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에픽하이가 모 신문 기사에서 더 이상 음반 작업을 해서 앨범을 내고 싶지 않다고 심경을 토로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내용인즉, 최근 장기간 불어닥친 음악계의 불황으로 인해 앨범 판매도 저조한데다가 이전과는 달리 음악의 소비와 판매 패턴이 앨범이 아닌 음원으로 '쪼개어' 지면서 상대적으로 앨범의 중요성이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일진대 아무리 정성을 들여 완결된 하나의 앨범을 만들어낼 지라도 구매자들은 앨범의 철학에는 관심이 없고, 앨범에서 가장 끌리는 몇 곡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니 제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맥이 빠진다는 것이다.

김건모, 조성모 이럴 때만 해도 가수의 앨범이 1년에 100만장 이상 팔리는 현상은 기이한 것이 아니라 인기만 좋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앨범 판매량이 10만장만 넘어가도 대박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정말이지 100만장 이상 팔리는 앨범은 수년 째 존재하지 않고 있다. 사실 앞으로도 그런 앨범은 없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슬프게도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앨범을 사서 듣지 않는다. 예전에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려면 그 곡이 들어 있는 앨범을 사면 되는 것이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고,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mp3의 등장과 인터넷의 발전은 '앨범 중심'의 가요계를 뒤흔들고 급기야 쇠락하게 만들었는데, 인간의 정말 기본적인 본성의 측면에서 CD는 mp3에게 필연적으로 질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선택성'과 '편리성' 때문이다.

대중은 TV나 라디오에서 곧잘 내보내 주는 노래를 자주 접하고 인터넷의 배경음악이나 업로드, 링크된 음악 파일이나 그것이 담긴 동영상 파일에 익숙해졌다. 이런 매체에서 앨범 전곡을 감상하게 해 주는 것은 드물고 거의 '곡 단위'로 감상의 길이가 대폭 줄어들었고, 때문에 앨범 중에 맘에 드는 한 곡을 위해 (그 외에 몇 곡이 더 포함되어 비싸진) 앨범을 사야한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다. 마치 딸기맛 캔디가 먹고 싶은데 정작 사탕을 사러가면 포도맛, 살구맛, 커피맛 등등이 잡다하게 함께 묶인 사탕 꾸러미를 사야한다고 할 때, 그 때의 난감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앨범을 기획하고 구성했느냐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레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듣고 싶어하는 '곡' 중심으로 우리의 시야와 생각이 파편화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LP나 CD의 트랙의 일부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독립된 파일로서의 음악은 현대 문명의 발전으로 거의 독립 만세를 외칠 때가 되었는데, 압축 기술 발달과 기기 장치의 발달로 인해 수백 곡의 다양한 가수들의 다양한 노래를 앨범이 아닌 파일의 형태로 언제나 들고 다니며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와중에 앨범을 감상하기 위해 LP나 CD를 따로 장전해야 하는 그런 수고를 기꺼이 감당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자연히 사람들은 파일 중심의 감상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앨범'의 중요성은 희석되거나 거의 무시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길거리 감상자 중에는 앨범 단위로 파일을 구별하여 집어넣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곡들을 잡다하게 집어넣고 심지어 거기서 모자라 'Shuffle(무작위 순서 진행)' 기능까지 활성화시켜 놓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진단과 분석은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라 신문과 평론지에서 무수히 떠들어댔던 내용이라서 이것이 나의 생각인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인지는 더 이상 구분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머리 속에 확고해 진 일종의 '신념'이다.

그런 내가 최근에 앨범을 CD로 구입하기 시작해서 CDP로 듣고 있다. 물론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CD 앨범을 듣기 위해 CDP도 새로 샀고, 지금은 앨범도 10장 이상으로 불어 있다. 애호가라고 치기엔 너무 초라한 수치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100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10장 더 가지기는 쉬워도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이 10장 이상 새로 가지는 것은 매우 큰 심경의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앨범에 대한 강한 욕구가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그건 순전히 재즈 때문이다. 이전 컴퓨터에는 재즈 곡 몇 곡들이 다운로드 되어 심심하면 재생 목록에 추가해서 듣곤 했다. 그러다가 앨범 구입을 결심하기에 이르는데 여기에 일조했던 것은 '재즈동아리 JIVE 회원들의 영향력 + CD 음악 감상에 대한 호기심 + CD를 사서 들으면 음악에 대해 뭔가 아는 사람인 것 같이 행세할 수 있다는 허영심'이었다. 음악이나 앨범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순전히 외부적인 영향으로 앨범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 3학년 때 용기를 내어 인터넷으로 CD를 구입했는데 Bill Evans의 Riverside 4대 명반이라고 일컬어지는 앨범들도 그 때 모조리 산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몇 개의 앨범을 더 사고 수십번 듣고 나서 나중에 조금 깨닫게 되었다. '올바른 감상 방식의 기준이란 없지만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라는 것이다.

LP에서 테이프로, 테이프에서 CD로, CD에서 컴퓨터 파일로, 음악을 담는 그릇은 수십 년 동안 변해 왔지만, 음악가들이 '앨범'이라는 하나의 정리된 형태로 그러한 그릇에 음악들을 담아 내놓는 관행은 변하지 않았다. 더러 싱글 앨범이라고 해서 아주 적은 수의 곡들만 담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그런 가수들도 정규 앨범을 꼭 낸다. 즉, 다양한 방식의 음악 거래와 감상이 이뤄지고 있지만, 앨범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음악을 시장에 내놓는 모습은 변치 않았다는 것이다. 괜히 사진첩과 같은 뜻의 Album이 아니지 않은가. 사진첩에는 아무런 사진이나 무작위적으로 들어가 있지 않다. 최소한 연대기 순서로라도 사진이 배열되어 있다. 특별한 기억을 담은 사진들, 특별한 장소, 특별했던 체험들 이런 것들이 한 권의 사진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양하고 절대로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음악들이 두루 들어가 있지만, 그것들이 정말 무작위적으로 한데 어그러져 놓은 것은 아닐 테다. 따라서 감상자들이 어떤 곡을 들을 때에 이 곡이 담긴 앨범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감상한다면 그 곡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의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교과서를 아무렇게나 펴서 나온 내용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를 파악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왼편이나 오른편 위에 쓰여 있는 단원명을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곡이 어떤 앨범에 속했는지를 알게 되면 개별적인 곡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여러 곡들을 통해 묶음인 앨범의 의미를 도출해내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이게 바로 앨범 제작자들이 요구하는 바 아니고 무엇이겠나.)

음반 제작자들이 현대 감상자들의 모습에 혀를 차며 개탄해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물론 당장 그들의 손에 쥐어지게 될 돈의 액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우는 소리를 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사람들이 '앨범'의 존재를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다. 단지 몇 번째 앨범인지 숫자 n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이 앨범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동기에 의해, 어떠한 방식과 체험으로 제작되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개별적인 곡 몇몇의 호불호에 따라 가수의 능력과 자질을 판단하는 수준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 보면 음악 앨범도 하나의 상품이다. 완전하게 조립되고 하나의 제품으로 탄생된 그런 상품 말이다. 각 곡들은 하나의 제품을 온전하게 이루는 부분들이자 중요 요소들이다. 잘 만든 앨범이란 완벽한 상품의 모양을 갖췄으면서 각 부분들의 기능과 모양새가 매우 좋고, 그것들간의 연결과 조화가 보기 좋은, 그런 것이 아닐까? 이를 테면 자동차 같은 것이다. CD를 사들이는 것과 자동차를 사들이는 것은 들이는 돈의 규모만 제외하자면 약간 비슷한 것 같다. 그에 반해 앨범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개별적인 곡을 듣는 것에만 그치는 것은 마치 어떤 자동차의 어떤 뛰어난 부품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A라는 차는 엔진의 능력이 탁월해서 엔진을 떼어 오고, B라는 차는 핸들이 부드럽게 잘 돌아가서 핸들만 떼어 오고, C라는 차는 앞유리를 닦아내는 와이퍼의 기능이 우수해서 와이퍼만 떼어 오고, 이런 식으로 부분만을 모아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이런 컬렉션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것이고, 그 개별적인 것들은 감상자 개인이 생각하기에 최고라 생각하는 선호할 만한 것이므로 이런 모음은 충분히 감상할 만한 좋은 묶음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일관성이 없다. 하나의 유기적인 자동차게 될 수는 없다. 단지 좋은 부품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음악가를 통해 음악을 기억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음악가를 기억해 내는 풍조가 만연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실제로 앨범을 사서 듣게 되면 이 음악가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잘 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자연히 취득하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음악가가 만들어 내는 음악의 특징이나 메시지를 추출해 내는 데 이용하게 된다. 이러한 연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결국 음악가를 이해하게 되고 이로부터 나오는 음악들을 그러한 맥락 하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mp3 파일로 만든 여러 가수들의 여러 곡들을 무작위로 들었다고 해 보자.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곡들만을 선별하여 저장 기기에 저장하고 감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여러 곡들을 그냥 무작위로 듣는다. 이것은 음악가와 음악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대신 음악과 감상자의 관계를 더욱 강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즉, 앞뒤와 전혀 상관 없는 어떠한 음악이 흐르는데, 그 순간 감상자의 뇌에서 이 음악에 대한 판단이 바로 서게 된다. 그리고 다음 곡으로 넘어 간다. 전혀 다른 음악가. 전혀 다른 음악. 음악에 대한 정보나 지식은 필요 없다. 단순히 다음 곡이 진행 되기 전에 충분히 즐기면 땡이다. 감상의 호흡이 짧아지게 되니까 판단의 깊이도 얕아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비발디의 음악을 예로 들면, 비발디의 협주곡은 음악은 정말 하나같이 비슷하다. 그 당시의 음악이 다소 그러했고, 게다가 비발디는 다작의 작곡가였는데 형식도 비슷하고 악기의 구성이나 악곡의 진행도 비슷한 곡이 아마 수백 개는 될 것이다. 비발디의 음악을 꾸준히 들었거나 앨범을 사서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그러한 음악이 들릴 때 비발디를 연상시키면서 이 곡이 어떤 식으로 진행 되고, (만일 클래식 음악의 고수라면) 또한 어떠한 음악적 가치를 지니는지 그 수준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 좋다고 비발디, 헨델, 바흐, 스카를라티 등의 음악가들의 좋은 음악들을 몇 개씩 뽑아 mp3에 집어넣었다고 치자. 음악을 들을 때 비발디를 떠올리게 될까? 아니, 전혀. 단지 '이 곡은 듣기에 좋은데 비발디의 곡이라고 한다.'에서 그치게 된다. 그리고 바흐로 넘어간다. '이 곡 좋네. 누구 거였더라. 바흐 것이지.'에서 그치게 된다. 그리고 헨델로 넘어간다. 이런 식이다.

물론 앨범의 형태가 무조건 CD여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유보적이다. CD를 모두 컴퓨터 파일로 변환해서 mp3에 넣고 다닌다면 그것은 CD로 듣는 것이나 다를 바가 전혀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CD가 아니라 테이프였다. 테이프 이전에는 LP였다. 즉, 앨범을 담는 그릇은 어떠한 형태이든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CD에서 컴퓨터 파일로 넘어갈 때 각 곡들로 개별화, 심하게 말하면 파편화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여기서부터는 각 곡들이 앨범이라는 하나의 그릇에 온전히 묶일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자유로운 감상자의 배열 편집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앨범'이 가진 고유한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만일 앨범의 가치를 지향한다면 아직까지는 편리성을 그 가치와 맞바꾼 mp3파일보다는 유형의 CD를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앨범의 가치를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무형의 데이터 파일, 혹은 또다른 형태의 그릇이 나온다면 사정은 달라지겠지. 그런데 그런 날이 곧 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이미 어떤 면에서는 CD는 완벽히 DVD에게 그 자리를 내 주었다. 시대는 엄청나게 변하는데, CD가 천년 만년 가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무튼 설이 길어지긴 했지만, 음원 중심의 음악은 즐기기에는 좋지만 음악 그 자체를 바라봤을 때에는 장기적으로는 감상자에게나 음악가에게나 좋지 않은 영향만 끼친다. 오직 이러한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음원을 사고 파는 것을 매개해 주는 사람들 뿐이다. 그 사람들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파는 상품의 가치를 따질 이유가 없다. 오직 이문을 담길 수 있는가가 중요한 거지.

차를 이해하려면 일단 자동차를 사서 몰아봐야 하듯이 결국 음악가의 생각과 음악적 가치에 대해 느끼고 싶다면 앨범을 사서 감상하는 것이 권장할 만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이전에는 갖지 않았던 욕심을 내서 CD를 구매하는 것이고. 그래, 중요한 건 알고 싶어하는 욕심이 작용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즐기고 뱉어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음악에 대한 접근에 대한 본질적 철학의 문제랄까? 그것은 물론 남이 판단할 만한 것은 아니다. 바로 감상하는 개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