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표된 바에 따르면 미국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 ACS)는 9개의 gold open access (OA, 오픈 액세스) 저널을 새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저널 이름의 목록은 아래와 같으며 모두 화학 분야의 하위 세부 분야를 다루고 있다.


- ACS Bio & Med Au

- ACS Engineering Au

- ACS Environmental Au

- ACS Materials Au

- ACS Measurement Science Au

- ACS Nanoscience Au

- ACS Organic & Inorganic Au

- ACS Physical Chemistry Au

- ACS Polymers Au


여기서 gold OA라 함은, 논문의 수정, 교정 및 발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소요되는 금액을 저자나 연구비 후원 단체가 지불하는 형식의 OA를 말한다. 당연히 gold OA 출판 옵션을 따르게 되면 저자가 부담해야 하는 출판 비용이 급상승하게 되는데, 인터넷의 발전에 따른 구독 환경의 변화로 인해 기존의 수익 창출 모델이 잘 안 먹혀 들어가는 2021년 현재, gold OA 명목으로 설정할 수 있는 비싼 논문 처리 비용은 저널들의 새로운 밥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년에 JACS Au가 새롭게 론칭했을 때 '이제 ACS도 gold OA를 통한 수익 창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나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3월 4일 온라인에 실린 'Funding Mandates and the Launch of Nine Fully Open Access ACS Au Journals' 라는 기사를 읽고 나서 'Plan S'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본 결과, 내가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게 어느 정도로 충격적(?)이었는가 하면, ACS가 이렇게 사업을 확장시킬 이유가 충분히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Plan S에 대해 조금 소개하자면 연구자들이 논문을 OA 저널에 게재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라 할 수 있겠다. 이 Plan S는 유럽 각국의 연구재단뿐 아니라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미국 연구재단인 게이츠 재단(Gates Foundation),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함께 모여 구성한 컨소시엄이 주도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상당하다. Plan S의 목적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Plan S를 주도하는 컨소시엄 산하 연구비 후원 단체가 제공한 연구비로 수행된 연구의 성과물이라면 어느 누구나가 구독료를 내지 않고도 읽어볼 수 있는 online archive (이런 방식을 green OA라고 한다.)나 gold OA 저널에 출판되도록 강제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의 출판이 강제되는 시점은 바로 2021년, 올해 1월부터였다.


문제는 지금까지 학술논문 출판업계에 Plan S 성격에 들어맞는 gold OA 저널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비록 여러 출판사들이 OA라는 대의에 (표면적으로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왔지만, 기존 저널에 OA 옵션을 추가하는 정도의 hybrid OA 였고, 그나마 전면적인 OA를 추진하는 저널들은 PLoS ONE처럼 예전부터 있었거나 RSC Advances처럼 새로 론칭되었지만, 낮은 인지도 혹은 우려섞인 기존 과학 출판업계의 시선 속에서 그 중요성이 조롱받기 일쑤였다 ㅡ 심지어 Nature가 론칭한 Scientific Reports나 Nature Communications 까지도 공공연하게 까일 정도면 말 다했다. 한편 ACS에는 ACS Central Science, ACS Omega, 그리고 작년에 론칭한 JACS Au 가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지금까지 언급한 메이저 출판사들의 OA 저널들 모두 광범위한 과학 분야 전반에 대한 논문을 동료평가하여 출판하는 저널이었기 때문에 너무 잡탕(?) 느낌의 저널로 치부되어 오히려 평가절하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ACS는 이와 같이 Plan S의 강제적 출판 조항 아래 자신들의 논문을 출판해 줄 저널을 찾느라 구천을 헤매야 했던 연구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목적으로 아래의 9가지 세부 학문 gold OA저널을 새롭게 발족시킨 것이다. 즉, Plan S로 인해 촉발된 gold OA 수요를 모두 흡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인 것이다. 사실 ACS의 대응은 다른 화학 저널 출판사들의 그것에 비하자면 굉장히 이례적으로 적극적이다. 메이저 화학 출판사 중 Wiley는 Plan S의 움직임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동조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고, 영국왕립화학회(Royal Society of Chemistry, RSC)는 취지에는 동조하지만 해결해야 할 것이 많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Nature 자매지를 출판하는 Springer와 Science를 출판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AAS)는 처음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지만, 아무래도 Plan S 컨소시엄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그룹들이 자신들 저널들의 단골 저자 고객이기도 한지라 이를 무시하기는 힘들었는지 올해 초부터 Plan S를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Elsevier는 초반에는 '정보가 공짜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위키백과에나 가라!'는 다소 극단적인 반응을 내보였다가 주가 폭락이 예견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결국 Elsevier 산하 저널들이 Plan S의 저작권 조건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전환을 이행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런 움직임에 비춰보자면, 아예 gold OA 저널 9개를 새로 신설해서 논문들을 기존 저널들에 더해 받겠다는 ACS의 태도는 굉장히 공격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년간 굉장히 많은 수의 저널을 새로 론칭하며 얻은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gold OA 출판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권 관련 옵션들을 얼마나 추가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지만 논문 한편 gold OA 출판 처리 비용이 ACS의 경우 최고 $4,000 까지 가는 것을 보면 정작 이러한 정책이 연구비가 부족한 국가나 단체에 오히려 불이익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green OA의 경우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질적 저하, 가짜 논문과 같은 논란거리가 항상 뒤따르고 있다. 논란이 많긴 하지만, Sci-Hub와 같이 구독료를 내지 않고도 학술논문을 맘껏 볼 수 있는 사이트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1665년에 인류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과학 저널이라고 전하는 『Journal des Sçavans』로부터 약 350년간 크게 변하지 않고 이어진 학술 논문 출판 및 구독 시스템이 앞으로도 과연 유효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는 없이 수많은 저널을 양산하고 또 그에 맞춰 찍어내는 식으로 논문이 뒤따라 양산된다면, 우리의 학술논문 출판업계는 자신들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과 사명은 상실한 채 시류에 편승해 흘러가는 여느 사업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곧 우리 과학계는 가짜 뉴스의 바다에, 무의미하고 난삽한 수식과 실험 결과들 속에 풍덩 빠져 헤매게 될는지도, 혹은 질식해 버릴는지도 모른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