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진주엄마님. 우선 홈페이지에 방문해 주시고 궁금한 점을 방명록에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남겨주셨지만, 아이를 키우시는 어머니라면 누구든지 궁금해 했을만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질문에 대해서 하나하나씩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제가 관련 업계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제 의견이 모든 질문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며 당연히 이에 대해 달리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대한 일반적인 과학 상식에 입각해서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구내염 관련 치과 레이저 치료
저도 구내염 때문에 자주 고생합니다. 저는 알보칠을 애용하는 편이긴 한데, 치과에서도 레이저로 구내염을 치료할 수 있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는 처음 접해봅니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치과에서 수술에 사용하는 레이저는 Er:YAG 레이저, 즉 어븀(Er)이라는 원소가 도핑된 이트륨 알루미늄 가넷 (Yttrium Aluminium Garnet, 줄여서 YAG)라는 고체 물질을 통해 생성되는 레이저인데요, 이 레이저의 파장은 물 분자가 최대로 흡수하는 적외선 영역과 비슷한 대략 2940 nm이기 때문에 Er:YAG 레이저는 조직세포 내의 수분을 강하게 진동시켜 세포의 파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Er:YAG 레이저를 쬐어주면 입안 세포가 국소적으로 파괴됨으로서 절제 등의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국소적으로 쬐어주어야 할 레이저 빛이 다른 곳으로 새기라도 해서 촉촉하게 젖어 있는 우리 눈의 망막 세포에 혹시라도 도달하게 되면 원치 않는 문제가 발생하겠죠? 그것을 막기 위해 통상적으로 Er:YAG 레이저 사용시 보안경을 쓰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자녀분 치료를 위해 사용하신다고 하셨던 레이저는 소독용 저출력 레이저라고 하셨잖아요? 검색해보니 저출력 레이저는 위의 수술용 레이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하더군요. 임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저출력 레이저의 파장은 Er:YAG 레이저의 그것보다 훨씬 짧은 632.8 nm (He-Ne), 820 nm (GaAlAs), 904 nm (GaAs) 정도라서 조직세포 내의 물 분자의 진동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효과를 야기할 수 없고, 대신 다른 광화학적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정도의 파장을 가진 레이저가 망막 세포에 끼치는 위험성은 Er:YAG 레이저보다는 상당히 낮아집니다.
물론 레이저의 경우 단위 면적당 쪼여지는 빛 에너지의 크기가 상당하기 때문에, 어떤 파장의 레이저를 쓰든지 간에 레이저를 직접 눈으로 쳐다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레이저가 레이저답게 강한 빛을 쏠 수 있는 이유는 레이저는 빛 파장의 결맞음을 통해 굉장히 강하게 보강 간섭된 빛들이 직진성을 가지고 조사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레이저 빛이 쪼여지는 국소적인 위치 이외의 지역에서는 레이저의 빛 에너지가 거의 전달되지 않아요. 게다가 설령 입안에서 레이저 빛이 반사되어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더라도 인간의 구강 구조상 입으로부터 반사된 빛이 눈으로 전달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레이저 시술이 행해지는 짧은 시간동안 자녀분이 눈을 감고 있었다면 사실상 그 미약한 레이저 빛조차 눈꺼풀에 의해 차단되기 때문에 망막을 통해 눈으로 입사될 레이저 빛 에너지는 거의 0에 수렴합니다.
따라서 치과 소독용 저출력 레이저 치료 중에 자녀분의 눈에 피해가 갈 확률은 '자녀분이 일부러 그 레이저 빛을 눈에 갖다대고 직접 보려고 하지 않는 이상'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만일 문제가 되었다면 시술을 받는 환자보다 시술을 집도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별다른 보호 장치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면 자녀분의 눈 건강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2. 하이라이트 열판
제가 올린 글을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오히려 원적외선은 파장이 길기 때문에 망막 조직세포를 따라 투과가 잘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적절하게 가열되어 붉은 빛을 띠는 물체를 눈으로 본다고 해서 원적외선에 의해 눈이 손상당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만일 그 정도로 눈이 손상될 정도였다면 촛불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눈은 모두 고장이 나야 정상이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3. TiO₂ 도포된 벽지
이산화 타이타늄은 말씀하신 바와 같이 광촉매 특성이 있는 반도체 물질인데 밴드갭에 해당하는 약 3.2 eV의 에너지를 가진 광자를 흡수합니다. 파장으로 치자면 대략 385 nm 이니 청색광에서 약한 자외선 정도에 걸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파장을 가진 에너지가 벽지에 닿게 되면 활성이 일어나겠지요. 관련 광고를 찾아보니 이를 통해 벽에 붙는 오염물이나 미세먼지를 화학적으로 분해시켜 실내 공기질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되어 있는데,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알고 계시다시피 유리창은 400 nm 이하의 빛을 꽤 많이 흡수합니다. 따라서 벽지가 태양볕에 대놓고 노출되어 있지 않는 이상 걱정할 수준의 광촉매 현상이 벽지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사용하는 백열전구나 형광등에 포함된 청색광-자외선은 세기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그로 인해 벽지에서 일어날 광촉매 현상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차라리 LED는 더 안전한 것이, 여러 파장의 빛이 함께 섞여 발광하는 다른 램프에 비해 특정 파장의 빛이 선택적으로 나오는만큼 이산화 타이타늄이 흡수할 만한 파장의 빛은 오히려 더 적게 섞여 방출될 것이기에 문제가 될 가능성은 더 희박해집니다.
무엇보다도 '활성산소 부산물'이라는 정체모를 화학종에 대한 공포감만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활성산소란 일반적인 산소 분자보다 더 불안정한 상태로서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분자와 쉽게 결합하는, 즉 다른 분자를 쉽게 산화시키는 산소 화학종을 일컫습니다. 이런 물질이 설령 벽지에서 발생한다 한들, 공기중에서의 확산을 통해 우리 몸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분자 입장에서는 꽤 오랜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확산하면서 인체에 접근해야 하는데, 애초에 많이 발생하지도 않을 그런 산소 화학종이 용케도 어떠한 화학 반응도 일으키지 않은 채 인체에 도달하여 심대한 문제를 끼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정도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양이었다면, 여름날 피부 보호를 위해 선크림을 바르는 분들은 모두들 과도한 활성산소 중독에 의해 심각한 생물학적 피해를 입었어야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선크림의 무기 자외선 차단제의 주성분은 이산화 타이타늄 혹은 산화 아연(ZnO)인데, 이 두 물질 모두 광촉매로 널리 알려진 흰색의 고체 물질이거든요. 벽지에 바르는 수준보다 훨씬 더 꼼꼼하고 밀도있게 피부에 직접 발라 몇 시간동안 씻어내지 않고 활동한 사람이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계에 수천만명이 넘지만 걱정하시는 바와 같은 문제로 인해 ㅡ 피부 트러블이나 백탁현상, 끈적임을 제외하고 ㅡ 사용을 중지해야 할 만한 사례는 별로 없습니다.
4. 2.4 GHz 블루투스 전자파
전자파 문제에 대해서는 단언컨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블루투스 방식의 무선 조종 자동차를 타고 놀았던 것에 걱정하신다면 지금 당장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부터 발생하는 전자파가 훨씬 더 강하고 영향력이 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 다 큰 문제 없이 건강히 지내고 계시지요? 지금 대한민국에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온갖 전자 기기를 근처에 두며 살아가고 있으나 그정도의 전자파로 인해서 심각한 피해를 보고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인공전파가 뭐가 좋았을까요.' 라고 하시지만 저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인공전파가 뭐가 안 좋을까요?' 그냥 느낌상 안 좋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세기의, 파장의 전파가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공인된 자료는 없습니다. 물론 누가봐도 엄청나게 강한 전력원 근처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장 안에 오래 있어봐야 좋을 것은 없지요 ㅡ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전자 기기의 전자파의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가 사는 공간은 kHz 대의 AM 전파, MHz 대의 FM 전파, 그리고 GHz 대의 무선 통신 전파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파로 인해 인류가 큰 생물학적 피해를 입었다면 전자파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20세기 초반서부터 무수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전보다 소형화 된 전자기기를 더 많이 가지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즉, 우리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ㅡ 전자 기기의 전자파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요.
5. 답변을 마치며
질문을 남겨주신 진주엄마님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 화학제품 내지는 전자기기에 대해 잘 모르시다보니 여러 걱정을 하고 계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달아주신 제품들 혹은 기술들은 이미 수십년간 실생활에서 사용된, 혹은 실험실에서 연구된 제품들이거나 소재들입니다. 이런 재료들로부터 인체에 유해한 것이 발견되었다면 족히 수십년 전에 발견되어 폐기되었음이 마땅합니다. 별다른 탈 없이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것이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사용할 것입니다. 물론 석면(asbestos)과 같이, 오랫동안 유해성을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 발암성이 밝혀진 사례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세계에 하루에 사용되는 수많은 제품과 소재들의 개수와 양을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것에 속합니다. 더군다나 진주엄마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석면과는 전혀 달리 기존에 잘 알려진 과학적 상식으로도 손쉽게 유해하지 않음이 드러나는 사례들이고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고 생활하시면 되겠습니다. 지나친 걱정과 염려가 오히려 불필요한 생물학적 혹은 금전적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누군가가 이러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걱정과 염려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