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때 안경 낀 조그마한 소년을 처음 보았고 넘어져 실격되었을 때 안타깝다고 느꼈다. 그리고 다음 대회인 토리노에서 3관왕을 차지하고 쇼트트랙월드컵을 석권할 때 이 사람이 정말 대단한 선수였구나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그랬던 그가, 한국에서 쇼트트랙 황제로 군림했던 안현수가 메드메데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이제는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여 이제는 ''Виктор Ан(빅토르 안)'의 이름을 걸고 러시아 국가대표로써 빙상 위를 누비게 되었다.


그가 러시아로 건너가는 용단을 내린 배경에는 지난 국가대표선발전 탈락과 밴쿠버 올림픽 이후 불거져 사회적으로 파문을 몰고 온 빙상계 파벌 싸움이 있었다. 때문에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최민경과는 달리 안현수의 러시아행은 사회적으로 더 큰 주목을 받았고, 그에 비례해 더욱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러시아행은 스포츠 선수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기 위한 안현수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히려 빙상연맹과 잘난 사람을 가만 두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가 그로 하여금 그러한 선택을 하게끔 강요한 것으로 기사화되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댓글이나 다른 식의 방법으로 오히려 안현수가 러시아에서 큰 활약을 보여 대한민국 빙상연맹과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을 혼쭐 내 달라며 응원하기도 했다. 비슷한 취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현수의 선택은 지극히 개인적이므로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들 이야기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사람들은 다른 선수들이 부상을 당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여기면서 안현수의 부상은 마치 '신의 능력에 전혀 흠을 내지 못할 따위의 작은 일'로 생각하니 이것은 사람들의 실수인가 사고의 오류인가. 양궁과 쇼트트랙은 '국대선발전이 올림픽보다 더 한 경기'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종목으로 대표에 선발된 사람과 선발되지 못한 사람의 실력 차이는 그야말로 종잇장 하나 차이이다. 외국 쇼트트랙 선수들인 아폴로 안톤 오노 (미국), 리 지아준 (중국), 찰스 해믈린 (캐나다) 등이 오랫동안 국대를 맡아온 것과는 달리 한국의 쇼트트랙 팀은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선수교체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었고 매 올림픽 때마다 승리를 견인하는 얼굴이 바뀌어 왔다. 이런 냉엄한 경쟁 체제에서 벌써 나이가 26살이 된 안현수가 전성기의 실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장담하는가? 밴쿠버 대회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 낭보를 전해준 것은 노련한 30대 맏형 이규혁이 아니라 팔팔한 이승훈과 모태범이었다. 그리고 현재 쇼트트랙월드컵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곽윤기는 올해 23살이고 노진규는 20살이다. 안현수가 토리노에서 펄펄 날던 때도 벌써 5년 전이다. 안현수가 정말 신이 아니고서야 그 최고의 자리는 결국 젊고 재치있는 선수에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안현수가 토리노에서 보여줬던 뛰어난 추월 속도를 곱씹으며 그가 있었더라면 밴쿠버에서 싹쓸이를 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만약에 묘청을 따라서 고려가 서경으로 천도를 했더라면 금나라를 쳐 부수고 중원을 도모했을 것이다’ 라고 응수해 주고 싶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고, 이미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의 100%의 컨디션이 아니었을 안현수가 여전히 1등을 고수할 수 있었을 거라는 그 교조적인 믿음을 강하게 거부한다. 선발 과정 중에 잡음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실력이 최고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다. 안현수가 파벌 싸움의 희생양처럼 그려내는 것은 그의 실패를 다른 책임으로 전가시키고자 했던 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인 것이지 사실 파벌 싸움 정도로 희생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추앙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김연아와 박태환으로 증명된 것이 아닌가 되묻고 싶다. 안현수 희생양 모티프는 빙상연맹의 파벌 싸움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키보드만 신나게 두들기는 사람들이 빚어낸 신화와도 같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안현수는 현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러시아로 간 것이 결코 아니다. 김동성이 지적하듯 그는 현역 이후의 생활을 생각해보았을 때 한국에 계속 남는 것보다는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현역 활동을 보장함과 동시에 은퇴 이후 러시아 대표팀 감독 자리까지 보장하고 그 이외의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조성해 줄 것을 약속했다. 이런 점에서 2014년 소치 올림픽 때 빙상 위를 지치는 안현수의 모습보다는 빙상 밖에서 신호를 보내며 소리치는 안현수를 볼 가능성이 김연아가 소치 올림픽 때 2연패를 도전하기 위해 출전할 가능성보다 훨씬 더 높다. 따라서 안현수의 러시아 국적 취득은 ‘한 개인의 좌절과 사회의 인재관리 및 격려 실패’라는 엉뚱한 프레임에서 볼 문제가 아니라 ‘한국 스포츠인들이 은퇴 이후 삶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인가’라는 프레임에서 봐야 할 문제이다. 전자의 틀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한도 끝도 없는 내부 비판과 불신, 국가에 득이 되지 않는 연민만 들끓을 뿐이다. 빙상연맹을 비판하는 논조의 글이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는다는 것을 잘 아는 언론의 기사들이 보통 이런 식이다. 하지만 프랑스 대표팀 활동 이후 귀국하여 평창 올림픽 유치 활동을 벌인 최민경과는 달리 안현수가 끝내 귀화라는 강수를 선택한 것은 ‘금빛 메달’을 위해서가 아니고 ‘금빛 인생’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그의 선택은 정말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의 것으로 대한민국 빙상계 뿐 아니라 스포츠계에 전반에 걸쳐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거대한 화두들을 두루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던지는 질문이 결코 파벌과 집단 이기주의와 같은 동네 반상회 수준의 단순한 것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것은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에서만 열광하고 그 이외의 대회에는 관심이 없는 우리나라 사회의 현실, 은퇴 이후 먹고 살 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엘리트 교육의 피해자들인 우리나라 스포츠인들의 현실, 그리고 쇼트트랙이라는 비인기종목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현실, 이 현실들이 안현수 귀화 문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을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다.


자, 이건 다른 얘기인데, 나는 안현수를 응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치에서 무참하게 그를 짓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숙한 스포츠 국가주의와 같은 생각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이런 내우외환의 시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만방에 보여주어야 하는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겨울스포츠 강국인 러시아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보았던 추잡한 일들 그 이상을 볼 수도 있다. 집중적인 견제의 선봉에 ‘빅토르 안’이 서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런 때에 대한민국 국대가 무너지게 되면 안현수의 선택과 그의 행보, 그리고 떠오르는 러시아의 힘을 국가가 나서서 증명해주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나라가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대한민국을 외치며 환호했던 2002년을 생각해보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국가를 떠난 스포츠 경기를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우리는 모태에서부터 동양인이고 한국인이었으며 그리고 한국 사회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그러니 고매한 척하면서 스포츠와 국가를 구별해서 생각하자는 그런 맘에 없는 소리는 집어 치우고 진심으로 대한민국 쇼트트랙 팀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기대하자. 시상대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대선배였던 ‘빅토르 안’과 악수하며 지난 몇 년간의 잘못된 인연을 승자의 입장에서 후련하게 정리하는 것이 우리의 자존심과 쇼트트랙 발전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고 나는 믿는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