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곳곳에서 이 네이처 기사 때문에 한국이 조롱받는다는 식으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사실 이 기사를 면밀히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알 수 있다.


1. 기사의 제목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 대한민국이 창조론자의 요구에 굴복하다)이 너무 자극적이고 감성적이다. 결코 대한민국은 창조론자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 다만 교육과학기술부는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청원이 이미 과학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에 기반한 만큼, 오류 없는 진실을 실어야하는 과학교과서에 이는 논란을 피하고자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마치 창조론자들이 거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혹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뉘앙스를 주는 건 옳지 못하다. 


2. 기사의 부제 (Publishers set to remove examples of evolution from high-school textbooks: 출판사들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진화의 예들을 본격적으로 삭제하기 시작했다.) 또한 선정적이다. 출판사들이 마치 진화론과 관련된 예와 서술을 모두 삭제하는 것처럼 독자를 오인하게 만든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받아들인 청원은 지금까지 2건이며 '말의 진화'와 '시조새'에 대한 내용이다. 대부분의 교과서는 이들 두 예를 삭제하거나 '고래의 진화'와 같은 다른 예로 바꾸었다.


3. 기사 전반부에 왜곡된 사실을 잔뜩 서술하고 있다. But the successes are modest compared with those in South Korea, where the anti-evolution sentiment seems to be winning its battle with mainstream science. 라는 문장을 보면 정말 대한민국 사람이 쓴 글이 맞는지 의심부터 된다. 또한 Creation science has had a growing influence in South Korea, 이라고 하고 있는데 자꾸 이런 문장을 집어넣으면서 악의적으로 '대한민국은 진화론을 외면한 채 창조론에 열광하는 나라'인 양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기사 앞부분을 읽다보면 '아, 이 미개한 대한민국이란!' 하고 개탄할 게 뻔하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악의적이고 선정적인 서술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이 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뒷부분이다. 그동안 진화론이 엄연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실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배워 왔고 또 당연시되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보편적인 믿음(?) 때문에 진화론을 정확하고 제대로 이해시키려고 하는 노력이 미진했음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진화과학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가 10명도 채 안된다는 장대익 교수의 말은 왜 진화론이 대한민국에서 위기에 봉착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에는 창조론이 그런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반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진화론에 항거하는 창조론자들이 더 결집하여 나름의 활동들을 치열하게 전개해 나가는 동안 진화론을 소개하는 교과서의 내용은 구닥다리로 전락하여 현재 학계에서는 별로 다뤄지지도 않는 고루한 오류들을 담고 있다든지, 아니면 진화론에 반하는 사람을 단순히 '유사과학자!' 라고 비난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창조론자들이 더 호들갑을 떨고 이슈를 만들었으면 모를까, 진화론은 상대적으로 '우리는 합리적인 진실이야'라고 자기위안하며 그들의 도전에 대해 별다른 방어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종교개혁 시기에 로마 가톨릭은 들불처럼 번지는 프로테스탄트의 항거에 맞대응하기 위해 교황 바오로 3세의 주도로 트리엔트에서 공의회를 열고 반종교개혁운동을 벌였다. 지금 진화론자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기사의 말미에는 Silence is not the answer 라고 적고 있다. 언제까지고 육각수, 음이온 발생, 게르마늄 원적외선 이런 것들처럼 창조론을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이다. 진화론이 과학적이라고 믿는 진화론자 자신들이 그야말로 유사과학에 대해 과학적인 철퇴를 내려야만 대중은 진화론의 손을 높이 들어줄 것이다. 그게 바로 과학 아니겠는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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