 규모나 국내에 존재하는 볼거리에 비해 관광산업이 덜 발전한 경우에 속한다. 한국인들도 관광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 '자금성(紫禁城)과 오사카죠(大坂城) 정도는 되어야 관광지로 멋진 곳이지 우리나라 성들은 죄다 작고 볼품없어'라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란 말이다. 사실 최근 뉴스에서 하도 '숭례문, 숭례문' 하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폭증한 것이지 평소에 '숭례문'에 대해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보다 그 이미지를 더 잘 떠올리고는 있어 왔을는지?

그리고 서구의 종교건축물인 대성당과는 달리 한국의 전통 종교건축물인 사찰들은 대부분 목조 건축물이다. 게다가 우리 나라의 사찰들의 경우 규모가 장대하고 웅장하다기 보다는 산세 좋은 수려한 곳에 자리잡은 소규모인 경우가 많아 '평균 이상의 철저한 예방과 관리'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몽땅 타 버리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이치이다. 강원도 산불로 인해 낙산사가 흔적도 없이 잿더미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의 태생이 원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만일 낙산사가 전소하지 않고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그래서 내 생각에는 이 기회에 숭례문의 전소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를 잘 새겨들어야 한다고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지 않는가!

첫번째, 문화재의 복원에 전국민적인 성원을 쏟아야한다. 스페인의 성들도 몇백년 언제나 견고히 서 있어왔던 것은 아니었다. 마드리드의 왕궁(Palacio Real)은 18세기 크리스마스 이브의 대화재로 성 전체를 다시 지어야 하는 대참사를 겪었고,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의 건물 일부는 보수공사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파손되어 있었으며,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도 레꽁끼스따 전후와 그 이후로도 잦은 전쟁과 내전으로 인해 황폐해졌었다.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입으로 인해 수많은 문화재들이 훼손되었고 스페인 내전시기에 문화재들이 겪은 고초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제 화재가 났느냐는 듯, 언제 그런 전화(戰禍)를 맞았냐는 듯 아름다운 자태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문화재들이 있으나 많은 것이 화재와 폭압적이고 잔인한 일제 식민 통치를 겪으면서 훼손 당했다. 숭례문의 복원과 더불어 이 참에 전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문화재들이 더욱 더 옛모습에 가까워지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의 복원 논의는 매우 기쁜 소식이다. 지금 '터', '과거에 있던 자리', '엉터리로 복원된 문화재'에 과거의 모습으로 덮어쓰기해야 할 시점이다.

두번째, 한국인들의 조국의 문화재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태도가 고쳐져야 한다. 서구의 건축물을 바라보며 오리엔탈리즘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입으로 표현하는 관광객들을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에 서구의 건축물이 그렇게 화려하고 클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들이 돌로 아치를 '우연히' 이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사용한 석재가 '우연하게도' 섬세한 조각이 가능한 대리석이었다는 사실 덕분일 뿐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재는 화강암으로 그와 같은 조각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 목조 건물이 발전하고 따라서 높지 않은 건물들이 들어설 수 밖에. 제발 '왜 서양인들이 이런 것을 만들 때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모양 이 꼴이었을까' 이런 생각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우리나라 것에 대해 자신이 없다. 비록 최근 한류로 인해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전보다 증대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아시아 다른 문화권에 대한 자신감일 뿐 아직 서구의 문화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아서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독립문(獨立門)이 개선문보다 불품없고 초라하다고 빈정되는 것, 첨성대(瞻星臺)가 별 볼 일 없이 생겨먹었다는 것, 초지진(草芝鎭)에 가서 여긴 대체 왜 왔냐고 불평하는 것, 모두가 조국의 문화재에 대해 애정이 없어서인 것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분풀이라고 택한 방법이 문화재에 불을 지르는 일이란 말인가. 국보 1호를 분풀이 불놀이 쇼 장소로 택할 정도로 그 사람은 숭례문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번째, 관광명소의 전소에 충격 좀 먹고 정부가 제대로 된 관광지 보존, 유지 정책을 수립하고 더 나아가 발전된 형태의 관광 체계가 자리잡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직 우리나라의 정부 관료들의 생각이라는 게 '우리나라가 관광국은 무슨...' 이런 수준일 것이라는 게 뻔하다. 관광 사업을 위한 예산과 노력을 평가절하할 것 역시 눈에 선하다. 차라리 그런 일에 쏟아부을 노력에 당장 돈이 되는 일들에 힘을 쏟는 게 이득이 된다면서 말이다. 과연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 존재하는 문화재들이 자신들의 가치에 걸맞는 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가? 내가 보기엔 선택받은 '몇몇' 명소들을 제외하고는 찬밥신세이다. 국보로, 보물로, 사적으로 지정하면 대체 무엇하나. 늘 사람의 손길이 가게끔 보살핌을 받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을 보여야 그게 관광명소로서의 가치를 발하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전시행정, 생색내는 유치한 정책, 식상한 발상과 미봉책으로는 우리나라의 관광이 발전할 수 없다. 문화재와 역사에 능통한 사람들로 관광 관련 정부 부서 관료들과 지역 관리 자리들이 채워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관광이라면 '서울, 경주, 절, 백두대간' 밖에 모르는 내외국민에게 신선하고 인기 많은 관광명소와 관광사업을 선 보여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에 스페인 못지 않게 아름다운 문화 유산, 자연 경관이 많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교통 수단과 통신 시설, 사람들의 서비스 정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기에 세계 어느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도 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건 음식의 재료가 아니라 조리사의 실력이다. 앞으로는 전무했던 많은 혁신과 발전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더불어 숭례문이 어서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 세계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길 바란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