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어이름을 쓸 때 하이픈(hyphen, -)을 넣지 않도록 관련 부처에서 권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여권을 새로 만들어 영어 이름을 새로 써야 할 때, 제시하는 영어 표기법 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이름에는 하이픈이 들어가지 않고 죽 이어서 쓰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즉, 영수는 yeongsu 같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 영어 이름은 Sung-Soo이다. 영어 철자만 보아도 정말 예전에 만든 이름이겠구나 싶다. 영국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은 내 이름을 처음 보면 '숭소'라고 부른다 ㅡ 스페인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 및 지난 학기에 만났던 독일 교수도 그렇게 불렀다. 일단 과거 교육부가 새롭게 고쳐 고시한 로마자표기법에 완벽히 위배된다. 그에 따르면 내 이름은 seongsu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철자 표기는 어차피 변천을 겪고 있고, 앞으로 수십년 내에 어떻게 바뀔 지는 모른다. 외국인 지향적인지 아닌지의 차이일 뿐, "내 이름은 성수라고 읽으면 되요. Call me '성수'"라고 하면 다 해결될 문제이다.
문제는 하이픈이다. 하이픈은 아무런 음가를 가지지 않은, 오직 '쓸 때'에만 등장하는 것이다. 한국인 이름에 하이픈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버지가 17년전에 내 여권을 만드셨을 때 관습을 따라 지었던 내 이름에는 하이픈이 존재했다. 그리고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현재 내 여권에도 하이픈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는 있으나마나한 것 같은 하이픈이 왜 내 이름 중간에 떡하니 있어야 하는가 늘 의구심을 가져 왔었다.찾아 보니, 프랑스 사람 이름에 하이픈이 들어간 이름이 많다. 예를 들면 Jean-Marie, Antoine-Laurent 등등. 우리 실험실에서 몇 달간 연구를 하고 돌아갔던 독일인 학생 이름도 Karl-Heinz였다. 우리는 그를 '카를'이라고 불렀는데 유럽 사람의 이름이야 하이픈 앞에만 부르든 뒤에만 부르든 어색하지 않다. 그러ㅏ 우리 나라 사람의 이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가 나한테 '성'아! 혹은 '수'야! 라고 말하면 약간 못 알아들을 수 있다. 어색하기도 하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읽었는데 거기서 하는 말이, 외국인들은 하이픈의 의미가 자신이 받은 두 가지의 이름을 하나로 잇기 위해서라고 했다. 영어에서 하이픈을 쓰는 경우는 서로 다른 두 단어 혹은 접두사와 단어를 연결하여 하나의 단어를 만들 때 쓰는 때이다. 예를 들어 good-looking, self-centred, ex-boyfriend, one-year-old 등등. 그들은 이름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Jean-Marie는 Jean이라는 이름과 Marie라는 이름을 모두 받아 아예 '장 마리'가 된 것이다. 두 이름 모두 가지기 위한 방책으로 하이픈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내 이름도 어떻게 보면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름을 합쳐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내 이름 뒷 글자인 '수(秀)'는 내 돌림자 '수(洙)'에서 비롯되었고, 앞 글자인 '성(聖)'은 뒷 글자에 맞춰서 할아버지가 지어주셨기 때문이다. 한국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성'은 지어주신 이름이고, '수'는 전통적으로 물려받은 이름인 것이다. 따라서 '성수'라는 이름은 불리기에는 하나로 불리지만 사실 두 개의 이름이 함께 불리는 것이라고 봐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름 중간에 하이픈을 넣는 것도 어색한 일은 아닐 게다. 물론 외국인 중에는 하이픈이 들어간 내 이름을 보고 Sung이라고만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하이픈이 있으니 Soo라는 게 동등하게 붙은 이름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나마 하이픈이라도 없었으면 Soo는 아예 중간 이름(middle name)이 되어 평소엔 불리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한국어 낱말을 외국어로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사람 이름은 어떻겠는가. 로마자 개정 및 여권 영문 표기 수칙 제정 등은 다 이를 위한 노력일 것이다. 어깨점 및 각종 부호를 영문 표기법에서 모두 없애버리면서 하이픈도 지금은 '반려(反慮)'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다. 그래도 서양의 하이픈 사용이 한국식 이름에 돌림자라는 매우 구체적인 전통을 밝힐 수 있는 방편로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왕 이렇게 된 거 내 이름에는 하이픈을 남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