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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국민생활관에서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공공형 방과 후 학습관'이라고 쓰여진 건물을 마주쳤다. '방과 후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체험관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 '방학(放學)'은 학기가 끝나고 다음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수업을 쉬는 기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방과(放課)'는 그날 수업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방학: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그 기간.
방과: 그날 하루에 하도록 정해진 학과(學科)가 끝남. 또는 학과를 끝냄
왜 똑같은 한자 '놓을 방(放)'을 쓰는데, 어떤 것은 무언가로부터 해방(解放)된 '시기'를 의미하고, 다른 것은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시점'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우리는 '방학 후'라는 말은 안 쓰지만 '방과 후'라는 말은 즐겨 사용한다.
'너 방학 때 어디 갔다 왔어?'라고 묻지,
'너 방학 후에 어디 갔다 왔어?' 이렇게 묻지는 않는다.
'너 방과 후에 동아리 활동 어떤 거 하기로 했어?'라고 묻지,
'너 방과 때 동아리 활동 어떤 거 하기로 했어?' 이렇게 묻지는 않는다.
왜 이런 괴리가 생겼나 생각해보다가, 한자어에 관한 이상한 용례가 발생하면 무조건 일본어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보는 게 이해에 빠르겠다 싶어 일본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일본어에서도 「放課(ほうか)」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일본어 사전 『広辞苑』에 따르면, 이는 우리말 풀이와 동일하게 '당일 수업의 종료'를 의미한다. 그런데 두 번째 뜻풀이는 다소 특이하다:
②(名古屋で)学校の休み時間。
[해석: (나고야에서) 학교의 쉬는 시간]
실제로 나고야를 비롯한 아이치현(愛知県) 지역으로 전학을 간 학생들이 경험하는 낯선 표현 중 하나가 바로「放課」라고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放課라는 말을 단독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放課後(방과후, ほうかご)」라는 표현에만 등장하는데 아이치현에서는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을 放課라고 부른다는 데서 어색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른 지역에서는 10분 휴식을 「10分休み」라고 할 것을 아이치현에서는 「10分放課」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메이지(明治) 시대였던 1873년에 간행된 일종의 초등학교 교사용 핸드북인『小学教師必携』에 따르면, 원래「放課」의 의미는 수업과 수업 사이의 휴식 시간을 의미했다. 다만 그 의미가 남아 있는 곳은 아이치현 뿐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그 의미가 사라지고「放課後」에서나 그 단어의 용례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서양식 학제를 도입한 근대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던 곳은 당연히 일본이었다. 한반도의 근대식 학교 교육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므로, 당시 일본에서 쓰이던 일본제(日本製) 한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이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추측해 보자면, 한반도에서도 본래 방과(放課)는 '수업 중 쉬는 시간', 즉 어떤 '기간(period)'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재미있게도 영단어 vacation에 해당하는 우리말 방학(放學)이라는 한자어는 오직 한국어에서만 그런 의미로 사용된다. 중국어 「放学(fangxue)」는 우리말 '하교(下敎)'에 해당하고, 일본어에서는 「放学」이라는 단어가 개별적인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방과(放課)' 혹은 '퇴학(退學)'의 동의어에 해당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방학(放學)'은 한반도에서 만들어 한국인들만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 한국제(韓國製) 한자어인 셈이다.
도대체 어떤 과정에 따라 '방학(放學)'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을까? 아마도 '방과(放課)'를 참조했을 것이다. 수업 과정을 의미하는 과(課) 사이에 쉬는 시간을 '놓을 방(放)'를 붙여 '放課'라고 했으니, 학기를 의미하는 학(學) 사이에 쉬는 시간을 역시 같은 한자를 붙여 '放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원조에 해당하는 일본에서 그렇게 쓰는지 안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면 그만이니까. 정작 일본에서는 방학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휴식'을 의미하는「休み(やすみ)」라고 쓰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일본어 특유의 훈독(訓讀) 기반 명사형 고유어 단어를 두 음절 이상이 아니면 웬만하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ㅡ 이를테면,「割り引き」를 '할인(割引)'으로 쓰는 것을 상기해보라. ㅡ '휴(休)'라고 쓰지 않고 '방학(放學)'라는 새로운 한자어를 창안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치현을 제외한) 일본 본토에서 「放課」는 '기간'이 아닌 어느 '시점'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자연히 한국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따라 '방과(放課)'는 수업이 끝나는 '시점'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어에서 「放課後」라는 용례가 등장함과 동시에 한국어에서도 '방과 후'라는 표현이 빈번히 쓰이게 되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을 의미했던 '방과(放課)'의 의미는 완전히 잊혔을 것이다. 그러나 방과보다는 덜 빈번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일본에서조차 용례가 없는 '방학(放學)'이라는 단어는 그 와중에도 '기간'이라는 의미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방학(放學)'은 수업을 쉬는 '기간'으로, '방과(放課)'는 학과가 끝나는 '시점'으로 그 의미가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애초에 방(放)이 방생(放生), 해방(解放)과 같이 매어있던 것에서 놓아주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방학(放學)'과 '방과(放課)'의 의미가 자못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어차피 학생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학교의 규율을 따르며 정해진 시간 동안 학교 안에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 '방과(放課)'는 일종의 하루의 매임(課)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방학(放學)'은 (비록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한자어는 아니겠지만) 배움(學)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학생이 '무엄하게도' 그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을 조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배움을 마치 속박처럼 여기는 태도는 불량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일본어로는 쉼을 의미하는 「休み」이고, 중국어로는 '거짓 가(假)'를 써서「放假(fangjia)」라고 하는데, 여기서 쓰인 假는 쉼이나 틈을 의미하는 '겨를 가(暇)'와 같은 뜻으로 쓰인 통자(通字)로 보는 것이 맞겠다. 그러니 일본 학생과 중국 학생들의 방학에는 '휴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진정한 쉼은 떠남, 비움, 내려놓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놓고 보면, '방학(放學)'이라는 표현이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